[사설] 빚은 탕감하고 세금은 독촉하라는 대통령의 이중잣대

이재명 대통령이 경제 부처 업무 보고에서 “우리나라는 빚을 탕감해 주는 것에 대해 가혹하리만큼 엄격하다”며 대대적인 채무 탕감 대책을 주문했다. 채무를 못 갚아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면 금융 거래는 물론 취업에도 제약을 받는다. 이들을 신용불량으로 묶어 두기보다 재기 기회를 주는 것이 사회 전체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채무 탕감 제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역대 정부는 장기 연체자나 피해 소상공인을 돕기 위해 제한적인 채무 조정을 시행해 왔다. 문재인 정부는 장기 소액 연체자 159만명의 채권을 소각했고, 윤석열 정부는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의 빚을 감면했다. 이재명 정부도 새출발·새도약 기금을 도입해 7년 이상 연체된 5000만원 이하 개인 113만명의 채무 16조원을 탕감하고, 코로나 피해 소상공인 10만명의 대출 원금을 90%까지 감면하고 있다. 법원의 개인회생·파산 면책 제도도 있다. 부족한 점은 있겠지만, 채무자 재기를 돕는 제도적 장치는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대통령은 어느 제도가 미흡한지에 대한 진단 없이 “갚을 능력이 없으면 탕감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제도 개선이 아니라 ‘무조건 탕감’ 선언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
채무 탕감은 불가피한 정책이지만, 적지 않은 부작용이 따른다. “빚을 안 갚아도 언젠가는 정부가 갚아주겠지”라는 도덕적 해이가 확산되고, 어려운 형편에도 꾸준하게 빚을 갚아온 성실 상환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한다. 역대 정부가 채무 탕감을 남발하지 않고 최소한으로 억제한 것은 이런 부작용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도덕적 해이 논란에 대해 “정상적으로 갚은 사람들한테 억울한 생각을 갖게 만드는 무책임한 선동”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반면 세금 체납에 대해서는 “세금 낸 사람은 얼마나 억울하겠나”라며 체납 관리단 1만명 증원을 주문했다. 성실 납세자의 박탈감은 인정하면서 성실 상환자의 박탈감은 선동 탓이라는 이중 잣대다.
신용 불량으로 고통받는 서민들의 채무를 탕감해 민생 경제를 회복시키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채무 탕감은 자주 사용할수록 약효보다 부작용이 커지는 초강력 진통제와 같다. 예외적인 상황에서 엄격한 기준 아래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신용사회의 기본 원칙이 허물어져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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