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건희 회장님 보고 싶습니다”…아스팔트 메운 삼성맨 7000명의 절규
노태문 부문장 두 달째 침묵…“DS는 동지, 박학규 사장 사퇴하라”
“청춘 바쳐 키운 삼성인데”…DX 직원들 “보상은 우리만 제외”

16일 오후 5시 37분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디지털시티 수원사업장 앞 왕복 6차선 도로 위엔 검은 옷을 맞춰 입은 사람들 수천 명이 두 개 차로를 가득 메우고 앉아 있었다. 아스팔트 위에는 다섯 줄씩, 연석 건너 왼쪽 갓길에는 네 줄씩 늘어앉은 이들의 등 뒤로 흰 원 안에 “동행"이라 쓰인 검은 로고가 끝없이 찍혀 있었고, 무대 위 대형 LED 전광판에는 붉은 조명 아래 기타와 드럼을 치는 사람들의 일러스트와 함께 “같은 회사 같은 권리 하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회사의 임금협상 결과에 반발해 도로에 나앉은 이들은 삼성전자 DX(디바이스경험) 부문 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 '동행노조' 조합원들이었다. 37년차 가전부문 우모씨는 “제가 청춘을 바쳐온 37년의 회사 생활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하다"고 했다. 16년차 생활가전부문 이모씨는 “투자할 때는 늘 '원삼성(One Samsung)'을 외쳐놓고 막상 보상체계에서는 우리를 완전히 패싱해 버렸다"고 말했다.

단상 앞으로는 “같은 회사 같은 권리! 대답없는 TM OUT"이라 쓰인 남색 현수막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TM'은 노태문 삼성전자 DX부문장을 가리킨다. 노 부문장은 지난 6월 면담에서 DX 임직원들의 의견을 검토한 뒤 7월 7일까지 구체적인 답변을 내놓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에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고 노조 측은 전했다. 무대 뒤편에는 “다음은 서초다. 같이 가자!"라고 적힌 검붉은 배경막도 함께 걸렸다. 이번 집회는 신고 인원은 3000명이었지만, 실제 참석자는 경찰 추산 약 7000명, 주최 측 추산 약 1만5000명으로 집계됐다. 경찰은 현장에 기동대 130명과 경찰버스 3대를 배치했다.
집회는 30초간의 묵념으로 시작됐다. 사회자는 “경영진이 방치해 죽은 DX를 위한 묵념"이라며 DX 사업부의 미래와 노동의 가치를 지키고, 일터에서 당당해지자는 다짐을 제안했다. 검은 옷을 입은 수백 명의 조합원들은 팻말을 손에 쥔 채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손종현 간사는 “오늘 뜨거운 아스팔트 위, 이 자리에 용기 내어 나와주신 동료들을 위해 우리는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 이호석 수원지부장도 연대사에 나서 “이번 사측과의 협상은 DX 부문이 철저하게 소외되고 무시당한 '패싱' 그 자체였다"며 “회사가 하나라면, 직원에 대한 존중과 보상 역시 당연히 하나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5년차 DX 네트워크 사업부 김모씨는 메모리 가격 산정 방식이 보상 문제를 넘어 DX 조직 전반의 위기감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완제품에 메모리가 들어가는데 비싼 걸 많이 쓸수록 DX는 적자가 된다"며 “같은 회사인데 DS 손실만큼 DX로 고스란히 가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어 “AI 도입과 함께 인력 감축 기조가 이어지면서 회사가 직원들이 스스로 회사를 떠나기를 바라는 분위기라는 인식도 적지 않다. DX는 사양산업이라는 인식 속에 이직을 오히려 반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같은 회사인데 DS는 성과급 잔치를 하고 DX는 구조조정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내부 우려가 있다"고 했다.
무대 옆 스피커에서는 회사 임금협상 결과에 반발해 한 직원이 직접 만들었다는 노래 'We deserve it(우리는 그럴 자격이 있다)'이 흘러나왔다. “누굴 위한 룰이야, 같이 바꿔가자", “같은 회사 다른 대우, 이제는 말할 차례"라는 가사가 집회 분위기를 채웠다.
동행노조는 사측이 끝내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을 경우 투쟁 수위를 한층 높이겠다는 방침이다. 서초사옥 집회에 이어 한남동 일대까지 집회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성과급과 임금협상과 관련한 본안 소송도 준비하고 있다. 노조 측은 현재 소송 참여 의사를 밝힌 조합원이 1000명에 육박하며 법률대리인 선임도 마쳤다고 밝혔다.
노조는 내년 임금교섭에서도 DX 부문 보상 문제를 핵심 의제로 제기할 계획이다. DS와의 분리 교섭은 검토하지 않고 있으며, 사업부 간 갈등이 아닌 전사 차원의 공정한 보상체계 마련을 요구한다는 입장이다. 또 “DX 부문에 축적된 재원을 활용해 최소 자사주 1000주 수준의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하나 기자 uno@ekn.kr, 신은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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