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메모리 상장 임박…당장은 한국에 위협 안돼, 중장기는 지켜봐야

중국 최대 D램 기업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 CXMT의 증시 상장이 임박했다. 글로벌 메모리 시장 4위까지 올라선 중국 기업이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공급망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다만 김경환 하나증권 리서치센터 팀장은 이번 상장이 단기간에 한국 메모리 산업을 위협하는 사건이라기보다 중국 자본이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제조업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변곡점이라고 진단했다.
창신메모리의 현재 기술력과 생산 능력만 놓고 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첨단 D램 경쟁력을 당장 흔들 수준은 아니다. 오히려 상장 과정에서 공개되는 사업 구조와 투자 계획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기술 격차를 재확인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창신메모리 한 곳의 생산량이 아니다. 중국의 부동산과 전통 산업에서 빠져나온 막대한 자금이 반도체와 로봇과 인공지능과 첨단 장비에 집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한국 기업의 실적을 흔들지 않더라도 3년 뒤에는 새로운 공급 과잉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27일 상장이 예상되는 창신메모리는 이번 기업공개를 통해 당초 계획보다 많은 자금을 조달할 전망이다. 공모 과정에서 제시된 조달 금액은 한화로 약 13조원 수준이다. 예상 시가총액은 당초 기업공개 신청 당시 거론됐던 3000억위안에서 약 6000억위안 수준으로 높아졌다. 올해 예상 순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주가수익비율은 약 6배 수준이다. 숫자만 보면 지나치게 높은 평가라고 보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해 이익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300배에 달한다. 불과 1년 사이 이익 체력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의미다.

김경환 팀장은 이 분위기를 중국 반도체 산업에 대한 기대라기보다 탐욕이 시작되는 신호로 해석했다. 중국은 과거 조선과 태양광과 전기차 산업에서도 높은 마진과 가격 상승을 확인한 뒤 대규모 자본을 투입했다. 초기에는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원동력이 됐다. 시간이 지나면서 수많은 기업이 생산 능력을 동시에 늘렸고 결국 가격 하락과 공급 과잉으로 이어졌다.
창신메모리는 중국의 간절함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반도체는 중국이 미국의 기술 제재와 공급망 통제에서 가장 큰 병목을 경험하는 산업이다. 중국 정부는 막대한 정책 자금을 투입해 반도체 자립을 추진했다. 창신메모리는 그 결과물 가운데 가장 실체가 뚜렷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번 상장은 중국 반도체 굴기의 첫 번째 관문을 통과했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정부 자금에 의존해 성장하던 기업이 자본시장으로 들어와 민간과 기관의 자금을 조달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조달 자금은 창신메모리의 생산 능력 확대와 공정 고도화에 사용될 전망이다. 중국 장비와 소재 기업의 국산화율을 높이는 투자도 본격화할 가능성이 크다.
다만 13조원의 자금이 곧바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위협하는 대규모 생산 능력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반도체 공장은 자금만 있다고 즉시 가동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공장 건설과 장비 반입과 공정 안정화와 수율 확보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첨단 D램은 생산 규모보다 공정 기술과 수율과 고객 인증이 더 중요하다.
창신메모리는 이미 글로벌 4위권 D램 기업으로 올라섰다. 생산 능력은 마이크론과 비교할 수 있는 수준까지 확대됐다. 그러나 첨단 제품 경쟁력과 고대역폭메모리 HBM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과 격차가 남아 있다. 이번 기업공개 과정에서도 HBM과 관련된 구체적인 사업 계획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중국의 D램 기업이 당장 1년이나 2년 안에 글로벌 첨단 시장으로 진입해 공급 과잉을 만들 가능성은 제한적이다. 현재 창신메모리는 중국 내부 수요조차 충분히 맞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 스마트폰과 서버와 전자기기 업체가 요구하는 레거시 D램 물량을 공급하는 것만으로도 생산 능력이 빠듯한 상황이다.
창신메모리의 실적이 급격히 개선된 배경 역시 기술 격차 축소보다 글로벌 메모리 공급 부족에 있다. 중국도 한국과 미국 메모리 업체가 누리는 가격 상승의 수혜를 함께 받았다. 과거 중국 메모리 기업은 높은 투자 비용과 낮은 수율로 장기간 적자를 냈다. 최근 D램 가격이 급등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창신메모리는 7년간 이어졌던 적자를 한꺼번에 만회할 정도의 이익을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공급이 부족하자 중국산 레거시 D램까지 높은 가격에 판매할 수 있게 됐다.
한국 메모리 기업에는 역설적인 장면이다. 메모리 가격 상승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을 끌어올린다. 동시에 중국 기업이 손실을 정리하고 신규 투자를 시작할 수 있는 자금도 제공한다. 한국 기업이 누리는 초호황이 장기적으로 중국 경쟁자의 성장을 지원하는 구조다.
창신메모리보다 더 긴 시계에서 봐야 할 기업은 중국 낸드플래시 1위 양쯔메모리테크놀로지 YMTC다. 공식적인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10월 전후 상장 심사를 통과하고 4분기에 증시에 입성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창신메모리와 양쯔메모리가 모두 상장하면 중국 메모리 산업의 양대 축이 자본시장에 들어오게 된다. 두 회사는 초기 기술만 보유한 스타트업이 아니다. 이미 상당한 생산 규모를 갖춘 기업이다. 중국 정부와 국유 자본뿐 아니라 연기금과 기관과 개인투자자의 자금까지 반도체 산업으로 흘러갈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중국의 전통적인 성장 구조는 은행 대출을 기반으로 했다. 지방정부와 부동산 개발업체와 제조기업이 돈을 빌려 토지를 사고 공장을 짓고 아파트를 건설했다. 대출이 증가하면 투자가 늘었고 주식시장도 함께 상승했다. 최근에는 이 공식이 깨지고 있다. 중국 은행 대출 증가율은 계속 둔화하고 있다. 부동산 투자와 건설 지표도 크게 위축됐다. 장기 금리는 하락했다. 과거 패턴이라면 주식시장도 부진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의 일부 기술주는 오히려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부동산과 전통 제조업에서 사라진 자금 수요를 반도체와 전력 인프라와 광모듈과 배터리와 로봇 기업이 흡수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자본이 은행 대출보다 주식과 채권과 기업공개를 통해 조달되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
창신메모리 상장은 중국 경제의 자본시장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중국 정부가 직접 지원하던 기업이 증시에 들어오면 새로운 투자 주체가 형성된다. 지방정부와 국유기관과 민간 자본이 기업공개에 참여한다. 상장 후 주가가 오르면 추가 증자와 채권 발행도 쉬워진다. 자본시장으로 조달한 돈은 다시 공장과 장비와 연구개발에 투입된다.
이 흐름은 한국 산업에 기회와 위험을 동시에 만든다. 중국의 반도체 투자가 증가하면 중국 장비와 소재 기업의 매출도 늘어난다. 중국 반도체 생태계가 이전보다 촘촘해질 수 있다. 미국의 제재로 해외 장비 도입이 제한될수록 중국은 국산 장비와 소재를 더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된다.
반면 중국 자본이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특정 산업에 몰리면 공급 과잉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은 전기차와 태양광과 배터리에서 이미 비슷한 경로를 거쳤다. 정책 지원과 민간 투자가 동시에 몰리면서 생산 능력이 수요보다 빠르게 늘었다. 기업들은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가격을 낮췄다. 중국 시장에서 시작된 가격 경쟁은 글로벌 시장으로 확산됐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지는 아직 단정하기 어렵다. 첨단 공정의 진입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장비와 소재를 확보해도 수율을 높이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고객이 요구하는 품질과 신뢰성을 충족해야 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수십년 동안 쌓은 공정 경험을 자금만으로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
중국은 미국과 다른 방식으로 인공지능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미국 기업이 최첨단 그래픽처리장치와 초대형 데이터센터를 중심으로 투자한다면 중국은 비용 대비 성능을 중시한다. 전력과 통신 인프라를 활용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장비와 시스템을 조합한다. 같은 금액으로 더 많은 연산 능력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이런 구조는 단기간에 첨단 HBM 수요를 폭발시키기보다 레거시 D램과 낸드와 범용 장비 수요를 넓힐 가능성이 있다. 중국 기업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력 시장을 곧바로 공격하기보다 중저가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 단계에서 창신메모리 상장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 전망을 바꿀 만한 사건은 아니다. 글로벌 메모리 공급 부족도 중국 기업 한 곳의 상장으로 해소되기 어렵다. 중국이 애초 계획한 물량을 생산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오히려 창신메모리가 공개하는 실적과 투자 계획을 통해 한국 기업과의 격차를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도 아직 첨단 HBM과 고성능 서버 D램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기술적 우위가 다시 부각될 수 있다.
창신메모리와 같은 상징적인 기업은 대기 자금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촉매가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증시의 중심도 바뀌고 있다. 과거 투자자는 알리바바와 텐센트 같은 플랫폼 기업을 통해 중국 기술주에 접근했다. 지금은 과창50지수와 차이넥스트지수가 중국의 첨단 제조업과 수출 경쟁력을 반영하는 지수로 부상하고 있다.
과창50지수는 반도체 장비와 소재와 설계 기업의 비중이 높다. 창신메모리와 양쯔메모리가 편입되면 중국 반도체 생태계를 대표하는 지수로서 성격이 더 강해질 전망이다. 차이넥스트지수는 중국 제조업의 현재 실력을 보여준다. CATL을 비롯해 광모듈과 바이오와 에너지와 비철금속과 로봇 관련 기업이 포함돼 있다. 중국 내수보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이 많다. 중국의 수출 경쟁력과 첨단 제조업의 수익성을 함께 반영한다.
중국의 수출은 특정 지역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아세안과 아시아 공급망으로 향하는 수출이 빠르게 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수출도 두 자릿수 증가율을 보이는 품목이 있다. 인공지능 인프라와 전력장비와 산업재와 조선과 비철금속처럼 중국 기업이 2류와 3류에서 1류로 올라오는 분야도 늘고 있다.
중국 기업과 투자자가 흥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동안 중국 제조업은 생산량은 많지만 수익성이 낮다는 평가를 받았다. 메모리와 전력장비와 인공지능 인프라에서 높은 마진이 확인되면 기업가치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자본은 더 빠르게 유입된다. 투자가 늘고 생산 능력도 커진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진짜 변수는 창신메모리의 상장 자체가 아니다. 높은 메모리 가격을 경험한 중국이 얼마나 오랫동안 투자 확대를 이어갈지다. 첨단 공정의 수율을 어디까지 끌어올릴지도 중요하다. 중국 장비와 소재의 국산화율이 얼마나 빠르게 높아지는지도 봐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과도한 공포를 가질 이유가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HBM과 첨단 D램에서 중국보다 앞서 있다. 글로벌 고객과의 장기 공급 관계와 생산 경험도 강력한 진입 장벽이다. 창신메모리는 중국 내부의 범용 수요를 대응하는 데 우선순위를 둘 가능성이 크다. 중장기적으로는 방심하기 어렵다. 중국이 자본시장과 정부 지원을 결합해 반도체 투자를 지속하면 기술 격차는 줄어들 수 있다. 중국 기업이 첨단 시장에 바로 진입하지 못하더라도 범용 제품의 공급을 늘리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고부가 제품에 집중하도록 압박할 수 있다. 레거시 제품의 가격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
창신메모리 상장은 한국 메모리 산업의 위기가 시작됐다는 신호가 아니다. 중국이 반도체를 단순한 국책사업에서 수익을 기대하는 자본시장 사업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에 가깝다. 지금 확인되는 것은 한국의 기술 격차다. 앞으로 확인해야 할 것은 중국 자본의 지속성과 속도다.
중국이 메모리 가격 상승을 처음 경험하며 자신감을 얻었다. 투자자는 기업가치를 더 높게 요구하고 있다. 기업은 생산 능력 확대를 준비한다. 정부와 지방자본은 첨단 제조업에 돈을 넣고 있다. 이 흐름이 지나치게 빨라지면 과거 전기차와 태양광에서 나타났던 공급 과잉이 반도체에서도 반복될 수 있다.
한국 기업에는 시간이 있다. 당장의 공급 충격은 제한적이다. 그러나 창신메모리와 양쯔메모리의 상장 이후 2년에서 3년 동안 이어질 투자 흐름은 계속 추적해야 한다. 창신메모리의 공모가보다 중요한 것은 공모 자금이 공장과 장비와 인력으로 바뀌는 속도다. 중국의 첫 번째 메모리 상장은 위협의 완성이 아니라 긴 경쟁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