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자치 대신 ‘동화’… 아랍어 사라지고 “주라오” 내걸린 中 무슬림동네[박세희의 ‘차이나 스캔’]

박세희 특파원 2026. 7. 16.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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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희의 ‘차이나 스캔’
‘민족단결법’ 논란… 무슬림 소수민족 모인 니우지에 가보니
이달부터 시행… 55개 소수민족 대상 ‘중화化 정책’
고유언어 대신 중국어로만 수업… 인터넷 정보도 검열
민족단결 저해 판단땐 외국서도 처벌… 대만 등 반발

베이징=글·사진 박세희 특파원

베이징(北京) 남서부에 위치한 니우지에(牛街)는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이슬람 문화 중심지다. 중국 최대 무슬림 소수민족인 후이족(回族·회족) 공동체가 오랫동안 터를 잡아온 이곳에는 천 년 역사의 모스크와 할랄 식당들이 골목마다 자리하고 있다. 지난 9일(현지시간) 찾은 니우지에의 풍경은 예상과는 다소 달랐다. 과거 중국어와 아랍어가 함께 적혀 있던 간판은 대부분 중국어만 남아 있었고, 할랄 식당은 현지 주민보다 맛집을 찾아온 관광객들로 붐볐다. 식당에서 양꼬치를 굽는 상인들 가운데 이슬람 남성들이 쓰는 흰색 둥근 모자 ‘쿠피(Kufi)’를 착용한 이들이 눈에 띄었지만, 그 외에는 베이징의 다른 관광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다.

지난 9일 중국 베이징 남서부 니우지에의 한 음식점 앞에 관광객들이 길게 줄 서 있다.

베이징시 당국은 지난 2019년 니우지에의 할랄 음식점과 노점 등에 아랍어 표기와 이슬람 관련 상징을 간판에서 제거하도록 지시했다. 중국 정부가 2016년부터 추진해온 ‘종교의 중국화’ 및 ‘민족 통합’ 방침의 일환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니우지에의 한쪽 골목에 자리 잡은 게시판에는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굳건히’ ‘공동번영발전’ ‘석류알처럼 똘똘 뭉쳐야 한다’ 등 민족 통합을 강조하는 문구들이 다수 게시돼 있었다.

올해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통과된 중국의 ‘민족단결진보촉진법’(민족단결법)이 지난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소수민족의 중국어 사용을 우선시하고 민족 분열 행위를 처벌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이 법은 후이족을 비롯해 위구르족, 티베트족, 조선족 등 55개 소수민족을 하나의 ‘중화민족’ 정체성에 맞추도록 하는 법적 기반이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지속적으로 추진돼 온 국가 공용어 보편화와 민족 융합 정책에 법적 쐐기를 박은 것이다.

◇‘자치’에서 ‘동화’로…하나의 정체성으로 녹여내다= 민족단결법의 핵심은 우선 ‘언어’다. 소수민족의 고유 언어 대신 표준 중국어인 ‘푸퉁화’(普通話)를 각급 학교 및 교육 기관의 기본 교육 용어로 지정했다. 모든 학교 수업은 푸퉁화로만 진행해야 하며, 소수민족 언어는 제2언어 형태로만 교육이 가능하다. 또 공공장소에서 푸퉁화와 소수민족 언어를 동시 사용할 경우 위치와 순서 등에서 푸퉁화를 부각하도록 의무화했다. 가정 내 아이들에 대한 사상 통제 방침도 마련됐다. 부모 및 보호자는 자녀가 ‘민족단결에 불리한 관념’을 갖지 않도록 교육할 의무를 지는데, 이를 어기는 부모는 처벌될 수 있다.

종교단체와 종교학교, 종교시설은 ‘종교의 중국화’를 추진해야 한다. 인터넷 플랫폼은 민족단결을 해치는 정보를 발견하면 즉시 삭제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관련 기록을 보존해 당국에 보고해야 한다.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처벌받을 수 있다.

민족단결법의 제정으로 소수민족 통치 원칙이 42년 만에 ‘자치’에서 ‘동화’로 바뀌었다는 평이 나온다. 1984년 제정됐던 민족구역자치법은 소수민족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지역에 일정한 자치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했는데 원칙이 아예 변화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외교협회(CFR)는 “민족 자치에서 동화로의 전환을 법제화한 것”이라고 평했다. CFR의 칼 민즈너 중국 연구 선임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새 법의 핵심 개념은 ‘주라오’(鑄牢)라는 표현에 담겨 있다”고 짚었다. 주라오는 금속을 ‘주조하다’ ‘단단히 굳히다’라는 뜻이다. 그는 “법은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주조하는 것을 중국 공산당 민족정책의 핵심 과제로 규정했다”고 설명했다. 지역적·민족적 정체성을 하나의 공동 정체성 속으로 ‘녹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법률의 구조 자체도 주목할 만하다. 중국법 전문가인 웨이창하오(魏常豪) 예일대 로스쿨 폴차이중국센터 연구원은 “법엔 매우 이례적인 두 가지 특징이 있다”며 법률 서두에 정치적 서문이 포함된 점과 법의 주요 장 구성이 시 주석의 민족정책 이론에서 가져온 정치적 구호를 중심으로 돼 있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공산당 규정과 국가 법률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니우지에 한쪽 골목에 자리 잡은 게시판. ‘중화민족 공동체 의식을 굳건히’ 등의 문구가 적혀 있다.

◇‘외국인 처벌’ 가능 논란…대만 등 강력 반발= 해외에서 법안 중 가장 민감하게 보는 부분은 ‘해외에서 민족단결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한 점이다. 법 제63조는 중국 국경 밖의 조직이나 개인도 ‘민족단결과 발전을 훼손하거나 민족 분열을 선동하는 행위’를 할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규정했다. 해외에 거주하는 위구르인이나 티베트인, 해외 연구자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은 특히 이 법이 ‘초국가적 탄압’의 도구가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가장 크게 반발한 곳은 대만이다. 이 법이 대만 독립을 지지하거나 중국의 통일 정책에 반대하는 인사들을 겨냥하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친미·독립 성향의 라이칭더(賴淸德) 대만 총통은 이 법을 “국경을 초월해 탄압과 위축 효과를 가져다주는 악법”으로 규정하고 “중국이 권위주의와 독재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미국 공화당 소속 짐 리시(아이다호) 외교위원장과 민주당 간사인 진 섀힌(뉴햄프셔) 의원을 포함해 외교위원회 소속 상원의원 9명도 민족단결법에 반대하는 성명을 냈다. 이들은 성명에서 “중국의 민족단결법 신설은 중국 안팎에서 소수민족의 종교, 문화, 언어를 말살하려는 중국의 부당한 정책”이라며 “이 법안은 억압에 반대하는 이들을 기소할 수 있는 거의 무제한적 권한을 중국에 부여하며 초국가적 탄압을 정당화하는 데 일조할 뿐”이라고 비난했다.

박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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