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때 스님이 이름붙인 ‘안식처’… 작은 마을서 6명 출가 ‘눈길’[자랑합니다]

통샘골과 작은 안양산 아래 뉫머리를 쳐다보다가 흙보다 돌이 많은 비탈밭을 가꾸며 어렵게 사셨던 부모님의 얼굴이 겹친다. 마을 가운데 우리 가족이 살았던 옛 집터에 시선이 멈췄지만, 부대끼며 살았던 식구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빈터만 남아 쓸쓸했다. 내가 군대 가던 날, 전장(戰場)에 나가는 전사처럼 천천히 집 주위를 한 바퀴 돌며 3년 후에 오겠다고 다짐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마을 중앙 타작마당을 분주히 오가며 정겹게 지내던 이웃들은 보이지 않았다. 전답은 묵혀져 노루와 멧돼지의 놀이터로 변하고, 모개낭골 산소를 다녀오면서 길에서 마주친 사람은 한 가족뿐이었다. TV에서는 엄청난 차량과 귀성객이 고향으로 갔다는데 모두 어디로 간 건지 알 수가 없다. 어릴 적 대나무 죽순을 꺾어 칼싸움하다가 이장님께 혼나면서도 웃기만 하던 친구들, 딱지와 구슬치기에 해 지는 줄 모르던 그 시절의 동무들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문득, 고려의 문인 길재의 시조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다”가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었다. 사람뿐 아니라 소도 없고, 돼지도 없고, 염소와 닭도 보이지 않았다. 어릴 때 뛰놀던 동네와 들판을 둘러보았다. 못둠벙에서 모개낭골·오리둠벙으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좁은 길을 따라 쉼보탕까지 걸어갔다. 땔감을 구하고 소 먹이러 다니던 어린 시절 휴게소였던 쉼보탕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지만, 귀목나무와 소 몰고 다니던 목동들은 보이지 않았다. 소 울음소리 대신 바람 소리만 들렸다.
어려선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지만, 어른이 되어선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진다. 고향은 어린 시절의 웃음과 부모님의 땀방울, 함께 살아온 이웃들의 정이 있는 곳이다. 비록 사람들은 떠났어도 마음속 추억을 간직한 영원한 내 고향은 안양골이다.

안양골은 조선 중기에 처음 터를 잡은 입향조 심(沈) 씨에게 지나가던 스님이 “마을 이름을 ‘안양’이라 부르시오. 그래야 자식들이 탈 없이 자라고, 부모에게 효를 다할 것이오”라고 해서 ‘안양’이라 불렀다고 한다. 안양(安養)은 아미타불이 머무는 정토(淨土)로 마음이 편안하고 자유로운 안식처다. 안양산의 절터와 마을 건너 대청사(大淸寺)의 흔적은 ‘안양’의 유래를 뒷받침한다. 그런 영향일까. 마흔 가구의 작은 마을에서 여섯 명이나 출가하여 스님의 길을 걷고 있다. 정인·승법·해봉·정각·선각·홍산 스님이 전국의 사찰에서 수행자의 길을 걷고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 윤회(輪廻)의 인연과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오래전 사찰의 흔적과 스님들의 기도가 더해진 고향 마을은 향우들에게 언제라도 찾아와 좋은 기운을 받아 가라 손짓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이창규(전 여수시 화양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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