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나무 숲에 빠져본 적 있나요? [초보기자의 거침없이 하이킹 수리산]

남준식 기자 2026. 7. 16.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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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서 산행 추천, 수리산 환종주 10km
참나무숲이 터널을 이루고 있다. 나뭇잎 사이로 들어오는 햇살과 그늘은 심신에 안정을 준다.

숲에 빠지고 싶다는 충동이 든 건 처음이었다. 시원한 계곡물에 풍덩 빠지거나 키만큼 쌓인 눈밭에 파묻히고 싶었던 적은 있지만, 숲에 빠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었다. 숲 아래 어떤 위험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몸을 던져도 아프지 않을 것 같았다. 참나무 잎사귀가 햇살을 받아 윤슬처럼 반짝였다. 숲이 출렁이며 "내게 오라" 손짓했다.

"하마터면 헛디딜 뻔 했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절벽 위에 서 있었다. 그 충동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듯, 수리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했다. 수리산은 숲이 좋다고. 그늘이 많다고. 시원하다고. 그래서 여름에 오기 딱이라고. 그들이 수리산의 매력으로 꼽은 것은 뾰족하게 솟아오른 거친 암릉도, 안양과 군포 시내가 IMAX 영화관처럼 펼쳐지는 도시 조망도 아니었다. 숲이었다.

건너편에 보이는 관악산만 하더라도 암릉이 많아 여름이면 땡볕인 데가 많다. 달걀프라이도 익을 만큼 바위가 뜨거워서 365일 산에 다니는 산꾼들조차 폭염주의보가 내린 날에는 바위산을 자제한다. 반면 수리산은 암릉이 있되 노골적이지 않고, 나무가 우거져 시야가 답답한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VIP를 경호하는 보디가드처럼, 적당한 높이와 거리의 나무들이 숲을 이뤄 햇볕을 슬며시 가려 준다.

수리산을 점령한 나무는 참나무다. 이름 앞에 '참'이라는 접두어가 붙은 것은 흔하디흔해서 때론 그 귀함을 잊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쓸모가 많다는 뜻이다. 도토리와 숯 외에도 참나무는 여름철 멋진 그늘을 준다. 동백만큼은 아니지만 참나무도 잎사귀 윗면이 기름으로 코팅돼 있다. 햇살을 받으면 반짝거리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관모봉에서는 안양과 군포 시내가 영화관 스크린처럼 펼쳐져, 시선을 한 군데 가두기 어렵다.

관모봉에서 되새긴 아파트 공화국

이번 산행은 수리산의 4개 주봉(관모봉·태을봉·슬기봉·수암봉)을 종주하는 코스로 기획했다. 수리산 산세는 'O' 모양에 가까워서 어디서 올라도 주능선에 합류한다. 군포 산본동에 있는 태을초등학교 옆 수리약수터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이름만 약수터지 실제로는 수질 부적합 판정을 받거나 수맥이 끊긴 경우가 많은데, 이곳에는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진다. 등산객뿐 아니라 동네 주민도 많이 찾는다.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 산행답게 약수터에서 물을 가득 받아간다. 물맛이 좋다. 떨어진 물방울을 훔쳐 먹던 곱등이 한 마리도 힘이 솟는지 폴짝폴짝 뛴다.

곱등이의 배웅을 받고 한 시간 남짓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관모봉에 닿는다. 사실상 여기까지만 올라도 충분할 정도로 수리산의 대표 '풍경 맛집'으로 통한다. 관악산·청계산·광교산이라는 접시 안에 안양과 군포라는 맛있는 요리가 담겨 있다. 성남 분당·고양 일산·부천 중동과 함께 '1기 신도시'의 한 축을 담당한 안양 평촌과 군포 산본. 1990년대 '주택 200만 호 건설'이라는 초대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수많은 시민의 보금자리가 되어주었음을 생각하자 눈앞의 빽빽한 아파트숲이 숨 막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맙게 다가온다.

태을봉~슬기봉 구간 능선. 참나무로 뒤덮인 수리산의 굴곡은 바람이 불면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처럼 보인다.

태을봉에서 슬기봉까지 2km 구간의 능선은 거칠다. 특유의 모나고 비뚤어진 바위가 길 위에 솟아 있다. 걷다 보면 발바닥과 발목에 피로가 쌓인다. 밑창이 두껍고 발목을 감싸는 등산화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이번이 두 번째 수리산 산행이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수리산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그리 높지는 않아도 바위가 많고 산세가 험한 편이다.

수리산에 독수리는 없었다

능선에서는 수리산의 깊은 골짜기가 내려다보인다. 어찌나 깊은지 조선 후기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들어와 담배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골짜기는 '담뱃골'로 불리며, 골짜기 북쪽으로 난 통로는 병의 목처럼 좁아 '병목안'으로 불린다. 지금도 오직 병목안을 통해서만 수리산 골짜기를 드나들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1989년 폐장 전까지 채석장으로 개발됐던 병목안은 이제 시민공원과 캠핑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군부대가 있는 슬기봉을 지나친다. 이쯤부터 거칠었던 길은 점차 부드러워진다. 일몰 무렵 마지막 봉우리인 수암봉에 닿았다. 관모봉 조망만큼 임팩트는 없지만 노을을 감상하기엔 훨씬 좋다. 안산 방면에서 사람들이 간간이 올라온다. 수리산은 안양과 군포뿐 아니라, 이렇다 할 높은 산이 없는 안산시에서도 귀한 산이다.

능선 어디에서나 적당한 밀도의 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운다.

수리산은 '독수리의 산'이다. 옛 기록에 독수리 취를 써 '취산鷲山'이라 되어 있다. 다만 겨울철 철원에서 볼 수 있는 날개폭 2m의 독수리인지, 참매·송골매·보라매 같은 매과인지는 불분명하다. 500년 넘도록 독수리의 산으로 불렸으나, 아쉽게도 수리산에 독수리는 살지 않는다. 수암봉 위로는 까마귀만 깍깍 울어대며 날 뿐이다. 서둘러 병목안으로 내려간다.

드디어 병목안으로 탈출! 깊은 병에서 빠져나오자 숲이 끝나 있었다.

산행길잡이

안양·군포 방면에서는 관모봉까지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이고, 안산 방면에서는 수암봉까지 오르는 코스가 일반적이다. 관모봉은 어느 방면에서도 1시간 남짓이면 오를 수 있다. 관모봉에는 작은 데크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관모봉에서 태을봉까지는 금방이다. 태을봉에는 나무가 우거져 조망이 없다. 태을봉에서 슬기봉까지는 데크가 설치돼 있는 구간도 있지만 거친 암반이 곳곳에 솟아 있어 발디딤에 긴장이 필요하다.

슬기봉에서 수암봉 사이에 군부대 시설이 늘어서 있다. 수암봉에 이르기 전 너구리산(서래봉)으로 빠지는 삼거리를 주의해야 한다. 철책을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수암봉에 닿는다. 수암봉에는 넓은 데크 전망대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이후 병목안까지는 다소 지루한 길이 이어진다. 수리산 환종주 코스는 대개 병목안에서 시작해 병목안에서 끝낸다.

교통

수리산은 지하철로 접근하기 불편해서 역에서 버스를 이용하면 좋다. 금정역에서 태을초 인근까지 시내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 병목안에서도 시내버스를 이용하면 안양역까지 이동할 수 있다.

'담뱃골'로도 불리며 천주교성지가 남아 있는 수리산 깊은 골짜기에 수도권제1순환고속도로가 잠시 모습을 드러낸다.

월간산 7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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