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주 된 삼성전기…'AI 부품 총집합' 수혜
[화제의 주식]

불과 1년 만에 주가 단위가 달라졌다. 지난해 6월 중순 12만 원대에 그쳤지만 올들어 ‘황제주(주당 가격이 100만 원 이상인 주식)’ 반열에 오른 삼성전기 얘기다.
삼성전기 주가는 올해 들어 지난 6월 중순까지 600% 넘게 상승했다. 6월 중순 기준 1년 상승률은 약 1460%에 달한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 상승률(약 195%)은 물론 국내 증시 ‘반도체 투 톱’으로 꼽히는 삼성전자(약 490%), SK하이닉스(약 850%) 상승률도 크게 웃돈다.

빅테크가 줄 서는 부품사
삼성전기는 부품 기업이다. 전자부품을 생산하는 컴포넌트 사업부문, 반도체 패키지 기판을 생산하는 패키지솔루션 사업부문, 카메라 모듈을 생산하는 광학솔루션 사업부문 등 3개 사업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 세 사업부문 전반이 체질 개선을 이루면서 주가가 급등했다. 기존 주력이었던 PC·스마트폰 부품 의존도를 낮추고 인공지능(AI) 서버용 반도체 기판과 전장(차량용 전기·전자장치) 등 고부가가치 사업 비중을 높였다. 삼성전자 갤럭시 스마트폰과 애플 아이폰에 주로 공급하던 카메라 모듈도 휴머노이드 로봇, 자율주행차 등으로 납품처를 확대하고 있다.

특정 고객사에 대한 의존도 역시 낮아지는 추세다. 삼성전기의 삼성전자 및 계열사 매출 비중은 2020년 상반기 39%였지만 올해 1분기에는 약 30%로 줄었다.
매출 구조가 달라진 건 주력 제품 여럿이 AI 시대 핵심 부품으로 쓰여서다. 삼성전기는 컴포넌트 사업부문을 통해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를 생산한다. MLCC는 전기를 저장했다가 반도체에 필요한 만큼 공급해 원활한 작동을 돕는 부품이다.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비롯한 각종 전자기기에 쓰여 ‘전자 산업의 쌀’로 불린다.

AI 서버 한 대에 MLCC 2만5000개
과거에는 MLCC 대부분이 스마트폰용이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AI 서버가 핵심 수요처로 떠올랐다. AI 가속기와 서버에 탑재되는 MLCC 수가 크게 늘면서다. AI 서버 한 대에는 MLCC 약 2만5000개가 들어간다. 일반 서버(약 2000개)의 12배가 넘는다. AI 서버는 전력 소모가 크고 연산 속도가 빨라 안정적인 전류 공급이 필수인 까닭이다. 전기차 한 대에도 MLCC 약 2만~3만 개가 사용된다.
또 다른 ‘효자 제품’은 FC-BGA다. 반도체와 메인 기판을 연결하는 부품으로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고정하고 전기 신호를 전달한다. FC-BGA를 적용한 기판은 기존 제품보다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빠르고 발열 제어 효율도 높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와 구글의 텐서처리장치(TPU)를 비롯한 각종 AI 가속기 등에 FC-BGA가 필수로 들어간다. AI 반도체가 대형화·고성능화할수록 고사양 FC-BGA 수요도 함께 늘어나는 구조다.
주력 제품 수요가 급증하면서 실적도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삼성전기의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은 3조209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806억 원으로 40% 늘었다. 이 중 반도체 기판 사업을 담당하는 패키지솔루션사업부 영업이익은 272억 원에서 553억 원으로 2배 이상 늘었다.
증설해도 수요 미달 가능성
증권가는 주력 제품을 바탕으로 한 실적 성장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MLCC와 FC-BGA 모두 수요가 늘어도 공급이 빠르게 증가할 수 없는 구조라서다. 반도체 기판은 생산라인 구축부터 양산까지 통상 2년 이상 걸린다. 설비를 발주했다고 곧바로 생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고난도 공정 기술도 필요하다. 품질과 생산능력을 갖춘 글로벌 공급사가 많지 않은 이유다. 장덕현 삼성전기 사장은 지난 3월 주주총회에서 “FC-BGA 제품 수요가 생산능력보다 50% 이상 많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AI 부품 시장은 글로벌 고객사가 생산라인 증설 비용 일부를 부담하고, 대신 장기 물량을 확보하겠다는 요구를 할 정도로 수요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업체가 먼저 생산설비를 늘린 뒤에 고객사를 확보한 기존과는 정반대 구조다.
조현지 D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기가 생산능력을 공격적으로 확대하더라도 증설 이후 수요가 공급에 미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며 “고객들이 장기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현재 업황은 2028년 이후 물량 가시성까지 담보할 만큼 전례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AI 반도체 통합 패키지 구상
신사업도 키우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실리콘 커패시터다. 실리콘 커패시터는 전기를 일시적으로 저장했다가 필요한 시점에 방출해 반도체 패키지 내부 전압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부품이다. 일종의 전력 완충장치 역할을 한다.

삼성전기는 AI 서버 수요 확대 등에 힘입어 실리콘 커패시터 시장이 연평균 18% 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우주와 광통신 분야도 새로운 수요처가 될 수 있다. 전압과 온도 변화가 큰 환경에서도 안정적인 성능을 구현할 수 있어서다.
삼성전기는 실리콘 커패시터를 기존 FC-BGA, MLCC와 결합해 통합 솔루션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개별 부품 공급을 넘어 ‘AI 반도체 패키지’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일본 무라타와 대만 TSMC도 실리콘 커패시터를 생산하고 있지만 MLCC, FC-BGA, 실리콘 커패시터 역량을 모두 보유한 주요 기업은 삼성전기가 유일하다.
유리기판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플라스틱 기판 대신 유리기판을 사용하면 데이터 전송 속도를 높일 수 있고 전력 효율을 30%가량 개선할 수 있다.
잠재력 남아…급등은 유의
최근 주가 급등세를 두고도 증권가는 성장 잠재력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평가한다. 박준서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AI 시장에서 AI 가속기 기판은 전략물자급으로 부상했다”며 “중국 본토 기업들의 PCB 생산 점유율이 전 세계 생산의 과반을 차지하는 와중에 중국 외 공급망 확보를 통한 안정적인 AI 부품 조달이 빅테크 기업들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고 했다. 그는 이어 “삼성전기는 중국 기업이 아니면서 글로벌 기술력을 갖춘 몇 안 되는 업체인 만큼 구조적 재평가 동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고선영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공급 증가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가 2028년 이후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물량 성장세(Q)가 받쳐주는 와중에 가격(P)이 높아지는 국면이 시작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단기간에 주가가 급등한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실적과 매출을 기반으로 오른 주가라 하더라도, 주가가 빠르게 오른 만큼 단기적으로는 밸류에이션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추격 매수보다는 조정 구간에서 분할매수 하는 전략이 효율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선한결 한국경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