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에서 문화-역사책 읽고 토론… 인문학으로 ‘생각하는 힘’ 키워

김민지 기자 2026. 7. 16. 0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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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실천학교’ 당곡고 가보니
학생들에 깊이 읽기-생각 훈련… 도서반 등 인문학 동아리 활발
학부모 자체 독서모임도 생겨나… 동백꽃 읽고 김유정문학촌 방문
서울교육청 “2030년 모델 확립”
올해 4월 예술콘텐츠 기획자 김혜연 씨(왼쪽)가 서울 관악구 당곡고에서 ‘인류 문명과 미래 사회’를 주제로 강연한 뒤 학생들의 질문을 듣고 있다. 당곡고 제공
생성형 인공지능(AI) 활용, 과도한 스마트폰 사용, 짧은 영상(숏폼) 시청 증가 등으로 초중고교 학생들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하다. 적절하게 디지털 콘텐츠를 활용하면 유익할 수 있지만 과도하게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긴 글을 읽고 맥락과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전국 시도교육청 중 처음으로 5개 고교를 ‘인문학 실천학교’로 선정해 운영하고 있다.

인문학 실천학교는 인문학적 소양과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 활동 전반에서 문학, 문화, 역사 등 인문학 교육을 실시한다. 9일 ‘인문학 실천학교’를 운영 중인 서울 관악구 당곡고를 찾았다.

● 정규 과목과 별도로 ‘인문학 심화 학습’ 운영

당곡고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인문학 기반의 교육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 1학기 2학년 대상 선택과목인 ‘주제탐구독서’에서 개념 기반 탐구독서 수업을 진행했다. 3개 반 학생 63명이 해당 과목을 선택했다. 50분씩 20차례 수업이 진행됐다.

학생들은 인문교양 도서 ‘먼저 온 미래’를 읽고 ‘AI 시대와 문학’을 주제로 문학 평론가, 국어 교사 등의 역할을 맡아 AI 시대의 문예 창작과 글쓰기의 본질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희망 학생을 대상으로 정규 과목 이외에 별도로 인문사회아카데미도 운영한다. 아카데미에선 윤리, 역사 교사가 독서 강의, 심화 토론 등을 진행한다. 현재 56명이 신청했다.

1학기에는 스웨덴 통계학 석학 한스 로슬링이 쓴 ‘팩트풀니스’(2018년)를 활용해 인간의 판단 오류와 반지성, 비합리성 등에 대해 토론했다. 4월과 6월에는 각각 예술콘텐츠 기획자 김혜연 씨와 이효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초청해 ‘인류 문명과 미래 사회’, ‘헌법으로 만나는 나, 우리, 대한민국’을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이 학교 1학년 조하은 양은 “기술 혁신으로 AI 등이 인간을 대체하고 있지만 인문학 등 인간에 대한 학문을 좀 더 깊이 이해해야 기술 발전도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곡고는 인문학 동아리도 활발하다. 도서반, 토론반, 미디어리터러시반 등 인문학 관련 동아리만 15개에 달한다. 학부모 19명은 자녀 교육을 위해 별도의 인문학 동아리를 꾸려 참여하기도 했다. 책 한 권을 선정해 독서 토론을 하고 인상 깊은 구절을 캘리그래피로 적어 보기도 했다.

인문학 동아리에 참여한 학부모 한지혜 씨(48)는 “학부모들도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에 노출돼 평소 책을 읽을 기회가 적고, 자녀들과도 주로 입시 문제 등에 대해 대화한다”며 “다른 학부모들과 책을 읽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 서울시교육청, 모범 사례 만들어 공유

올해 5월 ‘사제동행 인문학 기행’에 참여한 당곡고 학생들이 조선 단종의 유배지인 강원 영월군 청령포 일대를 찾아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당곡고는 올 5월 ‘사제동행 인문학 기행’을 진행했다. 학생들은 작가 김유정의 소설 ‘동백꽃’ 등을 읽은 뒤 강원 춘천시 김유정문학촌을 방문했다. 또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촬영지이자 조선 단종 유배지인 강원 영월군 청령포를 찾았다.

인문학 기행에 참여한 당곡고 2학년 김민서 양은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작가의 생가 등 역사와 문학 관련 현장에 직접 가볼 수 있어 뜻깊었다”며 “현장학습에서 접한 내용으로 친구들과 모둠을 꾸려 발표하고 주체적으로 내용을 소화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당곡고는 올해 4월 프랑스 디종 한글학교, 5월 일본 쓰시마고와 국제 교류 활동을 진행했다. 프랑스와 일본 학생들이 당곡고에 방문해 한국식 급식 문화를 체험하고 당곡고 학생들과 교류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명은 당곡고 인문사회부장은 “글로벌 사회에서는 학생들이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관을 깊이 이해하고 포용하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인문학 실천학교를 확대해 운영할 방침이다. 2028년에는 시범 운영 사례를 다른 학교들과 공유하고 2030년에는 일반적인 운영 모델을 만들 방침이다.

신종호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대입 체제와 독서·인문 교육을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독서·인문 교육이 책 읽고 독후감을 쓰는 정도의 형식적 교육에 그치지 않도록 교사 역량을 강화하고 이를 위한 교육청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지 기자 min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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