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 ‘몸짓 데이터’ 주려고… 이 마을에선 머리에 폰 달고 망고 썬다

인도 남동부 첸나이의 주부 나기레디 스리라미야찬드라(25)는 망고를 썰기 전 스마트폰부터 머리에 고정한다. 카메라 렌즈가 향하는 곳은 그의 두 손이다. 한 손으로 망고를 돌리고 다른 손으로 칼날을 밀어 넣는 각도와 씨를 피해 과육을 자르는 순서가 영상에 담긴다. 촬영은 빨래를 개고, 설거지를 하며, 음식을 만들 때도 계속된다. 이렇게 하루 종일 집안일을 촬영하면 영상 1시간당 250루피, 약 4000원을 받을 수 있다.
머리에 스마트폰을 달고 집안일을 하는 이 낯선 부업은 휴머노이드 로봇을 가르치기 위한 ‘데이터 노동’이다. 사람이 물건을 집는 순서와 손가락을 움직이는 방법을 1인칭 시점으로 기록해, 망고를 썰고 빨래를 개는 로봇의 ‘행동 교과서’를 만드는 것이다. AFP는 “스리라미야찬드라 같은 인도 주부와 공장 노동자 등 수천 명이 로봇 학습용 데이터 생산에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사람의 몸에 카메라와 센서를 달아 실제 일상의 행동과 감각을 수집하는 새로운 ‘데이터 노동’이 빠르게 번지고 있다. 챗GPT 같은 대형 언어 모델(LLM) 기반 생성형 AI가 사람이 가공하고 분류한 기존 데이터로 학습을 시작했다면, 로봇과 같이 현실 공간에서 활동하는 피지컬 AI는 인간의 동작과 감각을 담은 새로운 데이터가 필요하다.
사람은 손에 든 컵이 미끄러지면 자신도 모르게 힘을 더 주고, 물건의 모양에 따라 손가락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바꾼다. 하지만 로봇은 이 모든 것을 하나하나 배워야 한다. AI 기업들은 이를 위해 사람의 손동작을 담은 1인칭 영상부터 관절의 움직임, 압력·촉각, 행동의 성공과 실패에 이르는 데이터를 대량으로 수집하고 나섰다.
◇마을·공장이 통째로 데이터 수집장
인간 행동 데이터 수집은 노동력이 풍부하고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와 중국을 중심으로 확산 중이다. 인도에서는 현지 데이터 업체들이 주부와 공장·건설 노동자를 모집하고, 중국은 지방정부와 대기업이 마을 주민과 요양보호사, 농장 노동자까지 동원한다. 미국에서는 시간당 30달러가 들지만, 인도에서는 6분의 1 이하 비용으로 맡길 수 있다는 것이 현지 업체들의 설명이다.

일부 인도 봉제 공장 노동자들은 카메라를 이마에 달고 셔츠와 바지를 꿰맨다. 천을 재봉틀에 넣는 속도와 옷깃·솔기를 맞추고 잘못 접힌 부분을 바로잡는 과정까지 영상으로 담는다. 공장 내부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이 기록되고 데이터로 전환된다. 현재 5개 주 6개 공장에서 이러한 데이터 수집이 벌어지고 있다고 영국 가디언은 보도했다. 이 중 몇몇 영상은 작업·휴식·대화 시간을 계산하는 생산성 분석에도 활용됐다. 공장 노동자의 숙련도까지 데이터가 된 것이다.
중국에서는 지역 전체가 행동 데이터 생산 기지로 바뀌는 사례도 나왔다. 미국 비영리 테크 매체 ‘레스트 오브 월드’에 따르면 중국 이커머스 기업 ‘징둥닷컴’은 장쑤성 쑤첸시 정부와 함께 2년간 로봇 학습 영상 1000만 시간을 확보하기로 했다. 주민들은 집안일을 촬영하고, 요양원 직원과 키위 농장 노동자들은 머리에 카메라를 달고 일한다. 징둥닷컴은 “장기적으로 직원 10만명과 외부 작업자 50만명을 데이터 수집에 참여시키겠다”는 구상도 내놨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내 피지컬 AI 스타트업들은 호텔 직원이 냅킨과 식기를 정리하는 동작, 물류 노동자가 물건을 쥐고 옮기는 방식을 촬영해 로봇 학습 데이터로 만들고 있다. 정부도 제조업 명장들이 오랜 경험으로 익힌 ‘손끝의 노하우’를 데이터베이스로 구축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는 노동자의 몸이 ‘AI 교재’
AI 산업의 이면엔 오래전부터 값싼 데이터 노동이 있었다. 생성형 AI가 대중화되기 전에는 개발도상국 노동자들이 글과 사진, 음성을 분류하고 꼬리표를 붙여 컴퓨터가 콘텐츠의 의미를 구분하도록 가르쳤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023년 오픈AI가 외주 업체를 통해 케냐 노동자들에게 성적 학대와 혐오 발언, 폭력 등을 묘사한 문장을 분류하게 하고 시간당 2달러 미만을 지급했다고 보도했다. 이 데이터는 챗GPT가 유해한 답변을 감지하고 걸러내도록 훈련하는 데 쓰였다.
과거 노동자들이 컴퓨터 화면 속 글과 사진에 꼬리표를 붙였다면, 피지컬 AI 시대의 노동자들은 카메라와 센서를 몸에 달고 같은 행동을 수십·수백 번 되풀이한다. 인간에게는 자연스러운 동작을 잘게 나눠 기계가 따라 할 수 있는 데이터로 바꾸는 피지컬 AI판 ‘디지털 단순 노동’이 등장한 것이다.
수집 현장은 가사·요양·농업·제조 등 향후 로봇 수요가 가장 큰 분야에 집중돼 있다. 휴머노이드가 이런 현장에서 일하려면 깨지기 쉬운 잔을 닦고, 모양이 제각각인 물건을 집으며, 상황에 맞게 힘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한재권 한양대 로봇공학과 교수는 “예컨대 달걀을 프라이팬 가장자리에 부딪혀 껍데기를 깨면서도 손으로 달걀 전체를 짓누르지 않는 미세한 움직임까지 데이터화해야 하는 것”이라며 “결국 피지컬 AI의 성능은 다양하고 질 좋은 행동 데이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달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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