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품, 佛 아비뇽 무대에… 세상의 폭력을 말하다
연출가 데플로리안·배우 피세두

“학살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우리의 작업은 세상의 폭력에 맞서 싸우려는 의지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한강의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이탈리아 연극으로 각색한 연출가 다리아 데플로리안과 주연 배우 피세두는 14일(현지 시각) 프랑스 아비뇽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들은 이날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의 유서 깊은 공연장인 카름 수도원 회랑에서 한강 작품을 원작으로 한 ‘사랑이란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가’ 공연을 마친 뒤 한국 취재진을 만났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제주 4·3 사건의 상흔을 세 여성의 시선으로 탐색하는 소설이다. 이란·우크라이나에서 국가 권력에 의한 학살이 계속 자행되는 상황에 대해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완전한 공포이자, 권력자들의 어리석음과 수치의 소산”이라며 “그들은 끔찍한 이야기를,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특히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연극을 계속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생각에 일을 그만두고 싶었을 정도”라고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강의 텍스트를 매개로 사람들과 우리의 여정을 공유할 이유를 찾아갔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연극으로 각색했던 데플로리안은 “‘작별하지 않는다’는 연결에 관한 이야기”라며 “사람들이 함께함으로써 뭔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했다. 작중 소설가인 경하는 사고로 손가락을 다친 친구 인선을 대신해 제주 집으로 향하고, 그곳에서 인선의 어머니가 간직해온 가족의 상처와 역사의 기억을 마주한다.
무대에서 세 배우는 역사와 기억의 상처를 상징하는 타다 남은 목재를 이리저리 옮기며 소통을 시도한다. 이날 공연장 500석이 만석이었다. 이들은 “관객도 우리를 바라보지만 우리 역시 관객의 얼굴을 바라보고 서로 소통하며 연극을 진행한다”며 “배우와 관객의 상호작용이 작품을 완성한다”고 했다.
제작진은 역사적 어두움을 응시하는 한강의 원작에 “매우 강렬한 슬픔이 흐르고 있다”면서도 “끝내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힘이 있다”고 평가했다. “소설 속 슬픔은 매우 강렬하지만 완전히 극복 불가능한 슬픔은 아니다. 한강의 글에는 항상 일종의 희망이 있다. 그것은 죽음에서 삶으로의 투쟁이고, 종국에는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 삶으로’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낯선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무대에 옮기기 위해 데플로리안과 피세두는 직접 제주 4·3평화공원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들은 “희생자 추모관을 직접 찾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그곳에서 많은 것을 보며 긴 하루를 보냈다. 제주 풍경과 바다까지 보고 이탈리아로 돌아와 소설을 다시 읽었을 때 작품은 완전히 다르게 다가왔다”고 했다.
데플로리안은 “한강이 폭력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특히 매료됐다”고도 했다. 그는 “한강은 사적인 폭력과 국가가 행사하는 보다 일반적이고 제도적인 폭력 사이에 분명한 경계를 긋지 않는다”며 “그 두 층위를 끊임없이 섞는 방식이 내겐 매우 인상 깊었다”고 했다. 또 한강이 “현실과 허구를 섞는 능력”, “이야기를 들려주는 능력과 동시에 언어의 수준, 시적인 질감을 유지하는 능력”에 특히 이끌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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