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서 국명 '루스' 변경론 재부상…국가 정체성 강화 차원

유철종 전문위원 2026. 7. 15. 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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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 우크라 외무장관 제안…러시아와 역사적 정통성 논쟁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국기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3.6.13 ⓒ 로이터=뉴스1

(서울=뉴스1) 유철종 전문위원 = 러시아와 오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서 국호를 중세 키이우 중심 국가의 명칭인 '루스'로 바꾸자는 주장이 다시 제기됐다.

1998∼2000년과 2005∼2007년 두 차례 우크라이나 외무장관을 지낸 보리스 타라슈크가 우크라이나의 국호를 '루스'로 바꾸는 방안을 제안했다고 타스 통신이 1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타라슈크 전 장관은 우크라이나 매체 'RBC-우크라이나'와의 인터뷰에서 "누구도 우리에게 국호를 바꾸라고 요구하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바꾸게 된다면 '루스'라는 이름을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와 북마케도니아 사이에서 벌어졌던 국호 분쟁을 언급하며, 유럽연합(EU)이 우크라이나의 회원국 가입 조건으로 국호 변경을 요구하는 상황이 온다면 '루스'로 개칭할 수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루스'(러시아어식 발음은 '루시')는 9∼13세기 키이우를 중심으로 형성된 중세 정치공동체를 가리키는 역사적 명칭이다. 후대 역사학계에서는 이를 보통 '키이우 루스'라고 부른다.

'러시아'(Russia)라는 명칭도 어원적으로는 '루스'에서 유래했다. 루스의 비잔틴·그리스어식 표현인 '로시아'(Rossia)가 모스크바 공국과 러시아 차르국에서 사용되기 시작했고, 이후 러시아 제국과 현대 러시아의 국명으로 자리 잡았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서는 누가 '루스'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했는지를 두고 오랫동안 논쟁이 이어져 왔다.

러시아 측은 키이우 루스를 현재 러시아·우크라이나·벨라루스의 공통 기원으로 보고 모스크바 공국과 러시아 제국이 그 계보를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우크라이나 측은 루스의 정치·문화적 중심지가 키이우였다는 점을 들어 러시아가 후대에 루스의 역사와 명칭을 자국 중심으로 전유했다고 반박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루스'라는 명칭을 자국 역사와 직접 연결하려는 움직임은 이전부터 이어져 왔다.

페트로 포로셴코 전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 2015년 키이우 대공 볼로디미르 대제의 사망 1000주년을 맞아 그를 '중세 유럽 국가 루스-우크라이나의 창건자'로 규정한 추모 법령에 서명했다.

다만 이 법령은 우크라이나의 국호를 '루스'로 바꾸자고 제안한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가 키이우 루스의 역사적 전통을 계승한다는 관점을 공식화한 것이었다.

키이우 대공 볼로디미르 대제(약 958∼1015년)는 980년부터 1015년까지 키이우 루스를 통치한 군주다. 988년 비잔틴식 기독교를 받아들여 루스의 기독교화를 추진했으며, 국가 통합과 비잔틴 문화 수용의 기반을 마련했다.

'루스-우크라이나'라는 역사 인식은 우크라이나의 역사학자이자 정치가인 미하일로 흐루셰우스키(1866∼1934)가 체계화했다.

그는 저서 '우크라이나-루스의 역사'에서 키이우 루스의 역사를 러시아사가 아닌 우크라이나사의 맥락에서 서술했으며, 이러한 역사관은 이후 우크라이나 민족사학과 국가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cjyou@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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