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르포]‘AI’가 증인으로…계성고 학생들의 ‘모의법정’ 가보니

조윤화 2026. 7. 1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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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사건·운영·AI 페르소나까지 직접 설계
딥보이스 범죄 놓고 학생 변호사·검찰 열띤 공방
15일 오후 1시 대구 계성고등학교 대강당에서 2026 계성AI 리걸테크 모의법정 경연대회(KAMT) 결선이 열리고 있다. 검사측 대표 김정원(16)양이 공소사실을 낭독하는 모습. <계성고 1학년 박범준 군 제공>

"원활한 재판 진행을 위해 모두 정숙해 주시기 바랍니다."

15일 오후 1시쯤 대구 서구 상리동 계성고교 대강당. 이곳에선 학생들이 직접 기획·운영한 '계성 AI 리걸테크 모의법정 경연대회(KAMT)' 결선 무대가 한창이다. 계성고에서 올해 처음 열린 이 대회는 AI 시대에 맞춰 사회적 문제를 법적 쟁점으로 재구성하고, 증거와 절차에 따라 판단하는 개인 역량을 기르기 위해 마련됐다. 참여 학생은 모두 18명. 학생들은 검사 측 3개 팀(각 3명)과 변호인 측 3개 팀(각 3명)으로 나뉘어 실제 형사재판처럼 사건 기록 분석과 증거조사, 증인·피고인 신문, 최후변론 등의 순으로 진행했다.

결선 주제는 'AI 음성복제, 이른바 딥보이스 기술을 이용한 범죄에서 기술 개발자에게 어디까지 형사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였다. 사건 개요는 AI 기술 개발자 A씨로부터 'AI 음성 복제 모델' 프로그램을 건네받은 기업 인수·투자 자문업체 대표 B씨가 타 회사인 C업체를 상대로 벌인 18억원대 사기극이다. B씨는 이 복제 모델로 C업체 대표 목소리를 불법 생성한 뒤, C업체 재무이사에게 곧장 전화를 걸어 "빨리 18억원을 송금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C업체 재무이사가 B씨 계좌로 회사 공금을 보냈고, B씨는 이 돈을 가로챈 뒤 곧장 해외로 도피했다. 이에 피고인으로 법정에 선 A씨가 자신이 만든 AI 기술이 사기 범죄에 쓰일 것을 알고 제공했는지 여부(사기 방조 혐의)가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다뤄졌다.

재판장(판사)을 맡은 2학년 조유진 양이 재판 시작을 알리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조양이 "사건 관련 영상을 시청하도록 하겠습니다"라고 말하자, 무대 위 스크린에 사건 개요를 담은 AI 영상이 재생됐다.

검사 측 대표로 나선 2학년 김정원 양은 "피고인 A씨가 범행을 직접 실행하진 않았지만, 음성 복제 기술이 사기 범죄에 악용될 위험성을 인식하고도 B씨에게 프로그램을 제공했다"며 "사건 당일 범행 시간대에 A씨와 통화한 사실도 확인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회사 정보 수집부터 AI 음성 제작, 실시간 음성변환 프로그램 확보, 허위 계약서 준비, 발신번호 변작과 범행 실행까지 모든 단계가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며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된 범죄로, A씨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사기 방조) 혐의가 성립한다"고 강조했다.

2026 계성 AI 리걸테크 모의법정 경연대회(KAMT) 결선에서 스크린 속에 등장한 AI 피고인 페르소나 가 변호인 측의 신문에 실시간으로 답변하고 있다. <계성고 1학년 박범준 군 제공>

반면 변호인 측 대표로 나선 1학년 박범준 군의 생각은 달랐다. A씨가 구체적인 사기 범행을 인식하고 도왔는지를 입증할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것. 박군은 "A씨는 직원 보안교육 영상에 사용할 기술이라는 설명만 들었고, 사건 당일 B씨와의 통화에서도 프로그램 접속 오류에 따른 재접속 방법만 안내했다"며 "마치 처음부터 범행 결과를 알고 행동한 것처럼 판단해선 안 된다. A씨가 구체적인 사기 범행을 인식했는지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반박했다.

이후 피고인 A씨에 대한 신문이 진행됐다. A씨는 AI로 설계된 가상의 인물인 이른바 '페르소나'였다. 검사와 변호인 측 학생들이 다양한 질문을 던지자, A씨가 실시간으로 답변했다. 검사 측 학생이 A씨 답변의 모순을 파고들면, 변호인 측 학생이 즉각 반론을 했다. 열띤 법적 공방전이 벌어진 것이다. 2시간가량 진행된 이날 재판의 향방은 앞서 선발된 배심원 8명의 몫이었다. 국민참여재판처럼 배심원들이 유·무죄를 평결했다. 배심원들은 변호인 측의 손을 들어주며 '무죄' 평결을 내렸다. 이에 재판부는 배심원 판단을 수용해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번 대회를 지도한 계성고 한정모 교사는 "준비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법과 기술을 함께 탐구하면서 문·이과를 아우르는 미래형 융합교육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조윤화기자 truehwa@yeongna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