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삼계탕집엔 기다란 줄, 보신탕 거리는 한산, 고기 대신 채소…‘초복’ 풍경

“젠슨 황도 먹은 곳이래. 기운 받고 가야지.”
초복인 15일 서울 종로구의 유명 삼계탕집에는 오전부터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공식 영업시간 전부터 포장을 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삼계탕을 양손에 들고 나온 김종영씨(79)는 “여기(식당)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가족들끼리 편하게 먹으려고 포장해 간다”고 말했다. 이곳은 원래 오전 10시에 영업을 시작하지만 이날은 9시부터 포장 손님을 받았다. 오전에만 포장 주문 수백개가 들어왔다.
10시에 매장에서 식사를 한 권연화씨(65)는 “건강에 좋으니까 초복 때마다 삼계탕을 챙겨 먹는다”며 “나는 미국에서 왔고, 친구는 광주에서 왔다. 미국에 있어서 잘 못오다가 오랜만에 와서 먹으니까 맛있고 좋다”고 말했다. 30대 임신부 여성 A씨는 “삼계탕이 요즘 비싸긴 하지만, 복날엔 이벤트성으로 먹을 만 한 것 같다”라며 “삼계탕이 비싸서 치킨으로 대신 먹을 때도 있다”고 전했다.
점심시간이 되자 삼계탕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덥고 습한 날씨에도 낮 12시쯤 식당 앞에는 가족, 친구들과 함께 온 100여명의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이곳을 찾은 시민들은 “여기가 삼계탕은 대한민국 1타야”, “젠슨 황도 먹었다잖아. 기운 받아야지”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한복을 입은 외국인 관광객들과 중국인 단체 손님들도 보였다. 일부 직장인들은 긴 줄에 놀라며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반면 ‘개식용 종식법’ 시행을 앞두고 보신탕집은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여름철 보양식 성지로 꼽히는 경기 성남 모란시장과 서울 종로 보신탕 거리에 있는 보신탕 가게들엔 이전과 달리 발걸음을 찾는 이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2024년 2월 개를 식용할 목적으로 사육·증식·도살하거나 유통·판매하는 행위가 전면 금지되는 개식용 종식법이 제정돼 내년 2월7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김용복 모란전통시장 상인회장은 “개도 없고, 사람도 없고, 여기는 한마디로 말하면 초토화됐다”며 “흑염소 정도는 먹으러 오는데, 보신탕을 먹으려는 손님들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농장에는 마리당 얼마씩 보상을 해줬지만, 우리 같이 보신탕집 하는 사람들은 보상도 없다”며 “몇년 전만 해도 보신탕 매출이 전체의 80% 이상이었는데, 지금은 10~20% 정도밖에 안 된다”고 했다. 건강원을 운영하는 B씨(56)도 “5년 전까지만 해도 복날이면 사람이 바글바글했는데, 개를 못팔게 하면서 싹 끊겼다”라며 “매출에 타격이 크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의 보신탕 거리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곳에서 보신탕집을 운영하는 70대 이덕성씨는 “이번 초복엔 작년에 비해 10분의 1밖에 안 팔렸다”며 “손님이 너무 없다”고 한탄했다. 40년째 보신탕집을 운영 중인 이모씨도 “원래는 2층까지 꽉 차야 하는데 지금은 텅텅 비어있다”며 “자꾸 개고기와 관련해서 뉴스에 나오니까 사람들 인식이 안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이날 보신탕을 먹은 70대 부부는 “몸에 좋다고 하니까 복날엔 보신탕을 챙겨 먹고 있다”며 “내년부터 불법이 되는지 몰랐다. 몸에 좋고 사람들이 많이 먹는데 왜 못 먹게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염소탕을 먹은 C씨는 “복날은 매년 챙기는 편”이라며 “집에서 애완견을 키워서 개는 안 먹는다”고 했다.

복날에도 삼계탕이나 고기 대신 채소와 비건 음식을 먹으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다. 이날 비건 메뉴를 판매하는 한 식당을 찾은 한모씨(42)는 “예전엔 ‘복날엔 닭 먹어야지. 삼계탕 먹어야지’ 이런 분위기여서 저도 삼계탕을 먹었었다”라며 “이젠 최대한 채식을 하려고 하고, 오늘은 채소로 끓인 육개장을 먹었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음식으로 먹는 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생각하면 ‘내가 기력 회복하겠다고 꼭 닭을 먹어야 하나?’ 싶더라”고 했다. 인사동 쌈지길에서 만난 박연옥씨(62)도 “복날이라고 꼭 고기를 먹어야 된다는 것도 다 옛말”이라며 “삼계탕에 인삼이 들어가고서 오히려 몸에 열이 나고, 먹고 나면 힘들어져서 잘 안 먹는다”고 했다.
평소 채식을 하는 이소영씨(24)는 “복날이라고 굳이 뭘 찾아먹지는 않고, 보통 대체 보양식으로 채소와 두부를 넣은 전골 음식을 많이 먹는다”며 “복날이라고 꼭 고기를 먹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 나의 건강을 위해 무언가를 당연하게 음식의 대상으로 간주하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채식주의자인 김서우씨(32)도 “이제는 특정 고기를 당연하듯 소비하는 관행 대신 환경과 건강을 모두 고려한 다양하고 친화적인 보양 문화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대전충남녹색연합은 이날 ‘초복 채식 요리 모임’을 진행했다. 시흥에코센터도 초복 기념 ‘복날채식 이벤트’(복채이벤트)를 열고 “보양식이 꼭 육식일 필요는 없다”며 “이번 무더위에는 몸도 지구도 함께 생각하는 건강한 채식 한 끼로 든든하게 기운을 채워보자”고 했다. 참가자들은 ‘콩국수’, ‘채소라구파스타’ ‘두부와 라이스페이퍼’, ‘연근구이 야채비빔밥’ 등 직접 만든 채식 식단 사진과 함께 ‘#초복 #복채이벤트 #채식식단’ 등 해시태그를 달았다.
최서은 기자 cielo@kyunghyang.com, 김은송 기자 ssong@kyunghyang.com, 임주영 기자 zoo@kyunghyang.com, 박민규 기자 mingyu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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