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뉴스 솎아내기] 벼랑 끝 몰린 회사채 개인 투자자들

대기업들이 발행한 회사채와 전자단기사채(전단채)에 투자했던 개인 투자자들 가운데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홈플러스의 회생절차 폐지와 파산 수순, 그리고 JTBC와 중앙홀딩스 등 중앙그룹 주요 계열사들의 무더기 법정관리 및 워크아웃 신청이 연쇄적으로 터졌기 때문이다. 한때 대기업이 발행한 ‘연 7~8%대 고금리 안전 상품’으로 포장돼 불티나게 팔렸던 채권들은 이제 사실상 휴지 조각이 될 위기에 처했다. 이번 사태는 한국 채권 시장이 가진 고질적인 제도적 허점과 투자자 보호 장치의 부재를 고스란히 드러낸 구조적 인재(人災)라는 지적이다.
한국금융연구원에 따르면 회사채 순매수 금액 중 개인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1.90%에서 2024년 8.03%로 치솟았고, 2025년엔 5.51%를 차지했다. 금리가 낮은 예적금보다 회사채가 수익률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채 투자에는 위험이 따른다. 개인이 보유하는 회사채 중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A등급 회사채 비중은 2022년말 약 17%였는데, 2024년말 41%로 급등했다. 기관투자자는 내부 투자가이드라인 등에 따라 안정성이 높은 채권에 주로 투자하는 반면 개인은 등급이 낮더라도 더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해 고위험 채권에 투자하는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실 기업의 채권이 아무런 정보도 없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밀어내기’ 식으로 판매된다는 점이다. 자금난을 겪는 한계 기업들은 만기가 짧은 전단채를 발행해 빚을 돌려막아 왔다. 신용위험을 감지한 은행과 자산운용사 등 기관들이 자금을 회수하며 발을 빼자, 발행사와 증권사들은 이 물량을 모바일 앱(MTS)을 통해 개인들에게 떠넘겼다. 위험 요인은 숨긴 채 높은 금리만을 미끼로 내걸었다.

주식이나 펀드 시장이었다면 엄격한 투자성향 평가와 불완전판매 규제에 걸렸을 상품들이, 채권 시장의 규제 사각지대를 틈타 개인들의 쌈짓돈을 삼킨 것이다.
제도적 허점도 기업들의 편법을 부추겼다. 자본시장법상 만기 3개월 미만의 단기 사채나 사모 채권은 금융당국에 까다로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들은 이를 악용해 수백억원짜리 채권을 쪼개 개인에 판매하며 감시망을 피했다. 게다가 신용평가사들의 뒷북 신용등급 강등은 개인 투자자들의 대피로를 원천 차단했다. 기관들은 정보망을 통해 기업의 자본잠식 상태를 미리 파악하고 먼저 빠져나갔지만, 개인이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공시는 부도가 임박해서야 이뤄졌다. 철저한 정보 비대칭성 속에서 개인들은 기관의 손실을 대신 떠안는 설거지 창구로 전락한 셈이다.
이제라도 개인 채권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한 전면적인 제도 개혁에 나서야 한다. 공모 채권에만 한정돼 있는 사채관리회사 설치 의무를 개인에게 판매되는 단기 사채와 사모 채권까지 확대해야 한다. 사채관리회사는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이 투자자에게 약속한 대로 원금과 이자를 잘 갚는지 감시하고, 기업에 문제가 생겼을 때 투자자들을 대신해 법적 권리를 행사하는 전문 기관이다. 또한 기업이 부도나 회생 절차에 들어갔을 때 흩어진 개인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단기사채권자 집회 제도’를 신설하고, 전자투표 도입과 의결 요건 완화를 통해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대형 기관의 담보 채권에 밀려 개인의 무담보 채권이 무조건 최후순위로 밀리는 파산 변제 구조도 손질이 필요하다.
금융당국과 사법당국의 단호한 조치도 병행돼야 한다. 발행사가 신용등급 강등과 부도 가능성을 인지하고도 채권을 찍어냈다면 이는 명백한 ‘사기 발행’이다. 판매 과정에서 위험 고지를 누락하거나 해피콜을 건너뛰도록 유도한 증권사들 역시 불완전 판매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금융감독원은 피해자들의 분쟁조정 신청을 신속히 처리하고, 증권사의 책임을 물어 투자금 선지급 등의 구제책을 이끌어내야 한다.
이영경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자본시장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사채 관련 제도를 시급히 정비해야 한다”며 “사채관리회사 설치 의무화, 무기명사채권자의 사채권자집회 참여요건 개선, 단기사채 제도 보완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의 신뢰는 투자자 보호에서 시작된다. 개인이 기업의 부실 위험을 독박 쓰는 낙후된 채권 시장 체질을 바꾸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홈플러스 사태는 언제든 재현될 것이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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