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장마도 못 막은 노봉법 첫 하투…기업 덮친 ‘원청·AI·성과급’

임주희 2026. 7. 1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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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교섭 요구 본격화…AI 고용보장·성과배분도 쟁점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15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대회에 참가했다. 이들은 “원청교섭 쟁취”, “진짜 사장이 나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투쟁을 진행했다. 임주희 기자


15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노조 조합원들로 가득 찼다. 현대자동차·기아·한국GM 등 완성차 조합원은 물론 협력업체 노동자들까지 한데 모여 “원청교섭 쟁취”, “진짜 사장이 나와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올해 총파업은 예년처럼 임금 인상만을 요구하는 집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원청교섭’, ‘인공지능(AI) 고용보장’ 등 새로운 구호가 곳곳에서 등장했다. 지난 3월 시행된 이른바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 이후 처음 맞는 하투(夏鬪)에서 노동계의 요구도 한층 확대됐다.

올해 하투는 임금협상을 넘어 기업 경영 전반을 흔드는 복합 노사 이슈로 번지고 있다. 원청의 사용자 책임 확대를 요구하는 노란봉투법, AI와 자동화 확산에 따른 고용 불안, 경기 둔화 속 성과급 확대 요구가 동시에 분출하면서 기업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이날 총파업에서 지난 3월 시행된 노란봉투법의 실질적인 이행을 핵심 요구로 내세웠다. 개정 노조법은 원청의 사용자 책임 범위를 넓혀 하청 노동자와의 교섭 의무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노동계는 법 시행 이후에도 원청 기업들이 직접 교섭에 소극적이라며 실질적인 원청교섭을 촉구하고 있다.

한선이 민주일반연맹 세종충남지역노조 위원장은 현대차를 겨냥해 “세계 최고의 자동차를 이야기하기 전에 공급망 노동자의 삶도 함께 말해야 한다”며 “원청이 책임은 외면한 채 납품단가만 압박하는 구조가 계속되면 공급망 갈등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산하 조직들도 업종별 파업에 나섰다. 금속노조는 전국 사업장에서 4시간 이상 파업을 벌인 뒤 지역별 집회를 열고 민주노총 총파업대회에 합류했다. 현대차 노조는 임금 및 단체협약 교섭 결렬에 따라 지난 13일부터 주·야간조가 각각 2시간씩 부분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GM 노조도 전날 교섭 결렬 이후 이날부터 이틀간 전·후반조 각각 4시간 파업에 돌입하며 사측 압박 수위를 높였다.

기아, 한국GM 등 완성차 지부와 협력사 지부가 함께 15일 오후 3시 서울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총파업대회에 참가했다. 임주희 기자


노동계의 요구는 과거보다 다양해졌다. 기아 협력업체에서 근무한다고 밝힌 한 조합원은 “원청은 납품단가를 계속 낮추면서도 정작 현장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처우에는 책임을 지지 않는다”며 “원청이 납품단가만 결정할 게 아니라 노동환경과 고용도 함께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금속노조는 기본급 인상뿐 아니라 AI 도입 시 고용 및 인권 보호, 정년 연장, 신규 채용 등을 공동 요구안에 담았다. AI와 로봇 도입이 빨라지면서 자동화에 따른 고용 불안이 주요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박상만 금속노조 위원장은 “사측의 일방적인 생산 기반 해외 이전과 AI 도입, 자동화 확대로 고용 불안이 극심해지고 있다”며 “산업 전환에 따른 고용 대책을 적극 요구하고, 1차 파업으로 안 되면 2차, 3차 파업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과급을 둘러싼 갈등도 올해 하투의 쟁점으로 꼽힌다. 반도체 업계에서 시작된 성과급 논란이 제조업 전반으로 번지면서 임금 인상보다 기업 실적에 따른 성과 배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대차 노조는 순이익의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다른 제조업 사업장에서도 성과 공유를 요구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기업들은 노사 부담이 한층 커졌다는 분위기다. 미국의 관세 정책과 경기 둔화 등으로 수익성 방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성과급 확대 요구와 원청교섭, AI 관련 고용 이슈까지 동시에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원청 기업이 하청 노동자와 직접 교섭해야 하는 사례가 늘어날 경우 경영 부담도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예년에는 임단협이 중심이었다면 올해는 원청 사용자성, AI에 따른 고용 문제 등이 동시에 얽히며 노사관계가 훨씬 복잡해지고, 시간과 비용 부담이 커지고 있다”며 “노사 모두 시간적·비용적 소모를 줄이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교섭 기준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주희 기자 ju2@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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