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 ‘영끌’ 자본확충 경쟁…유증부터 신종자본증권·CP까지 총동원
단기차입 확대 따른 유동성 부담 우려도

올해 국내 증시 호황으로 투자자 자금이 증시로 몰리면서 증권사들의 자본 확충 경쟁도 거세지고 있다. 유상증자는 물론 신종자본증권과 기업어음(CP), 단기사채 발행까지 동원하며 영업 확대와 신규 사업 진출을 위한 자금 확보에 나서는 모습이다.
대형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들은 초대형 투자은행(IB) 사업 확대와 신규 인가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조 단위 유상증자에 나서고 있으며, 일부 증권사는 신종자본증권 발행으로 자본 적정성을 높이는 한편 영업 확대에 필요한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해 CP와 단기사채 발행도 늘리고 있다.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주요 증권사들이 단행한 유상증자 규모는 수조원대에 달한다.
올해 초 한국투자증권이 한국금융지주로부터 1조5000억원의 자금을 수혈받으며 포문을 열었고, 지난 4월에는 우리투자증권이 종합금융투자사업자(종투사) 진입 요건인 자기자본 3조원 달성을 위해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NH투자증권이 4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완료하며 모험자본 투자 확대 기반을 마련했다. 자본 확충 규모가 가장 큰 곳은 KB증권이다. KB증권은 올해 2월 7000억원 증자에 이어 지난달 1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추가로 결정해 총 1조7000억원의 자본을 확충했다. 증자가 마무리되면 KB증권은 종합투자계좌(IMA) 인가 요건인 자기자본 8조원을 넘어서며 초대형 IB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전망이다.
중소형사 가운데서는 한양증권이 지난달 말 최대주주인 KCGI를 대상으로 500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의했다. 지난 8일 법원이 소액주주 등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서 예정대로 자본을 확충할 수 있게 됐다.
신용평가업계 관계자는 “유상증자는 타인 자본이 아닌 순수한 자기 자본이 유입되는 형태이기 때문에 레버리지를 일으켜 비즈니스를 수행하는 증권업 특성상 크레딧(신용도) 관점에서 가장 명백한 강점을 지닌다”고 평가했다.
모든 증권사가 유상증자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일부 대형·중견 증권사는 신종자본증권 발행을 통해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다.
올해 메리츠증권(4650억원)을 비롯해 신한투자증권(2000억원), DB증권(1500억원), 대신증권(1400억원), iM증권(1500억원 예정) 등 5개 증권사가 발행했거나 발행 예정인 신종자본증권 규모는 총 1조1050억원에 달한다.
증권사들이 신종자본증권을 선택하는 이유는 신주를 발행하지 않아 기존 주주의 지분율과 의결권을 희석하지 않으면서도 회계상 자기자본과 순자본비율(NCR) 등 자본 적정성 지표를 개선해 신용공여와 기업금융(IB) 투자 여력을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iM금융지주 계열인 iM증권은 조달한 자금을 채권 운용과 IB 영업력 회복에 투입할 계획이다. 독립계인 DB증권은 확보한 자본을 바탕으로 신용공여 확대와 함께 PB·IB를 연계한 PIB 사업, ETF 시장조성 업무 등을 강화할 방침이다. 대신증권도 자기자본 3조원 기준을 넘기며 종투사 지정을 위한 자본 확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장기 자본 확충과 함께 단기 유동성 확보를 위한 CP와 단기사채 발행도 크게 늘었다.
한국예탁결제원 세이브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국내 증권사 28곳의 CP 및 단기사채 발행금액은 총 664조300억원으로 지난해 상반기(220조2216억원)보다 201.5% 증가했다. 이 가운데 만기가 짧은 단기사채 발행액은 615조7843억원으로, 상반기 투자자 신용융자 수요와 상장지수펀드(ETF) 거래대금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발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상반기 주식시장 활황에 따른 고객 신용융자와 ETF 거래량 증가로 유동성공급자(LP) 거래도 확대되면서 거래소 증거금과 의무예치금 변동성이 커졌다”며 “이에 대응하기 위해 초단기 단기사채 발행을 늘리는 한편 금리와 지수 상승에 따른 CSA(신용지원부속협정) 담보 제공 부담에 대응하고 유동성 비율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만기가 상대적으로 긴 중장기 CP 발행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신증권은 늘어난 CP 부담을 줄이기 위해 장기 자본성 증권인 신종자본증권으로 차환하며 단기 상환 부담을 낮추기도 했다.
다만 증시 호황을 전제로 확대된 자금 조달이 향후 시장 둔화 국면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요 증권사들의 자기자본 대비 단기차입 비중은 지난해 말 기준 129.6%로 10년 전인 2015년(23.3%)보다 크게 높아진 상태다. 최근 발행된 신종자본증권의 최초 표면금리도 연 4.8~5.9% 수준으로 높은 편이어서 자본 증가 속도에 비해 이익 증가가 더디면 자기자본이익률(ROE)이 하락하고 자본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도 지난 6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 “최근 증권사의 단기시장성 차입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기업금융과 모험자본 투자 확대 등으로 중장기·비유동성 자산 투자가 늘어날 경우 자산·부채의 만기 불일치가 심화되며 유동성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진우 기자 pjw19786@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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