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홈플러스의 몰락…1만 3천 노동자의 삶은 [취재파일]
58살 송보미 씨는 2008년 홈플러스에 입사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손이 조금 덜 가기 시작한 삼십대 후반, 학원비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송 씨는 홈플러스 강서점 계산대에서 18년 넘게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동네 손님들과도 가족 같은 정을 쌓았습니다. 한때는 국내 대형마트 업계 선두를 다투던 회사에서 일한다는 자부심도 컸습니다.
그랬던 일터가 이제 존폐의 기로에 섰습니다. 매장 진열대는 하루가 다르게 비어갔고,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하나둘 회사를 떠났습니다. "여기 문 닫으면 어디를 가야 하느냐"며 눈시울을 붉히는 80대 단골 고객 말에 고개를 들기 어려웠습니다. 가장 답답한 건 20년 일한 회사로부터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했다는 겁니다. 회사만 살릴 수 있다면 구조조정도 받아들이자는 게 직원 다수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래도 기다리고 버티면 회생할 수 있을 거란 희망 하나로 물품을 채워 넣고 매장을 쓸고 닦았습니다.
회생절차 1년 4개월 만에 중단…"서서히 늙어간 회사"

서울회생법원은 지난해 3월 시작된 홈플러스 회생절차를 1년 4개월 만에 중단했습니다. 회생계획을 이행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운영자금 2천억 원을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한 대주주 MBK파트너스와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그룹은 누가 얼마나 자금을 부담할지를 두고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운영 자금이 바닥난 홈플러스는 지난 13일 영업 시작 10분 전, 전국 67개 점포의 갑작스러운 휴점을 통보했습니다. 마트를 찾은 고객도, 손님 맞을 준비를 하던 직원들도 황당할 정도의 휴점 선언이었습니다.
빚으로 홈플러스 인수한 MBK..변화 속도 못 따라가
"월급을 줄여서라도 회사를 살리고 싶다"..정부 개입 촉구

마트산업노조는 대주주인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 정상화를 위한 책임을 다하지 않고 있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대통령까지 나서 후보 시절 홈플러스 정상화를 약속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지금은 정치권의 대책을 찾아보기 어렵다고 호소합니다. 홈플러스 사태가 불거진 이후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앞다퉈 사모펀드 통제방안을 발표했지만, 마련된 규제 내용을 보면 통제력이 미흡한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사모펀드에 대한 금융감독원의 검사·감독 강화나 자율규제 성격의 내부통제 기준 제정 등 법 개정이 필요 없는 '생색내기용' 조치에 그친다는 시각도 있습니다. 사모펀드 규제를 위한 법안들은 모두 소관 상임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계류 중인 상태입니다. 이한진 민주노동연구원은 연구위원은 "주요 쟁점이었던 차입 한도 축소(400% → 200%)는 금융위원회의 조율로 200% 초과 시 사후 보고의무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변경되면서 규제의 실효성을 상실했다"면서, 사모펀드의 주된 피해자였던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책 또한 "근로자 대표에게 고용영향을 통지해야 한다는 수준"에 머물렀다고 비판했습니다.
사모펀드 규제 장치 마련해야.."자본 유출 행위 엄격하게 금지"
노사 간의 투명한 소통도 중요합니다. 유럽에서는 사모펀드가 비상장 기업 지분의 10% 이상을 취득할 경우, 해당 기업의 노동자를 포함한 이해관계자에게 향후 경영 전략 및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 세부 정보를 반드시 공지하도록 법으로 강제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기업의 변화를 미리 알고 대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한 겁니다. 올해 초 홈플러스가 법원에 제출한 구조혁신형 회생계획안에는 점포 폐점과 인력 감축이 포함됐습니다. 노조 내부에서는 의견이 엇갈렸지만, 적지 않은 노동자들은 "회사를 살릴 수만 있다면 구조조정도 감수하자"고 말했습니다. "몇 달치 월급을 반납해서 라도 회사를 살리고 싶다"는 목소리까지 나왔습니다.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이 계획안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습니다.

기업의 실패, 고통은 가장 아래쪽부터
(참고자료) 이한진 연구위원, 민주노동연구원 이슈페이퍼 <MBK 홈플러스 사태 이후 사모펀드 규제 방향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사진=연합뉴스)
제희원 기자 jes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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