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먹고 다시 채우는 ‘마을 사랑방’… “나눔의 정 팔팔 끓어요”[나눔 실천하는 초록빛 능력자들]
부산 동구 ‘끼리라면’
유치원생부터 어르신까지
작년 라면 후원만 1만984개
모두가 이용자이자 후원자
단순 수혜 아닌 참여형 기부
“고립감 넘어 마음 잇는 공간”

“나 같은 사람을 1인 고립 가구라 부르더라고요. 하지만 여기 오는 게 요즘 제 낙입니다.”
부산 동구 범일동에 사는 50대 김모 씨는 지난해 6월 20일 ‘끼리라면’이 문을 연 뒤로 편도 1시간 거리를 매일 걸어 이곳을 찾았다. 10년 전 어머니를 여읜 뒤 홀로 지내온 김 씨는 지난해 7월 초록우산 부산종합사회복지관(복지관) 직원에게 “집에 혼자 있으면 더 힘들어서 일부러 나온다”고 털어놨다. 초기엔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식사만 하고 돌아갔지만, 시간이 지나며 먼저 인사를 건네고 이웃과 일상 대화를 나누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끼리라면은 복지관이 지난해 처음 시작한 부산 동구 주민조직화 사업이다. ‘우리끼리 라면 끼리(끓여) 먹으러 가자’는 부산 사투리가 사업명에 그대로 담겼다. 복지관 후문 인근의 빈집을 리모델링해 공간을 마련했다.
동구는 2024년 부산통계연보 기준 인구 대비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비율이 12.13%로 부산 16개 구·군 중 영도구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1인 가구 비율도 51.7%로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두 번째로 높다. 복지관은 이런 지역 특성을 고려해 1인 가구와 사회적 고립 가구가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고 식사를 나눌 수 있는 생활밀착형 거점 공간으로 끼리라면을 기획했다. 누구나 라면을 기부하고, 필요한 사람이 그 라면을 먹는 방식이다. 복지관 관계자는 “단순한 수혜 중심 지원이 아니라 누구나 ‘받고 다시 채우는’ 참여형 나눔 구조로 지속 가능한 지역 나눔 문화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성과도 뚜렷했다. 실제로 지난해 6월 개소 이후 연말까지 2187명이, 올해 들어 지난달까지 1945명이 다녀갔다. 입소문을 타면서 단순한 ‘라면 공간’을 넘어 이웃과 안부를 묻고 관계를 회복하는 동구형 마을 사랑방이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1주년 기념행사에서 한 방문자는 “끼리라면은 마음을 잇는 공간”이라며 “함께 나누며 고립과 소외를 넘어 누구도 혼자가 아닌 곳으로 기억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누적 후원금은 2916만 원, 라면 후원은 1만984개에 달했다. 개인 후원자는 물론, 기업·단체·상가 등 다양한 주체가 정기·일시 후원, 물품 기부 등 여러 형태로 힘을 보탰다. 가장 큰 특징은 후원자와 이용자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라면을 먹고 간 주민이 “다음 사람도 먹게 두고 가야지”라며 다시 라면을 채워놓는 모습이 일상이 됐다. 한 아이는 용돈을 모아, 한 부자(父子)는 민생회복지원금을, 어린이집 원아들은 가정에서 모은 라면을 기부하기도 했다.
복지관 관계자는 “아이부터 옆집 할머니, 청년, 직장인까지 연령과 계층을 막론하고 기부 참여가 일상화됐다”며 “늘 혜택을 받던 수급자와 독거 어르신들이 누군가를 돕는다는 의미를 갖게 되면서 심리적 회복과 자존감 향상으로 이어졌다”고 전했다.
지난해 11월 18∼20일에는 이주배경가정 등 지역주민 397명이 참여한 ‘세계 라면 체험’ 프로그램도 열렸다. 일본·태국·베트남·중국 등 4개국 10종의 라면을 놓고 자유롭게 조리·체험하도록 했으며, 이주배경가정이 직접 자국 라면 조리법을 소개하며 자연스러운 문화 교류가 이뤄졌다. 참여 주민은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보지 못했는데, 여기서 다른 나라 라면을 먹으니 여행 간 사람이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문화일보 - 초록우산 공동기획
이예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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