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면 여행가방 가득 화장품’···내수 소비 끌어올린 건 알고보니 외국인?[경제밥도둑]

윤기은 기자 2026. 7. 15.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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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화장품 소비 급증
올리브영 1~5월 외국인 매출 44% 증가
외국인 SNS서 구매 인증 유행 등
소매판매지수 반짝 늘었지만 자동차 등은 소비 줄어
한국에서 화장품을 구매한 외국인들이 SNS에 올린 영상. 인스타그램 갈무리

“서울에서 딱 하나만 사려고 했는데, 결국 이만큼 사버렸다.” 최근 SNS에는 한국 여행 중 구매한 화장품을 숙소 침대 위에 가득 펼쳐놓은 외국인 관광객들의 영상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여분으로 챙겨온 ‘전용 여행가방’에 한국 화장품을 가득 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외국인들의 한국 화장품을 향한 ‘애정’은 국가 통계로도 확인된다. 5월 국내 승용차 판매가 부진하고, 반도체 생산 등이 소폭 부진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비내구재(사용기간이 짧은 제품)인 화장품은 소비지수를 끌어올렸다. ‘내수활성화’의 지표 중 하나인 소매판매액이 ‘반짝’ 증가했는데 이를 끌어올린 주체가 화장품을 대거 사들인 외국인 관광객이었던 셈이다. 관광산업 활성화로 서비스업이 나아진 건 긍정적이지만 소비지수를 끌어올린 주체가 ‘외국인’이라는 점에서 내수 활성화의 ‘착시’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외국인 관광객 한 달 간 2조원 소비···K뷰티가 견인한 소비 지수
지난 5월27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2026 서울국제화장품ㆍ미용산업박람회(코스모뷰티서울) 및 국제건강산업박람회에서 외국인 참관객들이 제품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가데이터처가 지난달 30일 발표한 5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전산업 생산은 전월 대비 0.3%, 설비투자는 0.1% 감소한 반면, 소비는 0.1% 소폭 증가했다.

특히 소비 중 화장품 소비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계절적 요인을 제거한 소비 지수인 ‘화장품 소매판매액 계절조정지수’는 5월 기준 95.8을 기록했다. 1년전보다 15.3%나 급증했다. 전월과 비교해도 6.8% 상승한 수치다.

올해 1월 93.4(전년 동월 대비 6.9%), 2월 87.2(-2.4%), 3월 91.1(5.0%), 4월 89.7(4.2%) 등으로 올초부터 전반적으로 견조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데이터처는 이 같은 화장품 소비 증가의 원인으로 화장품 판매점의 할인 행사와 외국인 관광객 증가를 지목했다. 이두원 데이터처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최근 외국인 관광이 증가하면서 면세점뿐만 아니라 전문 판매점에서도 화장품 판매가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공연과 애니메이션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 등 영향으로 지난 1분기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476만명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3% 증가했다.

한국으로 몰려든 외국인 관광객은 국내 소비 지표에 영향을 미쳤다. 한국관광공사가 집계한 외국인 관광객의 5월 카드 소비액은 2조1222억원으로, 2018년 관련 집계 이후 처음으로 2조원을 넘어섰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화장품 판매 채널도 다변화화하고 있다. 같은 통계에서 전체 업종 중 약국(206%) 소비 증가율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는 약국이 기초화장품 판매를 늘리면서 K뷰티 소비의 한 축으로 자리 잡은 여파로 분석된다. 외국인이 화장품 구매 시 주로 방문하는 백화점(89.2%)과 면세점(87.6%)에서의 카드 소비도 일제히 늘었다.

‘관광 코스’로 자리 잡은 드러그스토어 올리브영의 지난 1~5월 외국인 오프라인 매출 역시 지난해 동기 대비 44% 증가했다.

외국인이 한국산 화장품을 선호하는 요인으로는 합리적인 가격과 품질, 한국 드라마와 연예인, 인플루언서 등 미디어의 파급력 등이 꼽힌다. 원화 가치 하락(원·달러 환율 상승)이 이어진 시점과 맞물려 외국인 관광객들은 ‘가성비 쇼핑’을 하는 이점도 누리고 있다.

‘경기 지표’ 내구재 소비는 하락···내수지표는 마이너스

소매판매 지수는 외국인 구매력으로 뒷받침됐지만 국내 내수 경기는 부진한 상태다. 현재의 경기 상태를 나타내는 동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는 5월 들어 전월보다 0.3포인트 하락했다. 기업이 생산한 제품의 국내 출하 물량을 뜻하는 내수 출하지수와 광공업 생산지수 등이 감소한 영향이다.

특히 경기 상황을 반영하는 내구재 소매판매액 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3.6% 감소했다. 내구재 중에서도 승용차, 통신기기, 컴퓨터 등 고가 제품의 소비가 줄었다. 이는 생활필수제품이 포함된 비내구재(2.1%)나 의류 등 준내구재(7.7%) 소매판매액 지수가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소모성 제품은 잘 팔리고 있지만, 단가가 높은 자산성 제품에는 지갑이 열리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5월 선행종합지수 순환변동치가 전월 대비 0.7포인트 오르는 등 일부 경기 지표는 5월 들어 반등했으나, 반도체 등 특정 수출 산업 경기만 개선되고 내수 소비는 침체되는 ‘K자형 양극화’는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부는 경기 지표 개선을 전망하면서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재정경제부는 “에너지 수급과 공급망 상황이 점차 안정화하고 소비심리가 2개월 연속 상승한 가운데, 수출·자본재 수입과 건설수주 등도 양호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며 산업활동 주요 지표가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고물가·고환율·고금리와 고용 둔화에 따른 민생 어려움이 이어지는 만큼 민생 부담 경감에 총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외국인 관광객의 소비가 늘어나는 현상은 긍정적이긴 하지만, 외국인의 소비는 수출과 가까운 성격으로 경기가 회복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며 “내수 활성화는 다수가 소비하며 이뤄지는데 최근 소득, 소비 양극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성장의 과실이 고르게 분배돼 국민 소득과 소비가 함께 늘어나는 구조가 자리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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