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우의 핫스팟] 현대차 노조 해결 방안은 '역할의 연속성'
시급제서 월급제 전환 논의
특근 수당 감소 우려 확산
노사 생존 위한 타협 시급

집에 최신형 로봇청소기를 들였다. 먼지 흡입은 물론이고 알아서 걸레를 빨고 건조까지 해내는, 그야말로 가전의 꽃이라 불리는 녀석이었다. 그런데 정작 집안의 청소 패권을 쥐고 있던 아내의 반응은 싸늘했다. "저 굴러다니는 하키 퍼크 같은 기계가 사람 손끝의 야무짐을 따라올 것 같아?"
자신의 고유한 가사 노동 영역을 침범당한 자의 실존적 위기감이다. 로봇청소기는 가사 노동 현장에 파업을 깨고 들어온 쇳덩어리 대체 인력이었다. 집사람의 고집, 과연 얼마나 갔을까.
한 달 뒤, 아내는 로봇청소기에게 김 이모님이라는 애칭을 하사했다. 기계가 소파 밑을 싹싹 기어 다니며 먼지를 쓸어 담는 동안, 아내는 소파 위에서 여유롭게 넷플릭스를 보며 청소 감독관으로 보직을 변경했다. 노동의 형태가 땀 흘리는 육체노동에서 우아한 관리 감독으로 넘어갔다.
현대자동차 생산라인에도 지금 거대한 '김 이모님'들이 대거 출근을 준비하고 있다. 로봇과 인공지능(AI)이다. 한데 거실과 달리 공장의 분위기는 살벌하다. 노사가 '월급제 공동 연구'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마주 앉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근 수당이라는 목줄과 공포의 진자
현대차 생산직에게 로봇은 내 월급봉투를 얇게 만드는 직접적인 위협이다. 현재의 시급제 구조에서는 땀 흘려 일한 시간, 특히 연장·야간·특근 시간이 곧 돈이다. 로봇이 투입돼 생산 속도가 빨라지고 잔업이 줄어들면 몸은 편해질지언정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쪼그라든다. 노동자 입장에서 기술 발전은 임금 삭감의 저주다.
이 지점에서 트랜서핑 모델의 거대한 '진자(Pendulum)'가 요동치기 시작한다. "로봇이 내 밥그릇을 깬다"는 공포는 노동자 집단 안에서 막대한 에너지를 빨아들이며 강박적인 저항의 진자를 만든다. 회사가 "생산성을 높여야 다 같이 산다"고 외칠수록 노조는 "우리를 다 쫓아내려는 수작"이라며 바리케이드를 높이 친다.
양측이 서로를 적으로 규정하고 힘을 줄수록 현실은 파국으로 굳어진다. 회사는 골치 아픈 국내 공장 대신 로봇 도입이 수월한 해외로 눈을 돌리고, 노조는 기계 반입을 온몸으로 막아선다. 두려워하던 결과를 스스로 끌어당기는 기막힌 '유도 전환'의 함정이다.
월급제, 로봇을 향한 '중요성'의 스위치를 끄다
시급제에서 월급제로의 전환은 지독한 유도 전환의 고리를 끊어내는 심리적 소화기다.
월급제는 '노동시간'과 '소득'을 분리한다. 로봇이 볼트를 대신 조여서 내 특근이 사라져도, 매달 일정한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것이다. 이 확신이 생기는 순간 노동자는 로봇을 그냥 굴러다니는 기계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트랜서핑의 언어로 말하자면 로봇이라는 존재에 과도하게 부여했던 '중요성(Importance)'을 확 낮추는 조치다. "로봇이 들어오면 우린 다 죽는다"는 잉여 잠재력이 사라지면, 팽팽했던 대립의 에너지도 거짓말처럼 식어버린다. 노동자는 생계를 방어하기 위해 억지로 기술을 막아설 필요가 없고, 회사는 노조와 전쟁을 치르지 않고도 자동화를 밀어붙일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보장이라는 이름의 독약, 청년 채용의 증발
그러나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월급제가 만병통치약인 줄 알고 들이켰다가는 더 치명적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월급제가 '무조건적 현상 유지'라는 새로운 진자로 변질되는 순간이다.
만약 노사가 "로봇이 들어와도 기존 인원은 한 명도 줄이지 않고, 노동 강도는 낮추되, 현재 수당 수준을 영구히 월급으로 보장한다"고 덜컥 합의해 버리면 어떻게 될까?
목표를 억지로 움켜쥐려는 순간 균형력은 반드시 반대로 작용한다. 인건비가 고정비로 굳어버리면 회사의 로봇 투자 회수 기간은 하염없이 길어진다. 비용 구조가 경직된 울산공장은 경쟁력을 잃고, 글로벌 본사는 신차 물량을 은근슬쩍 조지아 공장이나 인도 공장으로 돌릴 것이다.
더 잔인한 현실은 공장 밖에서 벌어진다. 기존 직원의 철밥통을 황금으로 코팅해 준 대가는 고스란히 미래 세대에게 청구된다. 인건비 부담에 짓눌린 회사는 신규 채용의 문을 닫아버린다. 겉으로는 해고가 없으니 '아름다운 노사 합의'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서는 청년들의 일자리가 증발하고 공장은 서서히 노인정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눈앞의 갈등을 피하려다 미래의 생명줄을 스스로 끊어버리는 꼴이다.
볼트 조이기를 지킬 것인가, 나의 가치를 지킬 것인가
진정한 전환은 본질에 집중할 때 일어난다. 노동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안정적인 소득, 직업적 자존감, 그리고 가족을 건사할 수 있는 예측 가능성이다. 회사 역시 고품질의 차를 싸고 빠르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양측이 외부 의도(External Intent)의 물결을 타려면, 자신이 원하는 결과가 자연스럽게 흘러오도록 물길을 터주어야 한다. 해답은 '역할의 연속성'에 있다.
볼트를 조이던 작업자가 로봇의 동선을 짜는 운용자로, 설비의 이상을 감지하는 진단자로, 품질 데이터를 분석하는 관리자로 진화해야 한다. 시급제 폐지는 '몸 쓰는 시간' 대신 '머리 쓰는 숙련도'에 값을 치르겠다는 패러다임의 전환이어야 한다. 생산성이 높아져 생긴 이익을 성과급이나 새로운 직무 수당으로 공정하게 나누고, 남는 시간을 재교육에 쏟아부어야 한다.
현실을 다루는 방식
로봇을 몇 대 더 들여놓는다고 공장이 하루아침에 AI 제조 기지로 변하지 않는다. 기계는 돈을 주면 내일 당장이라도 깔 수 있지만, 사람의 인식과 보상 체계는 돈만으로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사는 지금 가장 영리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갈림길에 서 있다. 월급제를 '과거의 기득권을 박제하는 방부제'로 쓴다면, 그 공장은 서서히 온기를 잃고 도태될 것이다. 반면, 기술의 공포를 덜어내고 노동자를 새로운 시대의 기술자로 거듭나게 하는 '트랜지션(Transition)의 발판'으로 삼는다면 한국 제조업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
변화는 피할 수 없다. 거실의 로봇청소기를 부숴버린다고 먼지가 사라지지 않듯, 공장의 로봇을 막아선다고 밀려오는 AI의 파도를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로봇과 싸울 것인가, 아니면 로봇을 부리는 감독관이 될 것인가 하는 선택뿐이다. 과거를 꽉 쥐고 있으면, 미래는 다른 곳으로 가버린다. 늘 그래왔듯이.
☞진자(Pendulum)=사람들의 생각이 같은 방향으로 향할 때 생기는 보이지 않는 에너지 구조체를 뜻하는 심리학 용어다. 특정 대상에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할수록 저항과 갈등이 커지는 현상을 설명할 때 쓰인다.
☞유도 전환=부정적인 생각이나 두려움에 집중할수록 피하고 싶은 부정적 현실이 실제 삶으로 끌려 들어와 실현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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