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어진 대전 문인의 흔적] 김호연재 묘역 가보니 안내판도 없었다…문학관 조성도 불투명

최화진 2026. 7. 14.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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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르포] 산길 끝 김호연재 묘역, 문학관 논의도 길 잃었다
송촌체육시설 뒤 산비탈 묘역, 안내판 없어 시민들도 “무슨 묘인지 몰라”
지역 첫 개인문학관 기대 컸지만, 민선 9기 전환 속 재검토 기로
대전 소대헌·김호연재 고택 모습./사진=중도일보 DB
도시의 기억은 결국 사람과 장소에 남는다. 대전에도 지역 문학사의 흐름을 이어온 문인들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지만, 정작 그 자취는 시민들에게 충분히 알려지지 못한 채 멀어지고 있다. 묘역은 찾기 어렵고, 생가는 사라졌으며, 지역의 문학적 자산을 기리려는 노력은 행정의 체계적 지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본보는 '옅어진 대전 문인의 흔적' 기획을 통해 대전 문학유산 보존의 현주소와 지역 문화 행정의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르포] 산길 끝 김호연재 묘역, 문학관 논의도 길 잃었다

② 주차장이 된 박용래 집터…오룡역 병기만 남은 기억의 과제

③ 충청 연고 문인도 낯선 대전, 문학유산 관리 체계 빈틈

④ 사라진 뒤엔 늦는다…대전 문학유산 이제는 체계 세워야

대전 대덕구 송촌체육시설 인근 김호연재 묘역 가는 길./사진=최화진 기자
"삶이란 석 자 시린 칼인데,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

조선시대 대표 여성 문인 김호연재가 남긴 시 '야음'의 한 구절이다. 300여 년 전 회덕에서 자신의 세계를 시로 남긴 그는 오늘날 대전이 품은 여성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정작 그의 묘역으로 향하는 길은 그 이름값에 비해 초라했다.

11일 대전 대덕구 송촌체육시설 뒤편 굴다리. 전국 3대 여류시인 중 하나로 꼽히는 김호연재의 묘역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기엔 입구부터 알아보기 어려웠다. 별도 안내판도 없어 위치를 알고 찾지 않는다면 산책로 한쪽으로 지나치기 쉬웠다.

굴다리를 지나자 길은 곧 산비탈로 이어졌다. 묘역으로 향하는 길은 성인 한 명만 지날 정도로 좁았고, 비가 온 뒤라 흙길은 질척했다. 곳곳에 박힌 돌멩이와 풀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기자 은진 송씨 묘가 차례로 모습을 드러냈다. 묘역 자체는 비교적 정돈돼 있었다. 봉분 주변에는 잔디가 덮여 있었고 묘비와 석물도 남아 있었다.

문제는 이곳이 대전 대표 여성 문인의 묘역이라는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안내판은 물론 진입로를 알려주는 동선 안내도 눈에 띄지 않았다.

현장에서 만난 한 시민도 "묘가 보이긴 하던데 무슨 묘인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묘역은 남아 있지만, 김호연재를 시민에게 설명하고 지역 문학유산으로 연결하는 장치는 부족한 셈이다.

가까운 충남 천안의 여류시인 김부용 묘역과 비교하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김부용 묘역은 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고, 광덕산과 김부용 묘를 잇는 탐방 코스도 조성돼 있다. 시민들이 오갈 수 있는 데크길과 안내판도 마련돼 문인의 묘역이 지역 문화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반면 대전에 있는 김호연재 묘역은 시민들이 쉽게 찾아가고 머물며 그의 문학세계를 접할 환경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다. 지역 문학계에서는 묘역 진입로 정비와 안내판 설치, 김호연재의 생애와 문학을 소개하는 해설 공간, 문학 탐방 코스 개발 등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계족산 매봉 아래에 위치한 송요화와 김호연재 합장묘./사진=독자제공
그나마 지역 문인들의 기대를 모았던 김호연재 문학관 조성사업도 희미해지고 있다. 지역의 첫 개인문학관으로 추진됐지만, 민선 9기 전환 과정에서 사업이 재검토 기로에 놓이면서다.

대덕구에서 시작돼 시 사업으로 이관된 이 사업은 지난해 6월 시 투자심사에서 재검토 판단을 받았다. 당시 사업 필요성과 김호연재 인지도, 구 자체 사업 여부 등이 검토 과제로 제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시는 올해 9월 재심사를 목표로 사업을 재정비해 왔지만, 민선 9기 인수위에서 시설사업을 재검토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사실상 추진 여부는 안갯속에 놓였다. 당초 대덕구에서 시작된 사업인 만큼, 시는 관련 공문을 구에 전달하며 사업을 다시 넘긴 상황이다.

대전시 관계자는 "김호연재 문학관 조성의 필요성과 지역 문인들의 오랜 염원을 충분히 알고 있다"며 "그동안 축적된 자료와 논의 내용을 바탕으로 대덕구가 향후 사업 방향을 검토하고 추진하는 데 필요한 부분은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지역 문학계는 대전 여성문학사의 자산으로 시민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호연재라는 문학적 자산이 지역 안에 남아 있음에도 시민들이 그 가치를 체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관리,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이다.

휘호대회, 시낭송대회, 관련 전시와 포럼 등 김호연재를 알리기 위한 선양사업은 이어지고 있지만, 이를 묘역과 고택, 동춘당 일대, 문학관 논의로 연결하는 체계는 아직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름을 알리는 데서 나아가 시민들이 그의 삶과 문학을 직접 따라가고 기억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최화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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