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억 더 깎자는 말에 문재인의 대답... K9 계약 살렸다

세계가 선택한 명품 자주포 K9 <4>
필자의 네 번째 이집트 출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중동 및 아프리카 정상 순방 일정 때 이루어졌다. 2022년 1월 중순, 문재인 대통령은 UAE·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를 방문했다. UAE에서는 약 4조 원 규모의 천궁-II 계약 교환식이 있었다. 이어 방문한 사우디에서는 약 90억 달러 규모 방산협력과 관련된 매우 구체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은 사우디 측이 마련한 만찬 자리도 사실상 한-사우디 방산협력 회의처럼 활용할 정도였다.
K9 자주포 최종 협상 위해 이집트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
이후 순방단은 이집트로 이동했다. 이집트 방문 첫날 새벽 5시쯤 필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K9 자주포 협상 진행 상황과 주요 쟁점에 대해 상세히 보고했다. 특히 압델 파타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추가 가격 인하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 그리고 우리 측은 이미 충분한 수준의 가격 조정을 했다는 점 등을 설명하였다. 문 대통령은 이미 주요 쟁점과 협상 경과를 충분히 파악한 상태였고, 대응 방향에 대해서도 명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이어 오전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엘시시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는 K9 자주포 문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 대신 양국 간 산업 및 경제 협력 확대 필요성을 중심으로 이야기하였다. 문 대통령 역시 먼저 K9 자주포나 방산협력 문제를 의제로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오찬 자리에서 상황이 바뀌었다. 필자는 양국 정상이 앉은 헤드테이블 옆에서 이집트 측 인사들과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헤드테이블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동해보니 엘시시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한국 정부가 직접 지원해서라도 K9 자주포 가격을 추가로 10% 인하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아침에 보고받은 통계와 조건들을 정확히 인용하면서, 이미 제시된 가격 조건이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이집트 측에 유리한 수준이라는 점을 차분하게 설명했다. 엘시시 대통령은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고, 즉시 방산물자부 장관을 호출했다. 그리고 “오늘 중으로 협상을 시작해서 마무리하라”고 지시했다.
오찬 직후부터 최종 협상이 시작됐다. 이집트 방산물자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오후 2시쯤 시작된 협상은 밤새도록 진행됐다. 가격, 현지화 생산, 수출금융 지원 등 거의 전 분야에 대한 조율이 이루어졌다. 다음 날 새벽 5시쯤 양측은 사실상 최종 합의 수준에 도달했다. 협상을 마치면서 이집트 측은 엘시시 대통령에게 최종 보고를 하겠다고 했고,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카이로 외곽 생산시설인 팩토리 200 앞에서 양국 정상이 참석한 가운데 계약 서명식을 진행하자는 제안도 하였다.
"가격 인하" 입장 고수한 이집트...문 대통령 "성과 위해 무리한 계약 하지 말라"
서명식 예상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이었다. 오후 2시에는 대통령 전용기가 출발해야 했다. 협상 종료 후 필자는 문 대통령에게 협상 결과와 상황을 보고했다. 다만 엘시시 대통령이 계약 서명식에 실제 참석할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점도 함께 보고했다.
오전 9시 문 대통령은 카이로 신도시에 건설 중이던 메트로3호선의 현대로템 전동차 시승 행사에 참석했다. 대통령은 행사 진행 중에도 수행비서관과 의전비서관을 통해 계약식 관련 상황을 계속 확인했다. 그러나 오전 9시 50분이 되어도 이집트 측으로부터 최종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 무렵 탁현민 의전비서관을 통해 대통령의 메시지가 전달됐다. “건강한 계약이 국가 간의 관계도 건강하게 발전시킵니다. 정상 방문 성과를 만들기 위해 무리한 조치는 하지 마세요.”
당시 필자는 문 대통령의 이집트 방문까지 추진하며 반드시 계약을 성사시키겠다고 여러 차례 보고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계약을 하지 못하고 귀국할 경우 엄청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문 대통령은 오히려 무리한 양보나 정치적 성과를 위한 계약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분명히 이야기한 것이다. 필자에게는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이었다.
이후에도 상황은 진전되지 않았다. 오전 일정이 종료됐고, 결국 계약식 없이 카이로 공항으로 이동해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하게 됐다. 정말 난감한 상황이었다. 정상 방문까지 이루어졌음에도 계약 없이 귀국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전용기 탑승 이후 상황이 급변하였다. 팩토리 200 현장에 남아 있던 방위사업청 국제협력국장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집트 측이 기존 10% 가격 인하 요구 대신 “200억 원 정도만 추가 인하하면 지금이라도 엘시시 대통령이 공항으로 이동해 귀국 전용기 앞에서 계약식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해왔다는 내용이었다. K9 자주포 생산 업체인 한화 측은 정부 판단을 기다린다고 했다.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쳤다. ‘빈손 귀국 직전 공항에서 전용기를 배경으로 양국 정상이 계약 서명식을 갖는다’, ‘정상 방문 성과를 극대화하는 극적인 그림이다.’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사후 보전하는 형태로라도 200억 원을 인하해서 계약을 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고민했다.
"'건강한 계약' 원칙 지키자"...결국 뒤엎은 협상 테이블
그러나 결국 그렇게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미 수개월 동안 진지한 협상을 진행한 상황에서 마지막 순간 추가 인하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한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향후 다른 국가들과의 협상에서도 좋지 않은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봤다.
무엇보다 바로 몇 시간 전 문 대통령이 보내준 메시지가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건강한 계약이 국가 간의 관계도 건강하게 발전시킵니다.” 필자는 결국 협상 테이블을 한번 뒤엎어야 할 시점이라고 판단했다. 당장의 성과 때문에 추가 인하를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협상을 중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익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필자는 방사청 국제협력국장에게 단호하게 전달했다. “지금 이 순간부터 K9 자주포 가격은 오히려 10% 인상한다.” 그리고 K9 자주포 계약을 전제로 추진하던 노후 함정 이전, 산업·경제 협력 등 약 10여 개의 양해각서(MOU) 역시 계약이 성사되지 않으면 모두 효력을 상실한다는 점도 분명히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사실상 마지막 순간 협상 테이블을 뒤엎은 것이다.

그렇게 대통령 전용기는 이륙했다. 다음 날 토요일 오전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당시 필자는 정상 방문까지 진행했음에도 계약 없이 귀국하게 된 상황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수행단 내부에서는 누구도 필자를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한 “건강한 계약”이라는 원칙이 내부적으로 공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항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직전 필자는 탁현민 비서관에게 “이집트는 반드시 다시 연락해 올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우울한 빈손 귀국...갑자기 이집트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짐을 풀고 있던 오후 3시쯤, 이집트에 남아 있던 국제협력국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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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세계가 선택한 명품 자주포 K9
강은호 전북대 교수(전 방위사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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