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영계 통째로 끓인 삼계탕으로 보신… 美·中·아프리카도 닭국물로 지친 몸 달래[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2026. 7. 1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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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주영이 만난 ‘세상의 식탁’ - 회복 음식
외국인 대학생들이 서울의 한 음식점에서 한국의 전통 보양식인 삼계탕을 먹고 있다. 자료사진

‘닭 한 마리’는 번역하기 어려운 음식 이름이다. 복날을 앞두고 미국인 친구와 삼계탕집을 찾았다. 대기 줄이 너무 길어 아쉽지만 근처 닭집으로 향했다. “닭 한 마리”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간판을 친구가 번역 앱으로 찍으니 화면에 “One Chicken”이 뜬다. 생각지도 못한 ‘3인칭 외국인 시점’에서 나도 궁금해졌다. 프라이드치킨이나 로스트치킨처럼 조리법도 아닌 ‘한 마리’라는 단위가 어떻게 음식 이름이 됐을까?

음식이 나오고 친구의 표정을 보니 기대했던 모습과는 조금 달랐던 모양이다. 삼계탕집에서 조금 더 기다릴 걸 그랬나 싶었다. 이름만 보면 닭 한 마리가 그대로 올라오는 음식처럼 들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사용하는 음식이라는 뜻이지, 원형 그대로 내는 요리라는 뜻은 아니다.

외국인에게 더 낯설고 놀라운 음식은 삼계탕이다. 복날 대표 음식인 삼계탕은 어린 닭, 즉 영계 한 마리의 뱃속에 찹쌀과 인삼, 대추를 넣고 통째로 삶아낸다. 작은 닭 한 마리가 온전한 모습으로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모습 자체가 그들에게 한국 식문화의 독특함으로 다가온다.

한국은 왜 유독 ‘닭 한 마리’를 강조할까? 미국과 유럽에서는 냉장 유통과 육가공 산업이 발달하면서 닭가슴살과 다리살, 날개살 같은 부위육 소비가 일찍 자리 잡았다. 일본 역시 닭꼬치인 야키토리 문화 속에서 껍질과 연골, 간, 염통, 목살 등 닭의 다양한 부위를 세분화해 즐긴다.

반면 한국은 여전히 ‘닭 한 마리’를 하나의 음식으로 기억한다. 닭을 부위보다 ‘한 상의 중심 음식’으로 바라보는 문화가 오래 이어졌다. 백숙은 가족이나 손님을 위해 한 마리를 함께 나누는 음식이었고, 삼계탕은 한 사람의 몸을 위한 한 그릇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해외에 사는 교민들은 삼계탕용 닭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통닭을 쉽게 살 수 있지만 대부분 로스트치킨용으로 손질한 큰 닭이다. 삼계탕에 알맞은 작은 영계를 구하려면 한인마트나 전문 식재료점을 찾아야 한다.

우리에게는 너무 익숙한 ‘삼계탕용 영계’도 한국 식문화가 만들어낸 독특한 유통 방식이다. 복날이 다가오면 마트에는 삼계탕용 닭이 따로 진열되고, 식당마다 삼계탕을 찾는 손님들로 북적인다. 국내 삼계탕이 해외로 수출될 때도 이 간극은 오래된 걸림돌이었다. 삼계탕이라는 음식에 대한 관심과 별개로, 닭 한 마리를 통째로 담아내는 방식은 일부 해외 소비자에게 낯선 경험이었다. 해외 시장에서는 맛뿐 아니라 음식의 형태와 먹는 방식까지 현지 소비자의 익숙함에 맞추는 현지화 전략이 함께 필요했다.

몸이 지치면 닭국물을 찾는 마음은 세계 어디서나 비슷하다. 미국에서도 감기에 걸리거나 몸이 으슬으슬할 때 ‘치킨 누들 수프’를 찾는다. 유대인들은 닭국물을 ‘유대인의 페니실린’이라 부른다. 중국에는 약재를 넣어 푹 곤 ‘약선계탕’이 있다. 나이지리아를 비롯한 서아프리카에는 향신료를 듬뿍 넣은 ‘치킨 페퍼 수프’가 있다. 조리법은 제각각이지만 따뜻한 닭국물로 기운을 보충한다는 생각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닭국물이 세계 곳곳에서 ‘회복 음식’으로 자리 잡은 데는 몇 가지 공통된 배경이 있다. 사육 기간이 짧아 단백질 공급 속도가 빠르고, 종교적 제약이 적어 소나 돼지 대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소비되는 육류가 되었기 때문이다.

올여름도 폭염이 길어질 것이라는 예보가 이어진다. 세계인은 저마다의 닭국물로 몸을 돌보고, 한국인은 복날 삼계탕으로 여름을 견딘다. 갑작스러운 폭염으로 지친 세계의 여름 식탁에도 삼계탕이라는 한국의 회복 음식을 올려놓을 때가 아닐까.

한양대 관광학과 겸임교수

■ 한 스푼 더 닭국물에 담긴 회복의 과학

닭국물을 보양식으로 여겨 온 문화는 최근 영양학과 면역 연구의 관점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닭고기와 채소, 허브를 넣은 수프가 호흡기 감염 시 증상 완화와 염증 반응 조절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가 축적되고 있다. 닭고기의 단백질, 채소의 생리활성 성분, 따뜻한 수분 섭취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닭국물은 치료제가 아니지만, 오랜 식문화 속에서 축적된 ‘회복 음식’의 경험이 현대 영양과학을 통해 재해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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