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푹푹 찌는 건설현장]공사 강행하면 산재, 현장 멈추면 적자…건설업계 ‘진퇴양난’
옥외 뙤약볕 가릴 장애물 없어
체감온도 평균 6.2도 높게 측정
시공사, 현장 관리 강화 안간힘
물품 지원ㆍ휴직으론 한계 뚜렷
공사비 산정 패러다임 변화 시급
[대한경제=이재현 기자]기후변화로 한반도의 여름철 평균기온이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며 폭염이 일상화된 가운데, 야외 작업 비중이 절대적인 건설현장 근로자들이 온열질환의 최전선에 그대로 노출되고 있다.
정부가 폭염을 ‘기후 재난’으로 규정하고 각종 예방 지침과 공사 일시정지 보완책을 내놓고 있지만, 현장에서는 공사기한 준수 압박과 ‘저가 수주 프레임’에 갇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고용노동부의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1~2025년) 폭염으로 인해 발생한 온열질환 산업재해 환자는 총 228명에 달하며, 이 중 46.5%인 106명이 건설업에서 발생했다. 건설업은 전 업종을 통틀어 온열질환 산재 발생 빈도가 가장 높은 취약 업종이다.
정부의 온열질환 예방 지침에 따르면 체감온도가 33℃ 이상인 폭염 작업 시에는 매 2시간 이내에 20분 이상의 휴식을 근로자에게 부여해야 한다.
그러나 현장 근로자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지침보다 훨씬 가혹하다. 뙤약볕을 가려줄 장애물이 없는 데다, 철근과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복사열과 건설장비의 가동 열기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실제 건설현장의 체감온도는 기상청 발표보다 평균 6.2℃가량 높게 측정되는 경우가 많아, 기상청 기준 30℃ 안팎의 날씨에서도 현장 근로자들은 이미 지침상 휴식 기준을 웃도는 극단적인 폭염 위험에 직면하게 된다.

시공사들은 정부의 폭염 대응 기조에 맞춰 현장 관리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근로자들에게 냉각조끼 등 보냉장구를 지급하고, 작업장 인근에 이동식 에어컨과 그늘막을 갖춘 휴게시설(쉼터)을 설치하는 등 최대한의 물품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단편적인 물품 지원이나 휴식 시간 부여만으로는 구조적인 한계가 명확하다고 입을 모은다.
노동부는 올해부터 극단적 고온(체감온도 38℃ 이상) 시 ‘폭염중대경보’를 적용해 긴급 작업을 제외한 옥외작업 중지를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옥외작업이 중단될 경우 시공사가 떠안아야 하는 공기 지연과 공사비 증가 우려다. 근로자의 생명 보호를 위해 작업을 멈추는 순간, 장비 임대료와 간접비 등 현장 유지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시공사의 빚이 되는 구조적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정부 역시 이러한 건설업계의 고충을 인지하고 관련 규정을 정비해왔다. 재정경제부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등 발주 관련 부처는 폭염 및 호우로 인해 작업이 현저히 곤란해 공사를 일시 정지할 경우, 이를 불가항력의 사유로 인정하는 업무처리지침을 마련했다.
공사계약일반조건 등에 따라 정지된 공사기간만큼 계약기간을 연장하고, 추가로 발생하는 비용 보전을 위해 계약금액을 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공사 지체상금 역시 부과하지 않도록 명시했다.
그러나 건설현장의 현실은 이와 동떨어져 있다. 입찰 제도 자체가 여전히 최저가 중심의 ‘저가 프레임’에 깊게 갇혀 있어, 애초에 책정된 공사비와공사기간자체가 폭염과 같은 변수를 감내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하소연이다.
더욱이 공공공사 발주청으로부터 공사기간 연장이나 계약금액 조정을 실제로 승인받기 위해서는 시공사가 불가항력적 피해와 실비 산정 내역을 까다롭게 입증해야 하며, 민간 공사의 경우 이러한 정부 지침이 강제되지 않는다.
결국 폭염으로부터 건설 노동자의 안전을 실질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현장에만 희생을 강요하는 임시방편적 지침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건설업계 관계자는 “기후변화가 일상이 된 만큼, 정부와 발주처가 입찰 및 견적 단계부터 폭염으로 인한 공정 지연 가능성과 안전 관리 비용 증가분을 공사비와 공사기간에 의무적으로 선반영하는 제도적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한 시점”이라며 “이는 건설현장의 노동자의 안전도 지킬뿐더러 시공품질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현 기자 l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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