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당신] 미국 독립과 건국, 그 신화와 폄하 사이의 진실

프랑스혁명 주역인 라파예트(Marquis de Lafayette, 1757~1834)는 20대 때 조지 워싱턴의 부관으로 약 5년간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고, 미국 독립선언을 참조해 프랑스 인권선언(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 초안을 썼다. 혁명 이듬해인 1790년 국민방위군 사령관이 된 그는 전 상관인 워싱턴에게 바스티유 감옥 열쇠 하나를 보내며 이런 편지를 썼다. “친애하는 장군님, (… 이) 폭정의 상징을 자유의 사도에게 바칩니다.”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의 연속성을 상징하는 그 열쇠는 버지니아주 마운트 버넌(Mount Vernon) 워싱턴 생가 박물관에 있다.
미국 독립전쟁(1775~1783)은 혁명이라고도 불린다. 전자가 정치-군사적 의미에 초점을 둔 용어라면 후자는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근본적 사회 변화에 주목한다. 두 용어는 전쟁-독립 직후에도 혼용됐다. 2대 대통령 존 애덤스가 1818년 한 언론인에게 보낸 편지 일부다. “혁명은 전쟁 전에 이미, 시민들의 마음과 정신 속에서 시작됐다. 의무와 책임에 대한 종교적 신념, (정치적) 원칙과 (전통에 대한) 견해, 감정, (평범한) 시민 위상의 급진적 변화.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미국혁명이었다.”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혁명 주역들이 나이 들어 하나 둘 퇴장하던 무렵이었다. 80대의 애덤스는 미국혁명이 군사적 승리로만 기억되는 것을 못마땅해했다.
하지만 애덤스가 더 못마땅해한 것은 혁명의 여파, 즉 통제를 벗어나 폭주하던 평등과 자유였다. 식민지 신분질서 붕괴와 서민(백인 남성) 정치 참여 확대, 상업-시장 확산에 따른 사적 이해 충돌과 노예제 갈등 등. 단두대 공포정치와 나폴레옹 독재로 타락한 프랑스혁명의 전철을 미국이 뒤따를까 봐 그는 두려워했다. 1814년 한 정치인(John Taylor)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썼다. “민주주의는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방만함으로 좋은 기운을 소진한 뒤 결국 소멸할 것이다. 민주주의가 스스로 자살하지 않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가 말한 민주주의는 다수의 폭정(rule of mob)이었고, 그와 건국 주역들이 꿈꾼 혁명의 미래는 덕을 갖춘 엘리트 집단이 이성과 법에 근거해 공공선을 좇는 고전적 공화주의였다.
그 이상과 현실의 괴리, 의도를 벗어난 혁명의 경과 및 결과를 두고 미국 사학자 고든 우드(Gordon S. Wood, 1933.11.27~ 2026.6.7)는 “역사가 주는 중요한 교훈이 있다면, 어떤 사건에서든 역사는 의도대로 전개되지 않는(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드는 미국 독립전쟁을 영국의 수탈(대표권 없는 과세)에 맞선 군사적 사건을 넘어, 수천 년 인류 역사가 지탱해온 왕정-신분 질서와 사회-경제구조를 뒤엎고, 19세기 유럽 여러 나라로 확산된 공화-민주주의 바람을 선도한 문명사적 급진 혁명이며, 그로써 유사 이래 “세상 어디에도 없던” 자유롭고 민주적인 사회로 미국이 탄생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정치 엘리트들의 기획을 거스르며 평범한 시민들이 삶의 욕망으로 이룬 그 급진적 성취, 특히 평등이야말로 미국(인)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정수라고 평가한 미국혁명사의 거두, 고든 우드가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에서 교통사고로 별세했다. 향년 92세.

미국이 종교 자유를 찾아 대서양을 건넌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라는 것도, 고든에 따르면 진실의 일부에 불과하다. 초기 정착민에는 청교도(주로 매사추세츠에 정착)뿐 아니라 퀘이커 교도(펜실베이니아)와 가톨릭 교도(메릴랜드)도 적지 않았다. 경제적 기회와 신분 상승이, 어쩌면 더 중요한 동기였다. 엔클로저 운동으로 인한 토지 압박과 실업, 고물가에 시달리던 그들에게 왕실과 상인회사(virginia company)가 헐값에 불하하던 신대륙의 광활한 토지와 높은 임금은 엄청난 유혹이었다. 본토보다 신분적 위계가 헐거워 사회-경제적 신분 상승 기회도 많았다.
그 풍토에서 나고 자란 2, 3세대 식민지인들, 특히 대농장주 등으로 자리 잡은 중상층 엘리트(colonial gentry)와 계몽적 지식인들은 자신들을 대놓고 깔보는 영국 전통 귀족-엘리트들을 낡은 잔재라 여겼다. 1776년 독립선언서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문장이 가리킨 것이 바로 그것, 위계(hierarchy)와 복종-존경(deference)에 기반한 영국식 왕정-신분제 질서였다. 다만 자신들이 누리던 식민지 신분 질서는 그들의 염두에 없었다.
한마디로 건국 주역들은 “왕정을 공화화하려” 했다. 고대 로마 사상가들이 이상화한 고전적 공화정과 18세기 계몽주의의 결합. 혁명기 주요 담론장이던 수많은 정치 팸플릿들, 그 속에 수 없이 인용된 키케로 등 로마 철학자들의 라틴어 문장들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시민도 사실 별로 없었다. 당시 가장 급진적이고도 선동적인 논객이었던 토머스 페인(Thomas Paine, 1737~1809)의 팸플릿들이 엄청나게 팔리며 대중적 인기를 얻은 까닭도, 그의 문장이 쉽고 직설적이었기 때문이었다. 페인은 엘리트 교육을 받지 못한 영국 하층민 출신이었고, 건국 주역들은 그를 경계했다.
저 배경 속에는 1786~87년 ‘셰이즈의 반란(Shays’s Rebellion)’도 있었다. 독립 초기 미국은 ‘연합 규약(Articles of Confederation, 1781)’으로 묶인 느슨한 연합체여서 연방 정부는 세금 징수권도 군대 동원 권한도 없었다. 각 주의회는 ‘과도한 민주화’, 즉 부채 탕감법과 채무 집행 유예, 화폐 발행 남발 등으로 엄청난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혼란을 야기했다. 그 와중에 매사추세츠 주의회가 고율 세금과 함께 채무 불이행자를 투옥하는 강경책을 도입했다. 부채와 세금, 인플레, 영국과의 무역 단절로 곤경에 빠져 있던 농민 등 2,000~4,000여 명이 독립전쟁 베테랑 장교 대니얼 셰이즈(Daniel Shays)를 주축으로 무장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법원을 점거하고 연방 무기고까지 습격했다. 규약에 묶인 연방 정부는 구경만 해야 했고, 주정부는 상류층이 갹출한 돈으로 민병대를 모집, 약 반년 뒤에야 반란군을 진압했다. 프랑스혁명을 연상케 한 그 무정부 상태에 놀란 연방 정부는 서둘러 필라델피아 제헌회의를 소집, 입법부-인민 주권 중심의 ‘민주적 과잉(democratic excesses)’을 견제하기 위해 3권 분립과 연방-대통령 권한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연방헌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혁명적 수사에 고무되고 ‘셰이즈의 반란’ 등으로 주권적 힘을 자각한 시민들의 변화를 향한 갈망은, 우드의 표현처럼 “댐을 허무는 압력(pent-up pressure breaking of a dam)”으로 분출되기 시작했다. 투표권 재산 상한제 철폐-완화를 통한 시민 정치 참여 확대, 상업-시장 소비 문화의 급성장…. 인사법과 복장도 달라졌다. 말년의 건국 주역들이 “민주주의가 너무 과도하고 부패하고 무질서하다”며 혀를 찼던 그 급진적 변화는, 지난 ‘가만한 당신’의 주인공인 사학자 대니얼 워크 하우가 탈신화화한 19세기 초 ‘잭슨 민주주의’로 이어졌다
브라운대 교수 고든 우드가 주저인 ‘미국 공화국의 탄생 1776-1787(1969)’과 ‘미국혁명의 급진주의(1992)’에서 정리한 서사와 관점이 대충 그러했다. 그는 “미국 역사학의 표준”을 수립한 “가장 권위 있는 현역 역사학자”라는 평가를 들었다.

우드 이전 미국혁명에 대한 역사학계의 관점은 크게 3갈래로 나뉘었다. 경제구조와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건국 및 제헌헌법의 계급적 한계에 주목한 진보사학계의 관점, 건국 주역들의 위대함을 부각하며 이념적 합의와 자유주의 전통 수립에 주목한 동부 합의(consensus)사학계의 관점, 원주민과 노예, 여성 등 소외 집단의 경험을 부각하며 혁명의 한계를 비판한 1960년대 이후 신좌파(Neo-progressive) 사학계의 관점.
우드는 당시 주류였던 신좌파 사학의 패러다임을 벗어나 진보진영의 사회사적 관점과 합의사학계의 이념사적 관점을 독창적으로 재편-재해석했다는 평을 들었다. 브랜다이스대 역사학자 데이비드 해킷 피셔는 "우드는 건국 주역들을 반신반인으로 찬양하는 진영과 인종-성차별주의자로 비난하는 진영 사이에서 그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역사학자"라고 비유적으로 평했다.
그는 첫 책 ‘탄생’으로 ‘역사학계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밴크로프트상(Bancroft Prize)을, ‘급진주의’로 퓰리처상을 받는 등 “역사학자가 받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수상”했고, 2011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으로부터 국가 인문학 메달을 받았다.
고든 우드는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에서 노동자 아버지와 사무직 종사자 어머니의 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나 보스턴 근교 월셤(Waltham)에서 성장했다. 집에서 통학할 수 있던 명문 사립 터프츠(Tuft)대를 우등 졸업했고, 55년 공군 제대 후 하버드대에 진학, 64년 역사학 박사학위를 땄다. 2002년 C-SPAN 인터뷰에서 그는 “외교 쪽으로 진로를 생각했지만 군대에서 씁쓸한 경험을 한 뒤 정부 일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하버드대와 미시건대에서 강의했고 69년부터 브라운대에 재직하며 석좌-명예교수를 지낸 뒤 2008년 은퇴했다. 그는 위에서 언급한 2권 외에도 옥스퍼드 미국사 시리즈로 2009년 출간한 '자유의 제국: 초기 공화국의 역사(2009)' 등 18권의 책을 저술-편집했고, 56년 결혼한 아내(Louise Goss)와 2녀 1남을 두었다. 장녀(Elizabeth Wood Gagnon)와 막내 아들(Christopher Wood)은 각각 일리노이 주립대와 뉴욕대에서 역사학과 예술사 교수로 재직 중이다.
브라운대가 합의사학의 본산인 동부 아이비리그에 속하고 우드 역시 평등과 자유 등 공유 가치에 주목했지만, 그는 어떤 진영과도 공개적으로 선을 그으며, 역사란 이념-가치의 잣대를 벗어나 오직 당대의 맥락에서 사실에 입각해 바라봐야 한다는 원칙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여러 비판, 특히 신좌파 진영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한마디로 그가 주장한 미국혁명의 급진성이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급진성이냐는 반문이었다. 그들은 고든이 백인 남성을 특권화함으로써 여성과 흑인 노예, 원주민의 경험을 주변화했고, 노예 반란 등 아래로부터의 민중운동을 경시했다고 주장했다.
우드는 좌파 학자들이 “현재의 가치를 기준으로 과거를 재단하려 한다”고 반박했다. 그는 “우리는 노예제와 여성운동에 대해 1960년대 이전보다 훨씬 많이 알게 됐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값진 성취지만, 역사가는 가끔 멈춰 서서 정밀한 세부들을 모아 전체를 볼 수 있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저 격렬한 논쟁은 2015년 우드가 ‘The Weekly Standard’라는 매체에 기고한 에세이로 또 한 번 재연됐다. 그 글에서 우드는 젊은 (신좌파) 사학자들이 “과거를 과거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고 불평등과 (백인 남성)특권, 인종-젠더 문제에 과도하게 집착해 역사를 파편화하고, ‘도덕적 손가락질(moral hand-wringing)’로 근친상간하듯 자기들끼리의 대화에 빠져 있다고 비판했다. 즉 현재의 정치-이념적 의제를 위해 역사를 이용한다는 거였다.
캘빈대 젠더사학자 크리스틴 코베스 듀 메즈(Kristin Kobes Du Mez)는 “인종-젠더사 연구는 단순한 도덕적 비난이 아니라 과거를 더 풍부하고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의 일부이며 기존 서사에서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복원하는 것도 역사학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우드가 비판한 작은 연구(specialized studies)야말로 그가 옹호한 큰 서사(grand narrative)를 위한 필수적 기반이라고 반박했다.

보수 정치인 뉴트 깅리치(Newt Gingrich)가 공화당 원내대표로 있던 1994년 우드의 저서들을 공개적으로 극찬하며 그를 만찬에 초대했다. “세계 어디에도 없던 미국의 탄생” 등의 서술이 그가 신봉하던 ‘미국 예외주의’를 뒷받침한다고 여겨서였다. 미국 예외주의란 미국을 특별한 사명을 지닌 예외적인 국가로 상정하는 보수-극우 진영의 유서 깊은 신화로, 우드가 “역사학계의 원리주의”라고 대놓고 조롱하던 진영이었다. 역사학의 이념-가치-정치 중립을 누구보다 중시했던 우드는 한 인터뷰에서 저 일화를 언급하며 “깅리치의 찬사는 (대체로 진보-리버럴 성향이 강한 미국 역사) 학계에서 내겐 일종의 ‘죽음의 키스(kiss of death)’였다”고 농담처럼 말했다.
맷 데이먼 주연의 1997년 영화 ‘굿 윌 헌팅’도 그를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일조했다. 여성에게 호감을 얻기 위해 지식을 뽐내던 하버드대 대학원생에게 윌 헌팅이 현란한 언변으로 망신을 주며 “일류 역사학자 고든 우드”를 언급하는 장면. 그 대학원생이 “그는 여성과 노예를 주변화했고….”라며 신좌파 진영의 판에 박힌 비판을 들먹이려 하자 윌은 면전에서 그가 인용하려던 책 구절을 그대로 암송한 뒤 독창성도 주관도 없는 암기 지식의 초라함을 조롱한다.
인터뷰 때면 심심찮게 언급되던 저 에피소드를 두고 우드는 “2초 동안의 명성이었다”고, “내 책보다 그 영화로 나를 아는 이들이 훨씬 많을 것”이라고 씁쓸하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그를 더 씁쓸하게 한 건 저 대사 뒤에 이어진 윌 헌팅의 말이었을 것이다. “진짜 역사를 알고 싶으면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를 읽어라. 그게 진짜야.” 혁명을 비롯한 미국사 전체를 계급 착취의 역사로 서술한 그 책을 우드는 2002년 C-SPAN 인터뷰에서 “역사서라기보다는 정치적 선언서에 가깝다”고 평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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