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영의 SF ‘지느러미’ 22일 개봉 환경 재앙 겪는 통일된 한반도 설정 돌연변이 ‘오메가’ 여러 소수자 빗대 장황한 대사 대신 질감·색채로 표현 朴감독 “팬데믹 기간 속전속결 촬영 깨끗한 장면도 일부러 훼손시켰죠”
바다는 붉고, 도시는 잿빛이다. 사람들은 얼굴에 묻은 검댕을 닦지 않는다. 깨끗한 얼굴은 수치, 더러운 얼굴은 자부심이 된 세상. 남북이 통일된 근미래 한반도를 배경으로 한 박세영(사진) 감독의 SF영화 ‘지느러미’(22일 개봉)는 환경 재앙 속 인간과 돌연변이 ‘오메가’가 충돌하는 디스토피아를 펼쳐 보인다.
영화 속 한반도는 오염된 바다를 막기 위해 세운 4000㎞ 장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물은 극도로 부족해 세수는 죄악이 됐다. 등에 지느러미가 돋고 발가락은 기형적으로 변한 돌연변이 ‘오메가’들은 인간에게 착취당하며 담장 너머에서 독성 폐기물을 치우며 살아간다. 장벽을 넘는 순간 이들은 인간들의 사냥감이 된다. 오메가가 내지르는 비명은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치명적이기에 그들은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혔다.
영화는 오메가를 관리하는 젊은 공무원 수진(김푸름), 실내 낚시터에서 일하는 미아(연예지), 탈출한 오메가(고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미아는 탈출한 오메가에게 최근 숨진 아버지의 지느러미를 건네받지만, 장례 치르기를 거부한다. 극이 진행될수록 부패해 가는 지느러미에서는 화면 너머까지 악취가 전해지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오메가는 차별받는 여러 소수자의 은유로 읽힌다. 박 감독은 10일 서울 CGV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에서 차별받는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 차별받고, 정부의 이미지 세탁과 프로파간다를 통해 어떻게 왜곡되는지 생각하다가 오메가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박 감독은 이러한 세계관을 구구절절한 대사로 설명하는 대신 색채와 질감으로 관객을 먼저 설득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색채다. 디스토피아 영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네온 계열 사이버펑크 미학을 과감히 걷어냈고, 대기오염을 연상시키는 붉은 색조와 전체주의 사회의 잿빛 공기가 화면을 뒤덮는다.
유일하게 색이 살아나는 곳은 미아가 일하는 실내 낚시터다. 파랑과 노랑, 형형색색의 싸구려 원색이 공간을 메우고 뽕짝 멜로디가 흘러나온다. 황폐한 바깥세상과 달리 이곳은 1980~90년대 한국의 정서를 간직한 작은 향수의 공간처럼 느껴진다.
색이 이 영화의 세계를 만든다면, 질감은 그 세계의 공기를 만든다. 거친 입자감과 노이즈는 공간의 냄새와 습도, 오염된 공기까지 피부로 느끼게 한다. 이 독특한 질감은 열악한 제작 환경과 빠듯한 예산, 치밀한 후반 작업이 만들어낸 결과다.
박 감독은 “촬영을 빠르게 진행하다 보니 조명을 충분히 설치할 시간이 없었고, 밤 장면은 노이즈가 심했다”며 “하지만 그 장면을 꼭 쓰고 싶어서 다른 깨끗한 장면들까지 일부러 조금씩 훼손하기 시작했고, 편집 과정에서 영화의 질감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촬영한 후 긴 후반 작업을 거쳤다. 박 감독은 “적은 인원이 4년 동안 모든 것을 쏟아부은 작업이었다”며 “4~5개월 정도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편집실에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체중이 30㎏ 늘어 다이어트 중”이라며 웃기도 했다.
1996년생인 박 감독은 침대 매트리스에서 피어난 곰팡이가 인간의 등뼈를 빼앗아 생명을 얻는다는 기발한 설정의 ‘다섯 번째 흉추’(2022)로 장편 데뷔했다. 장편과 단편영화는 물론 전시 영상, 뮤직비디오, 광고까지 영화와 영상, 예술과 상업을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거침없는 상상력과 독창적인 비주얼로 국내외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느러미’ 역시 해외에서 먼저 주목했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슬픔의 삼각형’을 제작한 세계적인 프로듀서 필리프 보베르가 공동 제작했으며, 지난해 제78회 로카르노영화제 신인감독 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8일 프랑스 선개봉한 후 북미와 유럽 등지에서 순차 개봉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