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걸리던 진료 준비, 3분으로"… 의료 현장 바꾸는 AI 에이전트
예약부터 상담·청구까지 척척, 병원 업무까지 해내는 AI 에이전트
“의사 대체는 어려울 것”…신뢰성 확보가 남은 과제

과거 공상과학 영화에서는 로봇이 환자를 진찰하고, 인공지능 비서가 병원 예약부터 서류 처리까지 척척해내는 장면이 자주 등장했다. 스크린 속에서나 가능할 법한 상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콜센터에 전화를 걸면 AI가 목소리만으로 신원을 확인하고 검진 날짜를 잡아주고, 손 글씨로 휘갈겨 쓴 진료 메모까지 AI가 대신 읽어 30분 걸리던 검토 시간을 3분으로 줄여준다. 더 이상 영화 속 상상이 아니라, 이미 국내외 병원 곳곳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의료 분야에서도 AI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의료 AI는 어디까지 발전하게 될까. 그 해답을 최근 열린 제43차 종합학술대회 'AI 미래 의학 세션'에서 들을 수 있었다.
의료 특화 LLM, '환각 현상' 줄이기가 관건
오성권 상무(네이버헬스케어연구소)는 "헬스케어 LLM 활용 사례 및 피지컬 AI 관련 최신 기술 트렌드"를 주제로 발표했다. 네이버는 서울대병원과 함께 의료 특화 거대언어모델(LLM)을 개발하고 있다.
의료용 AI를 만들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AI가 틀린 정보를 마치 사실인 것처럼 그럴듯하게 답하는 문제다. 흔히 '환각 현상'이라고 부른다. 오 상무는 '환각(할루시네이션) 현상'이 가장 일어나서는 안 되는 영역이 바로 의료 분야"라고 말했다. 이 문제를 줄이기 위해 네이버는 AI가 내놓는 답변 옆에 그 답의 근거가 된 논문이나 진료 지침을 함께 보여주는 방식을 쓰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람으로 치면 답을 말할 때 "이건 어디에서 봤다"고 출처를 함께 밝히는 셈이다. 의료 특화 LLM은 진단 지원, 의무기록 작성 및 분석, 환자 상담, 신약 개발, 정신 건강 관리 등 다섯 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활용 예로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을 찾은 환자 사례가 소개됐다. 검사 결과와 통증이 나타나는 패턴 등 여러 정보를 AI가 종합해, 가능성이 높은 진단 후보 세 가지를 확률과 함께 제시해 주는 방식이다. 처방이나 치료 방향을 권고할 때도 학회 가이드라인 부합 여부와 실제 임상 데이터, 식약처 기준까지 모두 확인한 뒤 결과를 내놓도록 설계됐다.
진단뿐만 아니라 의무기록 관리에서도 AI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심방세동 환자라면 뇌졸중 위험도와 복용 약물을, 고혈압 환자라면 최근 혈압 수치와 신장 이력을 자동으로 정리한다. 짧은 진료 시간 안에서 놓치기 쉬운 정보를 의료진에게 미리 보여주는 방식이다. 보험 청구 코드를 자동으로 제안해 주는 기능도 함께 소개됐다.
스스로 학습하는 로봇... 의료 시술도 가능해진다
오 상무는 이어 로봇이 눈으로 본 것을 이해하고 행동하는 '피지컬 AI' 기술도 소개했다. 앞서 말한 LLM이 말을 배우는 AI라면, 피지컬 AI는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배우는 AI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컵을 세게 밀면 넘어진다"는 사실을, 로봇이 수많은 영상을 보면서 스스로 익히는 방식이다. 오 상무는 구글이나 엔비디아 같은 기업이 이런 기술을 활발히 개발하고 있다고 소개했으며, 이와 관련해 존스홉킨스대학 연구팀은 실습용 모형에서만 훈련받은 수술 로봇이 실제 사람 조직과 비슷한 여러 재질에서도 큰 실수 없이 수술을 해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예약부터 청구까지, 'AI 에이전트'가 병원 업무 대신한다
앞선 발표가 AI가 진단과 기록 정리를 어떻게 돕는지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어진 발표는 AI가 병원 업무를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서 처리하는 모습을 다뤘다. 김경윤 솔루션 아키텍트 매니저는(아마존 웹 서비스(AWS)) '메디컬 에이전트, 최전선의 사례'를 주제로 발표했다. 단순히 물어보는 것에만 답하는 수준을 넘어, 목표만 던져주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일을 처리해나가는 AI를 'AI 에이전트'라고 부른다. 사람으로 치면 "이거 알아서 처리해 줘"라고 맡겼을 때 알아서 끝까지 해내는 비서에 가깝다.
발표에서는 건강검진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된 가상의 환자 사례가 시연됐다. 환자가 병원에 전화를 걸면 AI가 목소리만으로 본인이 맞는지 확인하고, 의료진 일정과 환자가 원하는 조건을 따져 검사 날짜를 잡아준다. 진료가 시작되면 이전 진료 기록을 미리 정리해 의료진에게 보여주고, 상담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대화 내용을 자동으로 요약해 준다. 진료가 끝난 뒤에도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확인하고 빠진 자료를 찾아 요청하는 일까지 AI가 맡는다.
이런 방식을 실제로 도입한 병원에서는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났다. 청구가 거절되는 비율이 약 44% 줄어든 병원이 있었고, 진료 기록을 작성하는 시간이 최소 26.8% 줄어든 곳도 있었다. 어떤 병원은 전체 업무 시간이 21% 줄었는데, 특히 퇴근 후 밤늦게 기록을 작성하다 며칠씩 밀리던 일이 43%나 줄었다고 한다.
김 매니저는 "그림은 크게 그리되, 시작은 작게 하시길 권한다"며, 병원마다 지금 가장 필요한 업무 한두 가지부터 AI를 적용해 볼 것을 권했다.

보험 청구부터 원전 계약서까지…국내 적용 사례 이어져
두 발표가 해외 사례와 일반적인 기술 흐름을 다뤘다면, 이어진 발표에서는 국내 기업들이 실제로 AI를 도입해 어떤 변화를 만들어냈는지를 구체적인 숫자와 함께 보여줬다. 최훈 엔터프라이즈 사업 부문 대표(업스테이지)는 "완벽한 준비보다 빠른 시작"을 주제로 국내 기업의 실제 AI 도입 사례를 공유했다.
한화생명은 하루 약 18만 건에 달하는 보험 청구 서류를 AI로 자동 처리하고 있다. 팩스나 사진으로 접수되는 서류에서 이름, 비급여 항목, 날짜 등을 사람이 일일이 확인해야 했던 업무를 AI가 대신하면서 처리 속도와 정확도를 모두 높였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5년 치 청구 데이터를 디지털화해 분석하자 고가 항암제 처방 빈도·특정 수술 실시 현황 등 그동안 파악하기 어려웠던 정보가 드러났다. 한화생명은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보험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병원 현장의 변화도 소개됐다. 인하대학교병원에서는 손글씨가 섞인 16장 분량의 환자 기록을 AI가 대신 읽어내면서, 회진 전 30분씩 걸리던 준비 시간이 3분으로 줄었다. 이 밖에 한국수력원자력이 해외 원전 사업에서 매일 오가는 계약서를 AI로 관리하고 번역까지 지원받는 사례, 은행연합회가 며칠씩 걸리던 광고 심사를 1시간 안에 끝낸 사례도 함께 소개됐다.
최 대표는 "지금의 1~5개월 차이가 향후 5~10년의 격차로 벌어질 수 있다"며, 의료 현장에서도 AI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처음부터 여러 업무에 한꺼번에 AI를 적용하기보다, 꼭 필요한 업무 한두 가지부터 시작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AI가 의사를 대체하진 않는다"…신뢰성 확보가 과제
질의응답 시간에는 AI가 제시하는 의학 정보의 신뢰도를 둘러싼 질문이 이어졌다. 오 상무는 네이버의 의료 특화 모델이 근거 수준 판별에서 현재 60~70점 수준까지는 도달했으며, 90점 수준을 목표로 의료진과 함께 지속적으로 성능을 개선하고 있다고 답했다. 최 대표는 AI가 만든 결과물의 정확도가 90~97% 수준이라면 나머지 격차는 결국 사람의 최종 판단과 책임이 채워야 하는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좌장을 맡은 김형갑 위원(대한의사협회 정보통신이사)은 "AI가 100% 정답을 내는 시스템은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의사가 AI로 인해 대체되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학 지식이 매일 갱신되는 만큼 모델이 사전에 학습한 지식에만 의존하지 말고, 신뢰할 수 있는 최신 자료를 실시간으로 찾아 반영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한 참석자는 환자들이 진료 전 AI 검색으로 얻은 정보와 실제 진료 사이의 격차를 인지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좌장은 관련 내용이 현재 국내 AI 기본법에도 포함돼 있으며, 협회 차원에서도 환자와 의료진 간 정보 격차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답했다.
이번 세션은 AI 기술이 진단과 치료를 보조하는 수준을 넘어 병원 운영 전반으로 활용 범위를 넓혀가고 있음을 보여줬다. 다만 발표자들은 공통적으로 기술 도입에 앞서 신뢰성과 정확도를 확보하는 과정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회장 김택우)는 7월 10일부터 12일까지 사흘간 서울 강남구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에서 '2026년 제43차 종합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번 학술대회는 '의사의 전문성으로 여는 지속가능한 미래의료: 인공지능(AI)과 초고령화 시대를 재설계하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7년 만에 오프라인으로 열린 이번 대회는 회원 간 학술 교류와 소통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
정보금 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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