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일선칼럼] 삼성에게 금융이란
삼성의 주어는 아니던 금융
'금융엔 왜 전자같은 곳 없나'
이건희 선대회장의 오랜 질문
이젠 삼성만의 금융 키워야

삼성그룹 포트폴리오에서 금융은 묘한 영토다. 시장에서는 절대 강자지만 그룹 안에선 늘 주변부였다. 삼성생명·화재·증권·카드·자산운용 등 '삼성금융 네트웍스' 5개사가 지난해 벌어들인 순이익은 6조원에 달한다. 은행 없이도 실적에서 국내 금융지주들을 앞선 것이다. 삼성금융의 맏형인 삼성생명은 대한민국 금융사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회사로도 꼽힌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와 시가총액 1위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한다.
그럼에도 삼성이라는 이름 앞에서 금융은 좀처럼 주어가 되지 못했다. 사람들은 반도체와 스마트폰, TV를 먼저 떠올린다. 삼성의 스타 CEO들 역시 대부분 전자 출신이다. 여전히 삼성전자 계열 인사나 관료 출신이 삼성금융 CEO 자리를 꿰차는 관행도 남아 있다.
이것이 삼성금융의 현주소다. 삼성금융은 대한민국 금융권의 큰 별이지만 그룹 내에선 늘 삼성전자 후광 뒤편에 머물렀다. 늘 큰데 작았다.
이유는 있다. 실적은 있었으나 서사(敍事)가 없었다. 삼성금융은 오랫동안 삼성의 안정적 현금 창구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그 실적이 삼성의 미래 언어로 번역되지는 못했다. 반도체, 인공지능(AI), 바이오에 비해 삼성금융의 미래 청사진은 흐릿했다.
영토 확장에도 소극적이었다. 경쟁사인 미래에셋은 ETF로 금융의 국경을 넘었고, 한화는 산업과 금융을 묶었다. 교보나 DB는 인수·합병(M&A)의 문을 적극적으로 두들겼다. 반면 삼성금융은 늘 '관리 모드'였다. 명확한 좌표가 없었던 탓이다.
지배구조라는 무거운 '모래주머니'도 있었다. 삼성생명과 화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약 10%는 막대한 배당과 자산가치를 안겨준 황금알이었다. 그러나 삼성금융이 스스로 미래를 선택하지 못하게 만든 족쇄이기도 했다. 앞으로 달려가야 할 때 자꾸 뒤를 돌아보며 지배구조의 안위를 살폈다. 그러는 사이 삼성금융은 도전 대신 안정을 택하는 조직으로 굳어져갔다.
그러나 최근 변화의 기운이 감지된다. KDB생명 인수전에 삼성생명이 도전장을 내밀었고 삼성증권, 삼성카드 등이 두나무 지분 4%를 사들였다. 시장에선 "삼성금융이 본격적인 날갯짓을 앞두고 몸풀기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의 문법 자체가 바뀌고 있는 점도 삼성에는 기회다. 금융이 독자적인 업권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비금융 플랫폼과 AI 안으로 스며드는 '임베디드 금융'으로 진화하고 있다.
삼성은 전 세계 수억 명의 손에 쥐어진 갤럭시폰, 삼성월렛, 삼성헬스라는 독보적인 비금융 생태계를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금융의 위험 관리 역량과 신뢰를 결합하면 삼성만의 금융이 가능하다. 고객의 손에 쥐어진 스마트폰이 은행 창구가 되고, 생활 플랫폼이 곧 금융 생태계가 되는 그림이다.
이건희 선대회장은 생전 이런 질문을 던졌다. "왜 금융에서는 삼성전자 같은 회사가 나오지 않는가." 삼성은 금융일류화추진팀을 꾸렸고, 전자식 혁신 DNA를 이식하려 분투했다. 그러나 그 질문은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이제 삼성의 질문은 달라져야 한다. "삼성전자와 금융이 만나면 어떤 금융이 가능한가." 이는 삼성그룹 전체의 전략자산과 역량을 활용해 금융의 자리를 다시 쓰는 데서 시작된다.
삼성에 금융은 무엇인가. 지배구조의 안전판인가. 안정적 현금 창출원인가. 아니면 다음 10년 삼성을 뛰게 할 또 하나의 심장인가. 이 질문의 답에 삼성금융의 미래가 달렸다.
[손일선 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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