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해가 져야 밥 먹으러 나가요"…무더위에 멈춰버린 돈의동 쪽방촌

최승한 2026. 7. 13.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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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도 무더위에 주민들 외출 줄이고 방 안 머물러
축구장 절반 크기 마을에 주민 500여명 다닥다닥 거주
선풍기 바람·골목 한 뼘 그늘에 의지
제빙기 앞에는 생수병 든 주민 발길 이어져
쉼터의 각종 프로그램에도 참여는 일부뿐
13일 오전 서울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 주민들이 방 안의 열기를 피해 좁은 골목 그늘에 나와 더위를 식히고 있다. (오른쪽) 한 주민이 더위를 피해 집 문턱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최승한 기자

[파이낸셜뉴스] 13일 오전 서울 종로3가역에서 5분 정도 떨어진 골목길, '빈방 있음'이라고 적힌 단기 거주 안내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두 사람이 겨우 비켜 지나갈 만한 미로 같은 골목을 몇 차례 꺾자 돈의동 쪽방촌이 모습을 드러냈다. 약 3300㎡, 축구장 절반에도 못 미치는 이곳 공간에 주민 500여명이 모여 살고있었다. 낡은 벽돌 건물 사이로 전선과 배관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었고, 외벽에는 에어컨 실외기가 빼곡하게 매달려 있었다. 고개를 한껏 들어야 건물 사이로 좁은 하늘이 보였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쪽방촌의 기온은 32도까지 올랐다. 햇볕이 들지 않는 골목 안도 후끈했다. 벽돌벽과 바닥이 머금은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했고, 바람도 거의 통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주민들의 이마와 목덜미에서도 땀이 흘렀다.

골목은 방 안 더위를 피해 나온 주민들의 임시 거실이 됐다. 주민들은 문 앞에 간이의자와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 놓고 생수를 마시거나 담배를 피웠다. 웃옷을 벗은 채 문턱에 걸터앉거나 수건으로 얼굴과 목을 연신 닦는 주민도 있었다.

돈의동에서 10년 넘게 살았다는 김모씨(91)는 한낮 외출을 사실상 포기한다고 했다. 김씨는 "더운 날에는 아침만 간단히 먹고 낮에는 방에서 시간을 보낸다"며 "해가 진 뒤에야 급식카드를 들고 저녁을 먹으러 나간다"고 말했다. 오전 식사를 마치면 저녁까지 좁은 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열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무더위로 쪽방촌 주민들이 모든 현관문을 개방한 모습. 사진=최승한 기자

2평 남짓한 방 안에서는 웃옷을 벗고 선풍기 앞에 누워 있는 주민들이 눈에 띄었다. 선풍기는 달궈진 공기를 방 안에서 밀어내는 데 그쳤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집도 문을 닫으면 답답하다며 현관문을 활짝 열어둔 경우가 많았다.

2인 이상 공동거주 공간에는 공용 에어컨이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전기요금을 걱정하거나 인공적인 바람이 싫다는 이유로 가동을 꺼리는 주민도 있었다. 평소 골목에 물안개를 뿌리는 쿨링포그마저 며칠째 고장으로 멈춰 있었다. 주민들은 분사 노즐 아래 건물 그림자에 의자를 바짝 붙여 앉았다.

정오를 넘기자 건물 사이 한 뼘짜리 그늘도 조금씩 줄었다. 주민들은 햇볕을 피해 의자를 몇 걸음씩 옮겼다. 문을 닫으면 답답하고, 열어두면 냉기가 빠져나가는 쪽방에서 주민들은 방과 골목을 오가며 한여름 무더위를 견뎠다.

쪽방촌 곳곳에는 종교시설이 자리해 봉사자와 구청 관계자들이 주민들의 안부를 살폈다. 이날 주민들의 발길이 가장 많이 이어진 곳은 돈의동 쪽방상담소 1층이었다. 제빙기에는 잘게 부서진 얼음이 쌓여 있었고, 주민들은 생수병과 통을 가져와 얼음을 담아 갔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었는데도 준비한 얼음의 약 1/3이 소진됐다.

반면 상담소 건물 4층의 무더위쉼터는 한산했다. 에어컨이 가동되는 넓은 방에 대형 스크린과 탁자, 다과가 마련돼 있었지만 시설이 무색하게 이용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상담소는 걷기 챌린지와 건강관리, 문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고 있지만 참여자는 일부 주민에 그친다. 자신의 방에서 쉬는 것을 더 편하게 여기거나 다른 주민과 마주치는 일을 꺼려 공동공간을 찾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폭염 대책 시설을 마련해도 실제 주민 이용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또 다른 현실적인 문턱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상담소 관계자는 "프로그램과 쉼터를 마련하고 참여를 권할 수는 있지만, 주민들을 강제로 나오게 할 수는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쪽방상담소에서 주민들이 무더위를 식히기 위해 마련된 얼린 생수를 받아가고 있다. 사진=최승한 기자

425_sama@fnnews.com 최승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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