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첫 '나카소네상' 김빛내리 "막연한 호기심이 10년 연구로…과기인재 인건비 높여야"

"저희 연구실에서 개척한 고유한 연구 분야가 학문적으로 인정받아 더욱 기쁩니다. 점심시간에 잡담을 하다 나온 질문에서 시작돼 지금의 기술 개발까지 이어졌습니다. 찾아놓고 보니 유용한 기술이고 기존에 없던 치료제를 만드는 기술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13일 국내 첫 'HFSP 나카소네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빛내리 기초과학연구원(IBS) RNA연구단장(서울대 생명과학부 석좌교수)은 소감을 묻자 이같이 말했다. 기존 주력 분야가 아니라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10여년간 꾸준히 발전시켜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HFSP 나카소네상은 1987년 G7 정상회의에서 '인간 프론티어 과학 프로그램(HFSP)'을 구상하고 출범시킨 일본의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비전을 기리기 위해 2010년에 제정돼 처음 시상한 상이다. 올해까지 총 21명이 수상했고 그중 노벨상 수상까지 이어진 사람은 약 5분의 1인 4명이다.
나카소네상은 약 10년 내의 혁신적인 생명과학 연구성과를 시상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핵심 연구논문을 발표한 뒤 수상까지 평균 30여년이 걸리는 노벨 과학상보다 비교적 최신 연구를 조명하는 셈이다.
● 주목받지 못했던 mRNA '꼬리' 역할 규명
김 교수는 생명 활동을 조절하는 핵심 유전물질 중 하나인 마이크로리보핵산(microRNA)을 20여년간 연구한 권위자다. 마이크로RNA를 발견한 과학자 2명이 2024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을 정도로 생명과학에서는 뜨거운 주제다.
나카소네상을 수상한 연구 주제는 마이크로RNA가 아닌 메신저RNA(mRNA)의 말단부인 '꼬리' 연구다. mRNA는 이중 나선 구조의 유전물질인 디옥시리보핵산(DNA)의 염기서열을 복사해 실제 생명 활동의 주역인 단백질을 만드는 중간 설계도 역할을 한다. 염기가 한 줄로 늘어선 단일 가닥 구조다.
mRNA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주요 백신으로 활용돼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치료제로 활용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지만 체내에서 하루 이상 유지되지 않는 짧은 수명이 걸림돌이다. mRNA의 수명을 늘리고 같은 양의 mRNA로 단백질을 대량 생산하는 것이 숙제다.
mRNA 꼬리 연구는 10여년전 점심시간에 나온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김 교수는 "'mRNA의 꼬리 부분에 알려지지 않은 현상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호기심에서 시작했다"며 "mRNA 말단부는 그동안 학계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했고 관찰도 기술적으로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 교수 연구실에 있던 박사과정 두 연구자가 힘을 합쳐 2014년 mRNA 꼬리 염기서열을 밝히는 '테일시크(TAIL-seq)' 기술을 개발했다. 현재 서울대 생명과학부에 있는 장혜식 교수, 서울대 수의대에 있는 임재철 교수다.
김 교수는 "생명정보학을 공부한 장 교수가 데이터 분석을, 생명과학을 전공한 임 교수가 실험을 맡아 분업이 잘 이뤄졌다"고 말했다.
테일시크로 mRNA 꼬리를 관찰한 결과 RNA를 이루는 염기 중 하나인 아데닌(A)이 연속적으로 이어진 '폴리A 꼬리' 구조가 규명됐다. 폴리A 꼬리는 mRNA의 수명에 관여한다. 꼬리가 점차 짧아지다가 mRNA 본체가 분해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꼬리가 길고 오래 유지될수록 mRNA 수명이 늘어나 mRNA가 분해될 때까지 생산하는 단백질 총량도 증가한다.
김 교수는 "세포 수명에 영향을 주는 DNA 끝부분의 염기서열인 '텔로미어'가 먼저 닳아 없어지듯이 mRNA도 폴리A 꼬리가 길면 분해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그동안 단백질을 계속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연구팀은 폴리A 꼬리 중간중간에 구아닌(G)이라는 염기가 섞여 있는 사례를 발견했다. A 이외의 염기가 일부 포함된 꼬리를 혼합 꼬리(mixed tail)라고 한다. G는 mRNA 꼬리를 짧게 만드는 효소 반응을 방해해 꼬리가 더 안정적으로 오래 유지되도록 한다. 서로 다른 금속 원소를 섞어 물성을 강화하는 합금과 비슷한 원리다.
김 교수는 "처음에는 '아말감 테일'처럼 합금 이름을 붙이려고도 생각했다"며 "서로 다른 것이 섞였을 때 더 강해지는 원리가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 바이러스에서 '모범 답안' 찾아 mRNA 치료제 실용화 단서로
또 한번의 점심 식사가 mRNA 꼬리 연구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자연계에서 바이러스가 진화시켜 온 mRNA '모범 답안'을 차용하는 아이디어다.
김 교수는 "아이디어 자체는 다른 데서 밥을 먹다가 생각났지만 실제 논의는 당시 연구실 박사과정 학생이었고 지금은 미국 하버드대 박사후연구원으로 가 있는 서제니 박사가 주도했다"고 밝혔다.
이어 "바이러스는 강력한 유전자 조절 메커니즘을 가진 경우가 많다"며 "인간 세포에서 발견한 원리를 바이러스는 더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튼튼한 혼합 꼬리가 잘 만들어지도록 유도하는 바이러스 RNA 서열을 찾아 치료제용 mRNA에 적용하자 mRNA 안정성과 단백질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세포질에 있는 mRNA의 꼬리는 보통 길이가 염기 60~70개 수준이다. 김 교수팀의 기술을 적용하면 180~200개까지 늘릴 수 있다. 꼬리를 처음부터 길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세포 내에서 지속적으로 복구돼 mRNA 수명이 평균 4배까지 늘어난다.
김 교수는 "저희가 개발한 방법을 쓰면 mRNA가 1~2주까지 유지될 수 있어 오랜 시간 단백질을 많이 만들 수 있다"며 "mRNA 치료제 투여량과 투여를 위한 정맥주사 횟수를 줄여 부작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mRNA를 진정한 난치병 치료제로 만들 가능성을 본 것이다.
mRNA 꼬리를 강화하는 안정화 기술은 줄기세포를 만들거나 세포의 성질을 변화시키는 과정에서도 활용될 수 있다. 해외 기업들과의 공동연구도 활발하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마이크로RNA 연구를 오래 해 왔고 애정도 많지만 mRNA 꼬리 연구는 우리 연구실에서 시작해 개척한 분야"라고 말했다. 이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구가 이어졌다"며 "혼합 꼬리를 발견한 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살펴보고 실용적인 기술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점심 식사에서 나온 아이디어들이 혁신적인 연구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김 교수는 "밥 먹으면서 연구 이야기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즐거운 학생들이 우리 연구실에 찾아오는 것 같다"며 "실험과 논문 이야기를 편안하게 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일정이 바빠서 연구실 사람들과 밥을 자주 못 먹는 게 문제"라며 웃었다.
한편 김 교수는 지난 정부의 연구개발(R&D) 대규모 삭감으로 국내 과학계가 '내상'을 입었다며 전체 예산 자체는 상당 부분 복원됐지만 신뢰가 회복돼야 한다고 봤다. 또 향후 한국의 과학기술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박사후연구원(포닥)과 조교수 등 젊은 과학자부터 우선적으로 인건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당장 10년 뒤 한국 과학을 끌고 갈 사람들이 바로 박사후연구원과 젊은 조교수"라며 "좋은 조교수가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좋은 학생과 박사후연구원이 모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같은 돈을 쓰더라도 미래 정책 효과가 가장 큰 집단"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김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지난 정부 R&D 예산 삭감 이후 현재 국내 연구계 상황을 어떻게 진단하고 있나.
"지난 정부의 R&D 삭감으로 국내 과학계가 내상을 입었다고 생각한다. 전체 규모 면에서는 상당 부분 복원됐지만 숫자가 복구됐다고 해서 개별 과제가 복원되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이 이미 떠나거나 연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학생과 연구자들이 원칙 없는 연구행정에 대해 실망하고 한국을 떠나거나 돌아오지 않고 커리어를 바꾸기도 한다. 연구행정 노하우를 쌓고 시스템을 합리화하는 노력을 꾸준히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으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Q. 과학기술 인재 확보를 위해 인건비 인상이 가장 시급하다고 봤다.
"급여가 2배에서 많게는 3배까지 차이 나는 해외를 두고 한국을 선택할 이유가 부족하다. 한국에 특별한 개인 사유가 없다면 현재의 조교수 급여로 외국의 우수 연구자를 데려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아시아 내에서도 경쟁력이 없다. 젊은 연구자들은 과거보다 언어와 문화 장벽이 더 낮다. 우수 인력은 미국, 유럽뿐 아니라 홍콩과 싱가포르 조건까지 모두 비교한다.
급여를 높여 우수한 박사후연구원을 유치하는 최근 이노코어 연구단 사업은 선사례다. 다소 서둘러 시작한 측면은 있지만 사업 시행 이후 실제로 좋은 박사후연구원들이 영입되고 있다고 들었다. 인건비 문제를 해결하면 우수 인재를 영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셈이다. 한 번 사례가 만들어졌으니 다듬어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박사후연구원 급여가 일부 조교수 급여보다 높아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교수들의 기존 급여 역시 지나치게 낮다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 또 최근 몇 년간 연구비의 명목 금액이 유지됐는데 물가와 환율 상승을 고려하면 사실상 삭감됐다고 봐야 한다. 장비와 시약 가격이 올랐기 때문에 연구비 단가를 높여야 한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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