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보세요, 이렇게 살 수도 있어!”

나카무라 토미코 2026. 7. 13.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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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호, 노 보더〉 감독, 아사노 유미코 인터뷰

올해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유호, 노 보더〉(遊歩 ノーボーダー)는 장애인 자립생활 운동가이자 장애인 동료 상담의 선구자로 불리는 아사카 유호(安積遊歩) 씨의 삶을 기록한 다큐멘터리이다. 유호 씨와 같은 장애를 가진 딸 우미 씨와의 관계, 그녀를 돕는 젊은 활동가들을 통해 ‘장벽을 허문’(노 보더 no border) 자립생활과 ‘확장된 가족’, 그리고 자매애를 보여준다.

▲ 아사노 유미코(浅野由美子) 감독의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 〈유호, 노 보더〉(2026)는 일본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인물로 꼽히는 장애여성운동가 아사카 유호(安積遊歩) 씨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출처: 영화 〈유호, 노 보더〉(遊歩 ノーボーダー) 공식 사이트 https://yuho-noborder.com

유호(遊歩)라는 이름은 ‘한가롭게 걷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이 작품은 아사카 유호라는 유례를 찾기 힘든 인물(아사카 유호 인터뷰 기사 https://ildaro.com/5268)을 글자 그대로 ‘자유롭고 자긍심 높게 놀 듯이 걷는’ 사람으로 그려 관객을 매료시킨다.

〈유호, 노 보더〉는 판화가이자 화가인 아사노 유미코(浅野由美子) 씨가 감독한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다. 그렇다면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된 시작점은 어디일까? 아사노 유미코 씨에게 들어보았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찍길 바란다’

후쿠시마에서 원전 사고가 일어난 2011년의 일이다.

“있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음에도, 원전에 대한 비판을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일본 사회의 분위기에 무력감을 느끼던 와중이었습니다. 지역 사회의 동료들과 함께 ‘에베츠 탈원전예술제’(홋카이도 에베츠시)를 기획했어요. 예술제에 유호 씨를 강사로 초빙했는데, 영화 초반 장면이 바로 그때예요.”

당시 아사노 씨는 탈원전예술제의 주최 측으로서 행사기록용 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 시간여의 유호 씨 강연에 심장이 덜컹했다.

“아무튼간에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젊은 사람들 모두 눈이 초롱초롱했어요. 그래서 강연을 마친 후에 그 자리에서 유호 씨에게 ‘영화를 찍게 해달라’고 부탁했죠. 그랬더니 유호 씨가 ‘지금까지 방송에 나와도 정치적인 발언은 삭제되고, 장애인으로서의 역할만 요구 받았다’면서,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찍길 바란다’고 말하더라고요.”

아사카 유호 씨는 선천적으로 뼈가 약하고, 어릴 때부터 가혹한 의료개입과 ‘정상인’모델의 교육으로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뇌병변장애인 당사자 단체 ‘푸른잔디회’(青い芝の会)와 만나면서, 장애를 만들고 있는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행동에 나선다.

미국에서 페미니즘을 접한 후 돌아와 일본 최초로 장애인 당사자에 의한 자립생활센터 설립에 참여하고, 우생보호법의 우생조항(유전적 질환이나 장애를 가질 가능성이 있는 태아에 대한 임신중지)을 삭제하는 데에 기여하는 등 일본 사회의 변화를 꾀했다.

‘싸우는 몸’이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싸우지 않고 서로 돕는 사회를 요구하며, 탈원전과 반전(反戰)에도 목소리를 내고, 에너지의 화신처럼 행동하고 있다.

 

장애 그리고 여성…페미니즘으로 포착한 복합차별

“너무도 농밀해서 모든 이야기를 담자면 대하드라마가 되어버린다”는 유호 씨의 인생. 거기에는 감독인 아사노 씨가 세계의 선주민 운동에서 배워왔던 ‘복합차별’에 대한 질문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애인 권리운동 안에도 남성중심주의가 있지만, 장애인 당사자가 아닌 제가 바깥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는 어려워요. 장애와 성의 복합차별. 유호 씨는 그 복잡미묘한 과제를 명확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였습니다.”

▲ 아사노 유미코(浅野由美子) 씨. 홋카이도 출생. 전문대를 졸업한 후 일하며 미술학교에서 공부, 판화가이자 화가로 활동하였다. 2012년에 후지노 토모아키 씨와 함께 다큐멘터리 제작회사 영상공방 조시마를 설립. 첫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인 〈유호, 노 보더〉는 현재 도쿄 및 일본전역에서 상영 중이다. [촬영] 우이 마키코(宇井眞紀子)

성차별은 어린 아사노 씨에게도 깊이 새겨져 있다.

“가부장적이고 억압적인 문화에서 자라서, 미래에 대한 어떤 희망도 없이 18살이 되면 건물에 올라가서 떨어져야지, 그런 글을 쓴 적도 있었어요. 두 오빠는 놀고 있는데 막내인 저만 밥 차려라, 목욕물 받아라 하며 혼나고, 부모님이랑은 싸우기만 했죠.”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영화 〈유호, 노 보더〉의 시사회 반응도 흥미로웠다.

“복지 영화 관점에서 보는 남성 관객이 많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장애 얘기를 하다가 방향을 틀어 페미니즘 얘기로 흘러가니 당황하는 것 같더라고요.”

아사노 씨와 함께 영상공방을 설립해 이번 작품에도 편집 등으로 참여한 후지노 토모아키 씨도 이렇게 말한다. “저 혼자였다면 깨닫지 못했을 질문들. 아사노 씨이기 때문에 만들 수 있었던 영화이고, 거기에 이 영화의 현재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선 감옥’에 갇힌 사람들에게 주는 메시지

어릴 적부터 그림을 좋아해 판화가가 된 아사노 유미코 씨는 자신이 살던 지역의 영화제 일을 돕다가, 후지노 토모아키(藤野知明) 씨와 만나게 되면서 자기 손으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 후지노 씨는 7월 말 한국 개봉을 앞두고 있는 영화 〈어떻게 해야 했을까?〉(どうすればよかったか?, 2024) 감독이기도 하다.

“영화관조차 없는 농촌에서 자란 저에게 영화는 텔레비전에서나 보는 것이었어요. 요도나가 나가하루(1909~1998, ‘영화비평의 거인’으로 불렸던 영화평론가)로 성장한 세대예요. 내가 영화를 직접 만들다니, 생각도 못했어요.”

그렇지만 사회적 관심에서 창작하는 점은 그림이나 영화나 똑같다.

“다만, 그림은 혼자서 완결하기 때문에 평상시에 곰처럼 산에 쳐박혀 있죠. 이따금 산에서 내려와 사람이랑 교류하면서(웃음). 논리를 근거로 작품을 만들면서도 설명은 잘 못 해서 인간관계도 잘 못 해요. 하지만 영화는 여러 사람의 힘을 빌려야만 하니, 지금은 기간한정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애초에 유호 씨를 마주하는 것도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하지만, 서로 두 팔로 꽉 껴안지 않으면 영화를 찍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 아사노 유미코(浅野由美子)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 〈유호, 노 보더〉(2026) 중에서 아사카 유호(安積遊歩) 씨의 모습. 출처: 영화 〈유호, 노 보더〉(遊歩 ノーボーダー) 공식 사이트 https://yuho-noborder.com

한편, 영화 〈유호, 노 보더〉에는 유호 씨를 계속해 조력해온 여동생 아이코 씨도 등장한다.

“(여동생에 대해) ‘후쿠시마의 마더 테레사’라고 유호 씨는 말하지만,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아이코 씨는 영케어러인 자신의 이야기를 했는데, 영화에서 굉장히 중요한 씬이 되었습니다.”

그럼, 완성된 영화를 유호 씨는 어떻게 봤을까?

이번 작품을 만들기 전에 아사노 씨는 함께 영상공방을 운영하는 후지노 토모아키 감독의 〈어떻게 해야 했을까?〉 제작에 관여했다. 조현병이 발병한 누나를 둘러싸고 후지노 씨 본인의 가족을 찍은 영화다. (관련 기사: 인권의 문제입니다, ‘조현병의 문제’가 아니고요 https://ildaro.com/10102) 그런데 유호 씨는 자신을 찍은 이번 작품(〈유호, 노 보더〉)이 바로 그 영화의 질문(어떻게 해야 했을까?)에 대한 응답이라는 걸 간파했다.

“나(유호)를 보세요, 이렇게 살면 됐을 텐데요, 라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사노 씨도 촬영 중에 유호 씨에게 “제가 너무 서툰 감독이죠?”라고 말했다가 “스스로를 비하하지 마라, 자신감을 가져라!”라고 허를 찔린 적이 있다. “그러니 남 신경 쓰다가 자유롭게 살지 못하는 지금의 젊은이들도 이 영화를 통해 분명히 힘을 얻을 겁니다.”

 

-〈일다〉와 제휴 관계인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 기사를 원문 번역하고, 국내 독자들을 위해 〈일다〉 편집부가 수정 보완한 내용입니다. (인터뷰: 나카무라 토미코(中村富美子), 촬영: 우이 마키코(宇井眞紀子), 번역: 고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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