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군 개입에 명단 공개까지"...46년 반복된 5·18 왜곡 문법
최근엔 유공자 특혜론·명단 공개 요구로
법원·국가기관 조사로 허위 판단에도 재생산

5·18 민주화운동을 둘러싼 역사 왜곡은 시대마다 표현과 형식만 달라졌을 뿐, 구조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난 46년 간 민주화운동의 정당성을 부정·훼손하고 국가폭력의 책임을 희석하는 방식이 무한 반복돼왔다. ‘폭동설’에서 시작된 왜곡은 ‘북한군 개입설’과 ‘광수설’, ‘유공자 특혜론’으로 타깃을 바꿔가며 현재도 재생산되고 있다. 음모론이 반박되면, 목표를 바꿔 또다른 음모·조작설을 내세웠다. ▲폭동설 ▲시민군 책임론 ▲북한군 개입설 등이 대표적이다. 광주 시민의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계엄군의 발포를 자위권 행사로 정당화하거나 북한이 사태를 배후 조종했다는 주장이 무한 루프처럼 되풀이 됐다. 본보가 전두환 회고록 관련 판결문과 5·18진상조사위원회 조사보고서, 5·18기념재단 자료 등을 근거로 5·18 왜곡과 사실관계를 검증해 본 결과, 1980년 당시 신군부와 계엄사는 광주 시민의 저항을 민주화운동이 아닌 폭동으로 규정했다. 계엄군의 발포는 질서 회복과 자위권 행사였고 시민들은 국가 질서를 위협한 세력이라는 논리구조였다.
◆폭동에서 북한군까지…바뀌지 않은 프레임
왜곡은 시민군 선무장론과 계엄군 자위권 발동론으로 이어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0년 5월21일 옛 전남도청 앞 집단 발포 직전 발생한, 권용훈 일병 사망 사건이다. 신군부는 “시민군 장갑차가 계엄군을 공격해 사망자가 발생했고 이에 따라 군이 자위권 차원에서 발포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전두환 회고록 민사소송 과정에서 권 일병의 사망은 시민군 장갑차 공격이 아닌 계엄군 장갑차가 후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자체 사고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군 개입설은 5·18 왜곡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반복된 주장이다. 북한 특수군 수백명이 광주에 침투해 시위를 주도했고 무기고 습격과 발포를 조종했다는 거다. 일부 책에선 ‘김대중 전 대통령과 북한이 함께 5·18을 기획했다’는 주장까지 담았다. 국가기관과 법원은 이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고 거듭 판단했다. 1980년 계엄사 조사와 1988년 국회 광주청문회, 검찰 수사, 5·18 형사재판,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국가정보원 조사,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활동 등을 통해서다. 그 간 수 차례 국가 차원의 조사에서 북한군 개입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국방부는 2013년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통해 “5·18 당시 북한 특수군이 개입했다는 내용은 확인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같은 해 정홍원 국무총리 역시 국회 답변에서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이 정부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공개한 1980년 당시 미국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문건에서도 북한이 광주 상황에 개입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 문건에는 오히려 북한이 남한 상황에 개입할 경우 전두환 신군부를 돕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두환씨 본인조차 한 때 북한군 개입설을 부정한 바 있다. 전씨는 2016년 6월 월간 신동아와의 인터뷰에서 5·18 당시 북한군 침투와 관련한 보고를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전혀 없다”고 답했다. 이어 북한 특수군 600명이 광주에 투입됐다는 극우 논객 지만원씨의 주장에 대해서도 “600명이 뭐냐. 어디로 왔느냐”며 “난 오늘 처음 듣는다. 금시초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불과 10개월 뒤인 2017년 4월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에서는 자신의 말도 뒤집었다. 그는 “5·18 사태 때에는 북한의 특수요원들 다수가 무장하고 있는 시위대 속에서 시민으로 위장해 있을 터”라고 적으며 북한군 개입설을 사실상 수용했다.
◆색깔론에서 공정론으로…달라진 왜곡
북한군 개입설은 이른바 ‘광수설’로 진화했다. 극우 논객 지만원씨는 5·18 당시 촬영된 사진 속 시민들에게 번호를 붙여 ‘광수’라고 이름 붙이고 이들을 북한 특수군이나 공작원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시민군 대변인이었던 고(故) 윤상원 열사와 시민군 상황실장이었던 박남선씨, 유공자와 일반 시민, 취재기자 등도 북한 인물과 동일인이라는 주장의 대상이 됐다. 지씨는 이들이 훗날 북한 정권과 군부의 고위직이 됐다고 했지만 객관적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법원은 광주 시민과 유공자, 유족 등을 북한군으로 지목한 행위가 명예를 훼손했다고 판단했고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5·18 왜곡은 진화했다. 북한군 개입설이나 폭동설 등 이념 공세 중심에서 최근에는 ‘유공자 특혜론’과 ‘가짜 유공자설’ 등 공정성 논란을 앞세운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5·18 유공자는 매월 고액의 연금을 받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5·18 유공자에게는 다른 국가유공자와 달리 별도의 월 연금 제도가 시행되지 않는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일부 중증 부상자 등을 제외하면 일반적인 국가유공자처럼 보훈급여금이 지급되는 구조가 아니며 일시 보상금 중심의 지원 체계만 적용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옛 광주시)가 지역에 거주하는 5·18민주유공자와 유족에게 월 10만원의 생활지원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이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복지 지원 사업(조례)으로, 국가보훈급여와는 별개의 제도다.
공무원 시험 가산점 역시 왜곡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5·18 유공자와 유족에게만 취업 가산점 혜택이 주어지고 있다’고 비틀고 있지만, 독립유공자와 국가유공자, 참전유공자 등 대부분의 보훈 대상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제도다.
유공자 명단 공개 요구 역시 반복되는 왜곡의 한 축이다. 일부에서는 명단이 공개되지 않는 점을 근거로 이른바 ‘가짜 유공자’ 존재 가능성을 제기하며 공개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훈부는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 사항은 개인정보에 해당해 공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는 5·18 유공자 뿐만 아니라, 국가유공자와 고엽제 후유증 환자 등 다른 보훈 대상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기준이다.
◆ 출판물에서 유튜브로…왜곡 방식도 진화
서울행정법원과 서울고법 역시 정보공개 소송에서 비공개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공자 관련 정보가 공개될 경우 유공자를 둘러싼 음해에 가까운 공격과 과도한 비판으로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가 침해될 위험이 매우 크다”고 설명했다. 다만 5·18 피해자와 희생자 이름은 이미 공개된 공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광주 서구 치평동 5·18자유공원 지하 추모승화공간에는 5·18 피해자로 인정돼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은 4천여 명의 명패가 설치돼 있으며, 국립5·18민주묘지에도 희생자와 민주유공자 등이 안장돼 있다.
왜곡의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책과 강연, 일부 언론 보도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유튜브와 온라인 커뮤니티, 게임 등으로 무대가 옮겨갔다. 실제로 대법원이 삭제와 배포 금지를 확정한 전두환 회고록 삭제 부분을 낭독하는 영상이 유튜브에서 유통된 적 있으며 북한군 개입설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결합한 콘텐츠도 등장하고 있다. 5·18기념재단 관계자는 “왜곡은 새로운 사실이 발견돼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확인된 사실을 부정하고 의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반복된다”며 “허위 정보가 사실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도록 지속적인 기록과 교육,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소영기자 psy1@md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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