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봉지 때문에 유럽수출길 막히려나...농심-삼양 '속앓이'

국내 라면 수출액이 올해 사상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라면업계는 식품 포장재로 인해 라면 수출길이 가로막힐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13일 라면업계에 따르면 올 8월부터 유럽연합(EU)에서 '포장 및 포장폐기물 규정'(PPWR)이 시행되면 라면의 맛과 품질을 유지하는 핵심역할을 하는 복합재질의 포장재 '라면봉지'가 수출길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수 있다.
PPWR은 플라스틱 쓰레기의 주범으로 꼽히는 포장재 발생량을 줄이고 순환경제 구조를 확립하기 위해 마련된 것으로, EU 회원국별로 국내법 전환없이 바로 적용되는 강력한 규정이다.
포장재 소재에 대한 규제뿐 아니라 재생원료 함량 규제, 재활용 가능한 설계 등에 대한 적용시점까지 담고 있다. 당장 8월부터는 식품 접촉 포장재에서 과불화화합물(PFAS) 사용제한, 4대 중금속 합산농도가 1kg당 100mg 이하 등만 규제하지만, 2030년부터는 기준이 훨씬 강화되면서 재활용 기준을 충족하는 포장재만 사용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재활용이 불가능한 '라면봉지'와 같은 복합재질은 포장재로 사용할 수 없다.
이 때문에 국내 라면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특히 유럽 수출비중이 높은 농심과 삼양식품의 속앓이는 깊어지고 있다. 농심은 2030년까지 수출비중을 60% 이상 높인다는 목표 아래 올해 유럽 시장공략을 강화하고 있다. 불닭볶음면의 세계적인 인기 덕분에 지난해 식품업계 최초로 '9억불 수출의 탑'을 수상한 삼양식품도 해외수출 확대를 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U의 포장재 규제는 두 기업 모두에게 '수출리스크'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 2030년 이전까지 복합재질인 라면봉지를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로 대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라면봉지는 2~4개의 필름을 접착제로 결합한 다층구조다. 바깥층은 인쇄와 외부 충격을 견딜 수 있는 소재이고, 안쪽층은 열을 가해 포장재를 밀봉하는 역할을 한다. 가운데에는 산소와 수분, 빛을 차단하는 고차단층이 들어간다.
이런 차단층은 라면의 유통기한과 품질을 좌우한다. 라면은 대부분 기름에 튀긴 유탕면으로 만들어진다. 산소가 포장 안으로 유입되면 면속 유지가 산패하면서 맛과 향이 변하고, 습기가 들어오면 면발이 눅눅해질 수 있다. 분말스프와 건더기스프 역시 습기에 민감하다.
수출용 제품에 대한 포장 조건은 더 까다롭다. 수개월동안 해상운송을 거치고, 현지 물류창고와 유통매장에서 장기간 보관 가능하도록 고온다습한 환경과 저온 환경을 모두 견뎌야 하는 소재를 포장재로 사용해야 한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페트(PET)와 폴리에틸렌(PE), 폴리프로필렌(PP), 나일론, 알루미늄 증착필름 등 서로 다른 소재를 여러 겹 붙인 복합재질 포장재를 사용했다. PET는 강도와 인쇄성이 우수하고, PE와 PP는 밀봉 성능이 뛰어나다. 고차단층은 산소와 수분 유입을 막아 제품 품질을 유지한다.
이런 구조다보니 라면봉지는 재활용이 불가능하다. 서로 다른 소재가 접착제로 붙어있어 소재를 분리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복합재질 포장재는 소각하거나 열회수 방식으로 처리한다.
하지만 EU의 PPWR 규정을 준수하려면 복합재질의 라면봉지를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로 전환해야 한다. 재활용이 가능하려면 단일소재 포장재를 사용해야 하지만, 단일소재는 복합소재만큼 산소·수분차단 성능을 구현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이에 농심과 삼양식품은 복합재질을 대체할 소재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농심이 2025 지속가능성보고서에서 '지속가능한 패키징 관리'를 기후변화 대응과 함께 최우선 ESG 이슈(Tier1)로 선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유럽 사업 전략에는 'EU 복합식품 규제 및 PPWR 대응'을 별도 과제로 포함하며 유럽 규제 대응을 주요 경영 전략으로 제시했다. 올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유럽법인을 설립한 것도 이러한 전략과 맞닿아 있다.
삼양식품도 2025 지속가능성보고서에서 '제품 포장재 관련 규제로 인한 매출 기회 손실 및 비용 증가'를 주요 기후전환 리스크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이에 삼양식품은 2028년까지 PPWR 대응 로드맵을 수립하고 포장재 탄소지표 데이터베이스(DB) 구축과 포장재 감량 기술 고도화, 재활용이 어려운 포장재 대체 기술개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앞으로 K-라면의 수출경쟁력은 복합재질 포장재 수준의 품질을 유지하면서도 재활용성까지 확보할 수 있는 대체 포장재를 누가 먼저 개발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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