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의원 별세에 러 피폭설 등 음모론 횡행…트럼프는 “애국자”

미국 공화당의 대표적 대외 강경파였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사우스캐롤라이나)의 갑작스러운 별세를 둘러싸고 엑스(X)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각종 음모론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특히 그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직후 사망했다는 시점과 러시아의 공격으로 그가 방문했던 드론 생산시설이 파괴됐다는 사실이 맞물리면서,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는 “실제 사망 원인은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이었다”는 확인되지 않은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반면 미국 주요 언론들은 공식 발표 내용을 중심으로만 보도하며 추측성 보도를 자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에서 가장 널리 확산되는 주장은 그레이엄 의원이 우크라이나 방문 도중 러시아의 공격으로 사망했지만 외교·군사적 파장을 우려해 미국 정부가 이를 은폐하고 있다는 내용이다.
그레이엄 의원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뒤 드론 생산시설을 시찰했고, 이후 해당 시설이 러시아의 미사일 공격으로 파괴됐다는 점이 이러한 추측의 근거로 제시되고 있다.
여기에 의원실이 사망 사실을 발표한 시점이 우크라이나 방문 이후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는 점도 의혹을 키우는 요소로 거론된다. 일부 계정들은 “귀국 후 자택에서 갑작스럽게 숨졌다는 설명만으로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시간대와 이동 경로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 다른 음모론은 러시아 정보기관이나 친러 세력이 그레이엄 의원을 암살했다는 주장이다. 그레이엄 의원이 미국 의회에서 가장 강경한 대러시아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고,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를 수차례 방문하며 군사 지원 확대와 러시아 제재 강화를 앞장서 주장해 왔다는 점이 배경으로 거론된다.
특히 그는 사망 직전 키이우에서 러시아를 겨냥한 추가 제재와 군사 지원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고, 전쟁 수행을 위한 우크라이나 지원 확대에도 적극적인 입장을 밝혔다. 이에 일부에서는 “러시아 입장에서 상징적 제거 대상이 될 수 있었다”는 주장까지 내놓고 있다.
일부 게시물은 의원실이 사용한 ‘짧고 갑작스러운 질병’(a brief, sudden illness)이라는 표현에도 주목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심장마비라면 이를 직접 발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상대적으로 포괄적인 표현을 사용한 점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평소 건강관리에 힘썼고 특별한 지병이 알려지지 않았던 71세 정치인이 갑자기 숨졌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하는 반응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같은 주장들을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나 공식 확인은 현재까지 전혀 제시되지 않았다.
미국 정부와 우크라이나 정부는 물론 러시아 측 역시 이러한 주장에 대해 어떠한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미국 주요 언론들도 소셜미디어에서 제기되는 각종 의혹을 사실로 다루지 않고 공식 발표와 구조 당국 발표를 중심으로 보도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까지 공개된 공식 정보는 비교적 단순하다. 그레이엄 의원실은 성명을 통해 그가 지난 11일 저녁 “짧고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숨졌다고 발표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응급구조대는 이날 오후 8시30분께 자택에서 흉통을 호소하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현장에서 심폐소생술(CPR)을 실시한 뒤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끝내 사망했다. 사인은 아직 최종 발표되지 않았지만 초기에는 심장 관련 응급질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1955년생인 그레이엄 의원은 1994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뒤 2002년 상원의원에 당선돼 20년 넘게 사우스캐롤라이나를 대표한 공화당의 대표적 중진이다.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는 5선에 도전할 예정이었다.
그는 미국 의회에서 대표적인 ‘매파’로 통했다. 러시아와 중국, 이란, 북한을 상대로 강경한 외교·안보 노선을 일관되게 주장했으며,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에는 가장 적극적인 우크라이나 지원론자 가운데 한 명으로 꼽혔다. 2022년 전쟁 발발 이후 키이우를 10차례 방문했고, 별세 직전에도 젤렌스키 대통령과 만나 러시아 제재 강화와 미국의 지속적인 군사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반도 문제에서도 강경한 입장을 유지했다. 2017년 북한의 핵·미사일 위기가 고조됐을 당시에는 대북 군사 옵션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했고, 주한미군 가족 철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 약속을 지키지 않을 경우 정권의 종말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하는 등 초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대중국 정책에서도 대표적인 강경파였다. 최근에는 쿠팡 개인정보 유출 논란과 관련해 미국 의회의 한국 비판 움직임에 동조하면서 “중국의 공세에 공동 대응하기 위해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레이엄 의원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정치적 동맹으로도 유명하다. 2016년 공화당 대선 경선에서는 경쟁자였지만 이후 관계를 회복해 트럼프 진영의 대표적인 외교·안보 조언자로 활동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내가 알았던 사람들과 상원의원 가운데 가장 훌륭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며 “그는 언제나 일했고 진정한 미국의 애국자였다. 린지가 정말 그리울 것”이라고 애도했다.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도 “이스라엘은 위대한 친구를, 미국은 위대한 애국자를 잃었다”고 추모했다.
그레이엄 의원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미국 정치권에 적지 않은 공백을 남기게 됐다.
동시에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러 대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그의 사망 시점과 우크라이나 방문 일정이 맞물리면서 각종 추측도 계속 확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만 현재까지 러시아 개입설이나 우크라이나 피폭설 등 온라인에서 제기되는 의혹을 뒷받침할 만한 객관적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사실로 단정하기에는 근거가 부족한 상황이다.
이규화 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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