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로 버텨낸 시간이 지금의 행복을 만들었어요”

이혜진 프리랜서 기자 2026. 7. 13.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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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만 구독 ‘분노의 난임일기’ 김정옥 작가

웹툰 ‘분노의 난임일기’를 집필한 김정옥 작가에게 치열했던 난임의 시간과 생존기를 들었다.

"난임 치료 기간의 고통을 그냥 사라지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난임을 경험한 사람들은 안다. 그 시간이 단순히 아이를 기다리는 과정이 아니라는 것을. 병원 진료와 시술, 반복되는 기대와 좌절, 주변의 무심한 말 한마디까지 난임은 삶 전체를 뒤흔드는 경험이다. 김정옥 작가는 그 시간을 외면하지 않았다. 대신 만화로 그려냈다. 그렇게 탄생한 웹툰이 '분노의 난임일기’다.

제목부터 파격적이다. 많은 이들이 '분노’라는 단어가 너무 세다며 '희망’이나 '행복’ 같은 순화된 제목을 권했지만, 그는 고집했다. 난임을 겪어본 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밖에 없는 그날들의 솔직한 감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진정성은 120만 독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웹툰은 단행본으로 출간돼 난임 부부들에게 다시금 위로를 던졌다. 

신혼 초만 해도 김 작가는 자신이 난임을 겪을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건강은 늘 그의 가장 큰 자부심이었다. 하지만 6년의 시간은 인생에서 처음 맛보는 절망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시술이 실패로 끝났을 때 치밀어 오른 감정은 슬픔보다 분노였다. 그는 그 분노를 펜 끝에 담아 웹툰으로 쏟아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임신을 포기했던 그에게 기적처럼 아들 유건이가 찾아왔다. 난임을 기록하던 작가는 이제 육아를 기록하는 엄마가 됐다. 그러나 긴 터널 끝에 만난 육아는 마냥 평화로운 동화가 아니었다. 기쁨과 현실의 무게가 팽팽하게 줄다리기하는 매일, 그는 남편과 함께 '협업’의 육아를 실천하고 있다. 난임의 긴 고통을 지나 비로소 '행복’의 기록을 써 내려가는 김정옥 작가를 만나, 오늘도 고군분투 중인 이들에게 필요한 정직한 육아의 해답을 들었다.

난임 치료가 이렇게 긴 여정이 될 거라 예상하셨나요.

신혼 초나 난임 치료 초기에는 '금방 임신이 되겠지’라고 생각했어요. 평생 '건강한 몸’이 자랑거리였던 사람인데, 이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여겼거든요. 생리통이나 생리 불균형도 거의 겪어본 적 없었으니까요.

결혼하고 2년 정도는 자연스럽게 아이가 생기길 기다렸고, 그 뒤 2년 동안은 병원 다니며 시술을 받았어요. 그래도 소식이 없자 시술을 멈추기로 했고, 그렇게 마음을 비운 채 시간을 보내던 어느 날 유건이가 찾아왔어요. 난임을 겪으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건 '세상일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였어요. 평생 겪어보지 못한 좌절과 극심한 감정 기복, 절망, 그리고 내려놓는 법을 그 시간에 배웠던 것 같아요.

‘희망’ 대신 '분노’ 택한 난임일기 

‘분노의 난임일기’를 연재하게 된 동기와 출판 과정이 궁금해요.

순수하게 분노가 원동력이었어요. 시술에 들어간 시간과 노력, 고통이 임신이 되지 않은 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사라진다는 게 용납이 안 됐어요. 게다가 제가 가진 거라곤 제대로 배운 적 없는 그림 실력에 장비는 아이패드 한 대, 어릴 때부터 봐온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한 잡지식 뿐이었으니까요. 웹툰 제목을 정할 때 주변에서는 '분노’라는 단어를 걱정했어요. '희망의 난임일기’ '으라차차 난임일기’ 같은 제안도 받았고요. 그런데 난임을 겪은 분들은 모두 '분노의 난임일기’라는 제목에 가장 뜨겁게 공감해주셨어요. 저 역시 이보다 더 그 시기를 표현할 수 있는 제목은 없다고 생각했고요. 어설픈 그림체로 시작했지만 소재와 이야기를 보고 찾아주시는 독자가 점점 늘었고, 네이버 도전만화에서 베스트도전으로 올라간 뒤 출판사로부터 연락이 왔어요. 일하다 말고 밖으로 나가 남편에게 전화해서 소리 지르며 자랑했던 기억이 나요. 그렇게 정신없이 1년을 보내고, 마지막 교정을 끝낸 책이 집에 도착했을 때 그동안의 고통이 떠올라 많이 뭉클했어요.

120만 독자의 공감을 얻은 웹툰 ‘분노의 난임일기’ 김정옥 작가와 아들 유건이.
난임 시기, 분노의 모먼트 하나가 있다면요.

웹툰 에피소드에도 가장 반응이 좋았던 편인데, 부부 관계 문제예요. 여성들은 생리 주기와 가임기를 지키며 피가 마르는 상황인데 남편이 협조하지 않으면 정말 절망적이거든요. 기계적인 관계가 아니라 평소보다 더 아내를 향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해주길 바랐어요. 이 인터뷰를 읽는 남편분들이 꼭 아셨으면 하는 부분이에요. 남편이 부부 관계를 숙제처럼 임하거나, 싸웠다는 이유로 그날을 그냥 건너뛰어 버리면 아내는 정말 절망해요. 그 귀한 한 달을 무의미하게 날린 좌절감이 엄청나거든요. 난임을 겪을 때 가임기만큼은 남성분들이 주도적으로 챙겨야 해요. 그날을 아이를 만들기 위한 행위가 아닌, 아내를 향한 사랑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시간으로 만들어주세요.

그 시기의 남편은 어떤 존재였나요.

남편은 일반적인 시선에서 보면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에요. 저는 그런 점이 좋아서 함께하게 됐지만요. 프리랜서라 시간이 자유로웠던 덕도 있지만, 단순히 병원에 동행해준 정도가 아니라 직접 주사 놓는 법을 배워서 시술 주사를 놔주기도 했어요. 혼자 겪는 난임이 아니라 '같이 겪는 난임’이라는 느낌을 받게 해준 사람이에요. 오히려 임신 이후에는 병원에 혼자 갈 때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힘들면 그만둬도 돼. 원하면 하고 아니면 잠시 쉬어도 돼"라는 말을 늘 해줬고, 어떤 결정을 내려도 두말없이 따라줬어요. 처음엔 '나만 이렇게 조바심을 내나’ 싶어 서운하기도 했지만, 둘 다 조바심을 내는 성격이었다면 훨씬 더 힘들었을 거예요. 그 덕분에 제가 주도적으로 난임 기간을 보낼 수 있었고, 시술을 중단할 때도 마음 편히 결정할 수 있었어요.

가장 듣기 싫었던 말과 위로가 됐던 말이 있다면요.

사실 난임과 관련된 모든 말이었어요. "맘 편히 먹어라" "없어도 둘이 재밌게 살아라" 같은 말들은 이미 꼬여 있는 상황에선 곱게 들리지 않아요. 진짜 위로는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어요. 병원 일정에 맞춰 자연스럽게 스케줄을 조정해주는 직장 동료들, 난임에 좋다는 추어탕을 알아보고 무작정 데려가 밥을 사주던 친구들의 배려가 컸어요. 또 한번은 중학교 동창 단톡방에 난임 사실을 털어놨더니, 다들 쉬쉬하고 있었을 뿐 본인들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며 자기 경험을 쏟아내더라고요. 나만 겪는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부터 서로 마음을 열고 응원했던 것 같아요.

시술을 멈추기로 결심한 후, 부부의 생활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임신을 준비할 때는 조심해야 한다는 이유로 자전거도 안 타고 조깅도 멈추며 자신을 제약했어요. 그런데도 착상이 안 되면 '내가 무리해서 그런가’ 하는 죄책감만 남더라고요. 그게 너무 스트레스여서 시술을 중단한 뒤부터는 하고 싶었던 액티브한 운동도 하고 등산도 다녔어요. 평상시에도 남편은 바른 생활을 고집하는 사람인데, 시술 중단 후에는 저에게도 권유해 배달 음식을 끊고 건강한 식단을 직접 차려 먹게 되었어요. 역설적이게도 병원을 그만 다니고 일상을 즐기며 운동을 시작했을 때 몸 상태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남편은 물론 부모님들과 3교대 하듯 협업하며 아이를 키우고 있다.

부부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놓은 현재의 육아

6년 만에 기적처럼 유건이가 찾아온 순간은 어땠나요.

테스트기의 두 줄을 보는 순간 '꿈인가…?’ 싶었어요.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앞에 쭈그려 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제 뺨을 힘껏 때렸죠. 아팠고, 꿈이 아니었어요. 거실로 나가서 남편에게 테스트기를 보여줬는데, 남편의 반응도 순수한 기쁨보다는 '이게 왜…?’ 하는 표정이었어요. 그러곤 "앞으로 어떻게 하지?"라는 말이 쏟아져나왔어요.

지난 난임의 시간, 웹툰 작업, 출판 작업까지 모든 순간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어요. 시술을 그만두면서 세웠던 인생 계획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아이가 몇 살이 될 때 나는 몇 살일지 같은 별별 생각이 다 떠올랐죠. 정신을 차린 뒤에는 가까운 지인에게 테스트기 사진과 함께 임신 소식을 알렸어요. 보통 안정기에 들어가서 알린다고 하던데, 그때는 그럴 정신도 없었어요. 지인의 축하를 받으면서 그제야 '내 인생에 진짜 아이가 생겼구나’ 하는 게 실감이 났어요.

모유 수유와 가정 보육까지, 남편의 육아 참여가 인상적이에요. 

모유 수유는 1년 동안 했어요. 보통 3개월, 6개월도 길다고 하는데 다행히 모유가 잘 나왔고, 남편이 "좋은 거면 해야지"라며 적극적으로 도와줬어요. 출산휴가 기간에는 함께 있었고, 그 이후로는 친정어머니가 일주일에 두세 번 와주시고 남편이 나머지를 맡아주는 식으로 교대를 했어요. 회사에서도 배려를 많이 받았는데, 회사가 집에서 5분 거리라 점심시간에 집에 와서 수유하고 오후에 한 번 더 다녀오는 식으로 1년을 보냈어요. 다른 조건 없이 그렇게 도와주신 사장님과 동료들에게 늘 감사한 마음이에요.

지금도 육아 참여에 남편이 적극적이라 들었어요.

아이가 24개월이 됐을 때 국공립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서 보내려고 했는데 남편이 "아직 말도 제대로 못 하는데, 어느 정도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는 부모랑 있는 게 좋지 않겠냐"며 본인이 더 데리고 있겠다고 했어요. 그렇게 36개월까지 남편이 주로 양육을 맡았어요. 

저희는 '주 양육자’ '보조 양육자’라는 표현보다 '공동 양육자’라는 말을 더 좋아해요. 혼자 키우면 아무래도 하던 것만 반복하게 되거든요. 어느 날은 제가 신경도 안 쓰던 장난감을 남편이 갑자기 꺼내서 아이와 노는데, 아이가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반대로 제가 안 보던 책을 무심코 꺼내 읽어준 적도 있고요. 한쪽이 미처 채워주지 못한 부분을 다른 쪽이 채워주니 아이의 경험이 훨씬 다양해지는 게 눈에 보였어요. 남편은 또 어느 날 갑자기 레고에 빠져서 중고 레고를 잔뜩 사들이기도 했어요. 처음엔 '이걸 왜 이렇게 많이…’ 싶었지만 아이가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둘이 함께하니 한쪽이 미루던 것까지 채워지고, 아이가 그만큼 더 다채로운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이를 낳고 가장 크게 변한 점은 무엇인가요.

‘인류애’가 커졌어요(웃음). 예전엔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저 '우리 부부의 2세를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난임을 견뎠거든요. 그런데 유건이를 키우다 보니 세상의 모든 아이가 기특해 보여요. 심지어 제가 미워하는 사람조차도 '저 사람 역시 누군가에게 이렇게 사랑받으며 큰 아이였겠지’ 하고 이해해보려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육아 갈등을 겪을 때 합리적으로 풀어가는 두 분만의 방법이 있을까요.

요즘 말로 표현하면 남편은 굉장한 '대문자 T’, 저는 '대문자 F’라 부딪힐 때가 당연히 있어요. 그런데 냉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남편이 잘 내리는 편이라, 감정에 휘둘릴 때는 남편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해요.

특히 아이가 이유 없이 짜증을 내거나 떼를 부릴 때는 저도 같이 감정이 격해지곤 하는데요. 남편은 옆에서 아이도, 저도 달래지 않고 지켜보다가 차분히 말을 시작해요. "그래서 유건이는 이걸 원하는 것 같은데, 당신이 이걸 해주는 건 어떨까?" "유건아, 엄마는 이걸 하려는 것 같은데 유건이가 엄마 말을 들으면 더 좋을 것 같아" 하는 식으로요. 처음엔 속이 터지지만 그게 반복되니 효과가 있더라고요. 화를 가라앉히고 아이가 원하는 걸 조금 들어주고, 다시 약속을 해보는 과정이 결국 아이도 납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어요. 저는 남편보다 감정적으로 행동하는 편인 것 같아요. 가끔 너무 냉정한 남편에게 화가 날 때도 있지만, 서로 다른 부분을 인정하면서 맞춰가자고 늘 다짐하고 있어요.

지금도 난임 치료 중인 분들에게 건네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난임을 겪고 있는 부부들은 그 끝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제 경험상 제일 힘든 부분인 거 같아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겠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과 배우자의 행복도 꼭 같이 챙겼으면 좋겠어요. 난임의 기간은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는 긴 고난의 길이에요. 이때 함께하는 배우자가 지치지 않도록 서로 잘 보듬어주고, 때로는 쉬어도 가면서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길 바라요. 이에 더해 '분노의 난임일기’가 이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많은 부부에게 아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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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호영 기자 사진제공 김정옥

이혜진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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