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전략산업 키우라는데…'신의 직장' 국책은행, 인재전쟁서 밀렸다
총액인건비·지방이전 논란까지…"사명감만으로 버티는 시대 끝났다"
[편집자주] 글로벌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산업·수출입·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의 역할은 커지고 있다. AI와 반도체, 방산 등 국가 전략산업을 뒷받침할 정책금융의 중심에 있지만, 정작 국책은행은 20년 전 도입된 총인건비제와 경직된 인사·조직 규제에 묶여 민간 금융사와의 인재 경쟁에서 밀리고 있다. 여기에 지방 이전 논란까지 더해지며 우수 인력 이탈과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뉴스1은 4회에 걸쳐 국책은행 경쟁력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를 진단하고, 정책금융 경쟁력 회복을 위한 제도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서울=뉴스1) 김도엽 기자 = 이재명 정부는 반도체와 인공지능(AI), 방산 등 국가 전략산업 육성을 위해 정책금융 확대를 주문하고 있다.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은 그 중심에서 수백조 원 규모의 정책자금을 공급하는 핵심 기관이다.
하지만 정작 국가 산업 경쟁력을 뒷받침해야 할 국책은행의 경쟁력은 갈수록 약화하고 있다. 과거 '신의 직장'으로 불리며 우수 인재들이 몰렸던 국책은행은 이제 시중은행과의 연봉 경쟁에서도 밀리고 있다. 총액인건비제 등 공공기관 규제에 발이 묶인 사이 민간은행과의 보수 격차는 벌어졌고, '정책금융을 책임진다'는 자부심마저 희미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국회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실이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으로부터 제출받은 임직원 1인당 평균 연봉 자료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의 평균 급여를 분석한 결과,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의 연봉은 2021년 처음 역전된 이후 해마다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책은행 3곳의 평균 연봉은 2021년 1억73만 원에서 2022년 1억107만 원, 2023년 1억130만 원, 2024년 1억497만 원, 올해 1억813만 원으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반면 4대 시중은행 평균 연봉은 2021년 1억550만 원에서 2022년 1억1275만 원, 2023년 1억1600만 원, 2024년 1억1800만 원, 올해 1억2275만 원으로 꾸준히 증가했다.
2021년 477만 원 차이로 시작된 연봉 격차는 올해 1462만 원까지 벌어졌다.
약 10년간 상승률 차이는 더욱 뚜렷하다. 2016년부터 올해까지 국책은행 평균 연봉은 약 22.6% 오른 반면, 시중은행은 49.2% 뛰었다. 같은 금융권이지만 보수 체계는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셈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달랐다. 국책은행은 높은 연봉과 안정성, 국가 산업을 지원한다는 상징성까지 갖춰 취업준비생들의 선망 대상이었다. 서울대 등 주요 대학 졸업생들이 몰렸고, 고급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국책은행 등이 채용 필기시험을 같은 날 실시하는 'A매치 데이'가 운영될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채용 시장의 분위기는 빠르게 달라졌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논란을 비롯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반복되는 금융공공기관 지방 이전 논의가 이어지면서 조직의 불확실성이 커졌고, 시중은행과의 연봉 격차까지 확대되면서 국책은행의 매력은 예전 같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민간은행들은 희망퇴직과 조직 슬림화를 통해 확보한 재원을 성과급과 디지털 인재 확보에 재투자하고 있다. 신입 직원 역시 성과급을 포함하면 국책은행보다 최대 1000만 원가량 높은 보수를 받고 있다.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이 사실상 동일한 채용시장을 공유하는 만큼 처우 경쟁력 저하는 곧바로 인재 확보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국책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정책금융을 한다는 자부심과 안정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처우도 밀리고 미래도 불확실하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취업 준비생들이 예전처럼 국책은행을 최우선으로 선택하지 않는 분위기가 확실히 생겼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내부에서 '사명감'마저 약해지고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또 다른 국책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당시 시중은행들이 산업단지에서 점포를 줄일 때 기업은행은 오히려 점포를 확대하며 중소기업 자금 공급을 이어갔고, 산업은행은 기업 구조조정과 산업 재편을 책임져 왔다"며 "이런 공공적 역할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지금은 '연봉이 곧 자신의 가치'라는 인식이 강해지면서 사명감만으로 버티기는 어려운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국책은행의 경쟁력이 약화한 배경에는 공공기관 규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국책은행은 공공기관 총액인건비제를 적용받아 임금과 성과급, 각종 수당 지급이 모두 정부가 정한 총액 안에서만 가능하다. 성과를 내더라도 보상에는 한계가 있고, 민간 금융회사처럼 시장 상황에 맞춰 인력과 보수 체계를 유연하게 운영하기 어렵다.
실제로 기업은행은 최근까지 미지급 시간외수당 등 약 830억 원을 총액인건비제 때문에 지급하지 못했다가 이재명 대통령이 체불 문제 해결을 주문한 이후에야 예외적으로 지급이 가능했다.
국책은행들은 경쟁력 약화의 원인으로 한목소리로 '총액인건비제'를 지목한다. 20년 가까이 유지된 이 제도가 임금뿐 아니라 채용과 조직 운영까지 옥죄며 인재 유출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전 공공기관 임금에 캡을 씌우는 건 과거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며 "성과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은 "국책은행이 총액인건비제에 묶여 민간은행과의 처우 경쟁에서 뒤처진 것은 낡은 공공기관 규제가 경쟁력을 떨어뜨린 대표적 사례"라며 "국가 전략산업을 뒷받침해야 할 정책금융기관이 인재를 잃는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doyeop@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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