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명 투쟁’ 이란 왕세자도 그레이엄 추모 “폭정 함께 맞선 자유 수호자”
트럼프 측근 린지 그레이엄 급작스런 별세 애도
“도덕적 명확성 요구될 때 올바른 편 서있었다”
“‘사자와 태양 혁명’ 지지 국민의 린지 아저씨”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으로 축출된 팔라비 왕조의 ‘마지막 황태자’ 레자 팔라비(65·왼쪽)가 12일(현지시간) 급작스럽게 질병으로 사망한 린지 그레이엄(향년 71세·오른쪽)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을 추모하면서, 고인이 망명 이란인들의 반(反)정부집회를 지지해 참석한 사진을 함께 공유했다. [레자 팔라비 전 이란 왕세자 공식 X 계정 게시물 갈무리]](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607/12/dt/20260712213530894zenr.png)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에 축출된 팔라비 왕조의 ‘마지막 황태자’ 레자 팔라비(65)가 12일(현지시간) 급작스럽게 별세 소식이 알려진 린지 그레이엄(향년 71세)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을 공개 추모했다.
팔라비 왕세자는 이날 공식 X 계정에 페르시아어·영어로 작성한 추모글을 올려 “그레이엄 의원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단 소식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 그는 이란 국민의 확고한 친구이자 자유의 자랑스러운 수호자였다. ‘도덕적 명확성’이 요구되는 순간 그레이엄 의원은 올바른 편에 서 있었다”고 밝혔다.
그레이엄 의원은 미 공화당 내 영향력있는 ‘매파’ 보수로 꼽혔으며, 37년 집권한 알리 하메네이 전임 최고지도자를 비롯한 이란 신정(神政)정권 교체를 주장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내 대권 경쟁자였다가 측근으로 변모한 그는 대(對)이란 공격을 집요하게 설득한 인물로도 알려졌다.
망명 투쟁가로서 ‘자유 이란’ 과도정부 구상을 제시해온 팔라비 왕세자는 그레이엄 의원이 이란 해외 이주민들의 ‘하메네이 정권 붕괴, 왕조 복원’ 촉구 집회에 동참한 사진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친구가 드물었던 시기 그레이엄 의원은 이란 국민들이 폭정에 맞서 싸우는 데 함께 서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그레이엄)는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소리가 권력의 전당에서 들리도록 자신의 목소리를 썼다”며 “이란의 ‘사자와 태양’(왕가를 상징한 국기 문양) 혁명에 대한 그의 지지는 그를 이란인들 사이에서 ‘린지 아저씨’란 칭호를 얻게 했다. 그는 깊은 감사와 존경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했다.
팔라비 왕세자는 “그레이엄 상원의원의 가족과 사랑하는 이들, 동료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민들, 미국 국민께 깊은 애도를 표한다”며 “다른 이들이 자유를 위한 싸움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친(親)이스라엘을 표방했던 고인에 대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날 추모 입장을 냈다.
한편 팔라비 왕세자는 지난 10일 X 글에선 반년 전 이란 전역에서 발생한 반(反)정부시위를 유혈진압한 하메네이 정권 응징을 재차 주장했다. 그는 “어둠이 가두지 못한 수백만 이란인들이 집을 나서서 거리로 나왔다. 1월 8일과 9일은 단순히 이틀 밤 시위가 아니었다. 이란의 침묵이 깨진 밤이었다”고 했다. 미국-이란 종전 협상 국면이 이같은 인권·체제 문제를 희석시켜선 안 된다는 취지로 풀이됐다.
그는 “정권은 총알로 그들을 맞았다. 내 동포 수만명이 48시간 동안 살해됐다. 그 이후 수만명 더 체포, 고문당하고 사형선고를 받았다”며 “(사망 추정치) ‘4만’이란 숫자를 들을 때 ‘통계’가 아닌 ‘어머니에게 돌아오지 못한 아들’을 본다. ‘가족 식탁에 다시 앉지 못한 딸’을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유를 위해 죽었다. 그들이 자유로워지면 호르무즈 해협이 열리고 핵 위협이 끝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한기호 기자 hkh89@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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