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갈등’ 폴란드에 먼저 손내민 우크라…‘8천명 학살’ 추모비 헌화

천호성 기자 2026. 7. 1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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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때 우크라이나인이 폴란드인을 학살한 사건을 두고 두 나라 간 '역사 갈등'이 격해지는 가운데, 주폴란드 우크라이나 대사가 학살 추모비에 헌화하며 진화에 나섰다.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바실 보드나르 주폴란드 우크라이나 대사는 폴란드의 '볼린 학살' 국가 추모일인 11일(현지시각) 바르샤바의 학살 추모비에 꽃을 바쳤다. 그는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을 포함한 2차대전의 모든 희생자"를 기린다고 밝혔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폴란드인들도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오랫동안 억압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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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 보드나르 주폴란드 우크라이나 대사가 11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열린 ‘볼히니아(우크라이나명 볼린) 학살’ 희생자 추모식에서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때 우크라이나인이 폴란드인을 학살한 사건을 두고 두 나라 간 ‘역사 갈등’이 격해지는 가운데, 주폴란드 우크라이나 대사가 학살 추모비에 헌화하며 진화에 나섰다. 우크라이나가 핵심 군사 지원국인 폴란드와 척지지 않으려 역사 분쟁에서 한발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

우크라이나 매체 키이우인디펜던트에 따르면, 바실 보드나르 주폴란드 우크라이나 대사는 폴란드의 ‘볼린 학살’ 국가 추모일인 11일(현지시각) 바르샤바의 학살 추모비에 꽃을 바쳤다. 그는 “폴란드인과 우크라이나인을 포함한 2차대전의 모든 희생자”를 기린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글에서 “모든 희생자의 기억을 존엄하게 기리는 것이 우리의 공통된 의무”라며 “우크라이나는 완전한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고 (희생자 주검) 발굴을 계속하기를 지지한다”고 썼다.

이 학살은 1943년 7월11일 나치 독일 점령 하 우크라이나 서부 볼린에서 민족주의 성향 우크라이나 반란군(UPA)이 벌인 인종 청소다. 폴란드 국가기억연구소(IPN)는 반란군이 당시 하루 동안 폴란드인 마을 99곳을 습격해 8천여명을 살해했다고 추산한다.

학살은 1945년 2차대전이 끝날 때까지 이어졌다. 반란군은 전후 이 지역이 폴란드나 소비에트연방 영토가 아닌 우크라이나 독립국 땅으로 인정받으려면 폴란드인을 몰아내야 한다고 봤다. 1943∼1945년 폴란드계 민간인 7만∼10만명이 반란군에 희생된 것으로 추산된다. 폴란드계 민병대 보복으로 우크라이나계 민간인도 최대 1만2000명 숨졌다. 볼린은 1991년 우크라이나가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뒤 현재 우크라이나 영토다.

11일 우크라이나 북서부 올리카에서 열린 볼린 학살 추모식에서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국방장관이 한쪽 무릎을 꿇고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그는 이날 연설해서 두 나라가 “과거에 대한 책임을 받아들여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자면서도, 우크라이나를 향해 “친구들(폴란드인들)에게 고통과 괴로움을 안긴 이들을 미화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EPA 연합뉴스

두 나라는 오늘날까지도 볼린 학살을 어떻게 볼지를 두고 갈등한다. 폴란드 국회는 2016년 이 학살을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이 저지른 집단 학살”로 규정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학살이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하되, 폴란드인들도 이 지역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오랫동안 억압했다고 주장한다. 1917년 우크라이나 독립 공화국을 선포했을 때 폴란드가 볼린을 침공해 우크라이나인들을 탄압했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매년 이날 “우리는 용서하며, 용서를 구한다”는 구호를 쓴다.

특히 지난 5월26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한 특수부대에 ‘우크라이나 반란군 영웅들’이라는 칭호를 붙이자, 두 나라 간 역사 갈등은 최고조로 치달았다. 민족주의 성향 역사학자 출신인 카롤 나브로츠키 폴란드 대통령은 이에 반발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2023년 수여된 폴란드 최고 등급 흰독수리 훈장을 박탈했다.

반면 우크라이나 쪽은 반란군이 폴란드가 아닌 소련군에 맞섰던 부대라고 반박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전쟁 중이어서 이런 부대명을 붙였다는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훈장을 반납했고, 안드리 시비하 우크라이나 외무장관과 보드나르 대사 역시 폴란드로부터 받았던 훈장을 돌려줬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폴란드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재건 국제 회의에도 불참했다.

그러나 최근 우크라이나가 먼저 화해하자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시비하 장관은 3일 폴란드를 방문해 갈등 확산을 막기 위한 ‘위기 대응 조처’를 취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젤렌스키 대통령이 7일 튀르키예에서 열린 나토 정상회의장에서 나브로츠키 대통령과 별도의 회담을 가졌다. 그는 이날도 대국민 연설에서 “매년 이날 폴란드와 우크라이나는 볼린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을 추모한다. 오늘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폴란드 대표단과 함께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동 기도를 올렸다”고 전했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자기들을 적극 돕는 폴란드와 오래 갈등하기가 부담스럽다. 르몽드에 따르면 폴란드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올 2월까지 66억8000만유로(11조5000억원)를 지원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우크라이나 지원액이 세계에서 9번째로 많다. 역사 갈등이 심해져 폴란드에서 반우크라이나 여론이 치솟거나, 민족주의 성향 극우 정당이 득세하면 폴란드가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폴란드 여론조사에서 극우 정당들의 지지율이 20%를 넘어 내년 총선에서 극우의 집권 여지가 커지고 있다고 르몽드는 짚었다.

천호성 기자 rieu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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