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마 재건축, 속도 붙었다…진짜 고비는 이제부터
분담금·상가·이주 변수…관리처분이 최대 분수령
(시사저널=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은마아파트 재건축 사업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행정 지원 속에 사업시행 인가 문턱을 넘었지만 후속 절차가 순탄치만은 않을 전망이다. 분담금과 상가 권리관계, 이주 문제 등이 여전히 남아있어서다. 조합원 부담이 구체화되는 관리처분 단계에서 내부 이견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서울시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는 최근 재건축 사업시행 계획 인가를 받았다. 정비계획 변경 결정 고시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은마는 신속통합기획 시즌2 첫 적용 사례다. 서울시는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공정 관리를 강화한 결과 정비사업 단계별 표준 처리기한보다 약 1년을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도 속도전에 힘을 보탰다. 은마 조합은 5월22일 사업시행 계획 인가를 신청했다. 강남구는 약 80개 관계 부서·기관 협의와 주민공람 절차를 거쳐 법정 처리기한보다 33일 앞당겨 인가를 냈다. 강남구는 이를 민선 9기 첫 재건축 사업시행 계획 인가이자 구청 내 최단 처리 사례로 내세웠다.

관리처분부터 자금 문제 본격화
은마는 1979년 준공된 4424가구 규모 노후 단지다. 2003년 추진위원회 승인 이후 20년 넘게 재건축을 추진해 왔다. 안전진단과 층수 규제, 수도권광역급행철도 이슈, 조합 내부 갈등 등을 거치며 강남 재건축의 대표적인 장기 표류 사업장으로 꼽혔다.
사업시행 인가는 은마 재건축이 행정 절차상 본궤도에 올랐다는 의미를 갖는다. 정비계획 변경으로 사업 밑그림을 확정했다면, 사업시행 인가는 단지 규모와 배치, 기반시설, 공공기여 계획 등을 구체화해 관리처분 단계로 넘어가는 관문이다. 앞으로 조합원 분양신청과 관리처분계획 수립, 이주 논의 등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은마는 대치동 316번지 일대에서 지하 6층~지상 49층, 29개 동, 5850가구 규모 대단지로 재건축된다. 공공임대 909가구와 공공분양 195가구도 포함된다. 기존 조합원 수와 공공주택 물량을 고려하면 일반분양은 300가구대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상 1대 1 재건축에 가까운 구조인 셈이다.
업계에는 은마 재건축의 부담이 관리처분 단계부터 본격화할 것이란 평가가 적지 않다. 사업시행 인가는 재건축 절차상 중요한 분기점이지만 사업비 부담을 확정하는 단계는 아니다. 실제 고비는 관리처분이다. 이 단계에서 조합원별 권리가액과 분담금, 평형 배정, 일반분양 물량이 구체화된다.
분담금은 평형 선택에 따라 크게 갈린다. 은마 재건축조합 추정치에 따르면 기존 전용 76㎡ 소유자가 신축 전용 76㎡를 받을 경우 분담금은 지난해 9월 2억3000만원에서 올해 5월 4억2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전용 84㎡ 소유자가 같은 평형대를 받을 때도 1억8000만원에서 3억2000만원으로 증가했다. 같은 평형을 배정받아도 8개월 새 1억~2억원가량 부담이 커진 셈이다.
평형을 넓히면 부담은 더 가팔라진다. 전용 76㎡ 소유자가 신축 전용 109㎡를 신청할 경우 추정 분담금은 15억4000만원이다. 전용 84㎡에서 전용 109㎡로 옮기면 12억원, 전용 143㎡를 선택하면 64억4000만원까지 뛴다. 관리처분 단계에서 평형 배정과 조합원 선택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커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상가 문제도 변수로 남아있다. 은마는 2023년 조합 설립 과정에서 아파트 조합원과 상가 소유주 간 갈등을 일단 봉합했다. 당시 양측은 상가와 아파트의 수익·비용을 따로 계산하는 상가 독립정산제에 합의했다. 조합 설립을 가로막던 큰 장애물은 넘어섰다.
다만 상가 문제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다. 관리처분 단계에서는 상가 소유주가 새 단지에서 어떤 권리를 받을지가 다시 정해진다. 기존 상가의 가치를 얼마로 볼지, 새 상가를 어떻게 배정할지, 일부 상가 소유주에게 아파트 분양권을 인정할지 등이 모두 관리처분 과정에서 구체화된다.
상가 권리 배분은 조합원 분담금과도 연결된다. 은마 상가 지분은 400여 개에 달한다. 상가 소유주에게 돌아가는 아파트 물량이 늘면 그만큼 일반분양 물량은 줄어들 수 있다. 일반분양 수입이 줄면 전체 사업비를 메울 여력이 약해지고 결국 아파트 조합원 분담금이 늘어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관리처분 단계에서 상가 문제가 다시 불거질 수 있는 이유다.

속도전 성과에도 남은 형평성 논란
대규모 이주도 가볍지 않다. 기존 4000가구를 웃도는 주민이 한꺼번에 움직여야 한다. 대치동은 학군 수요가 강한 지역이다. 조합은 내년 여름방학 기간 이주를 목표로 하고 있지만 실제 이주가 본격화하면 대치동과 강남권 전월세 시장에 단기 충격을 줄 수 있다. 공급 확대를 위한 재건축이 단기적으로는 임대차 불안을 먼저 자극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은마식 속도전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도 남아있다. 강남구에서만 정비사업 103곳, 재건축 53곳이 진행 중이다. 은마처럼 행정 지원을 통해 인허가 속도가 빨라진 사례가 나타나면 다른 노후 단지들도 비슷한 지원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은마식 속도전을 모든 사업장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 전역으로 넓히면 사업성이 낮아 시공사조차 구하지 못하는 단지도 적지 않다. 행정 절차를 줄이더라도 분담금과 권리관계, 사업성 문제 등을 대신 해결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상징성이 큰 은마가 움직이는 만큼 주변 매수 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남은 변수는 일정 준수 여부다. 조합은 종전자산평가를 마쳤고 가을 조합원 분양신청, 연말 관리처분 총회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일정이 밀리면 2028년 착공 목표에도 부담이 생길 수 있다. 정비 업계 관계자는 "인허가 속도만 보면 행정 지원 효과가 뚜렷하다"면서도 "관리처분 단계에서 조합원 부담이 구체화하면 내부 이견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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