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탐구생활] ‘입는 에어백’부터 AI 위험성평가까지… 산업안전도 AI 시대
AI 위험성평가로 중소사업장 안전관리 지원
원전은 로봇, 현장은 웨어러블…작업환경 변화
스마트 PPE부터 컬러 디자인까지 첨단기술 적용
폭염 대응 기능성 작업복도 안전의 새로운 축

산업안전 정책이 ‘사고 후 대응‘에서 ‘사고 전 예방‘으로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작업장의 위험요인을 미리 분석하고, 로봇이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위험지역을 대신 점검하며, 웨어러블 장비와 기능성 작업복이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올해 산업안전보건의 달 행사에서는 이러한 스마트 안전기술이 한자리에 모이며 산업안전 정책의 변화 방향을 보여줬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AI안전보건박람회‘ 행사에는 국내외 320여 개 기업이 참가해 AI 기반 스마트 안전기술과 로봇, 웨어러블 장비 등을 공개했다. 공간 기반 가상현실(LBVR) 안전체험과 AI 스마트 산업안전기술 우수사례, 40개 안전보건 세미나, 18개 우수사례 발표대회도 함께 진행되며 예방 중심 산업안전의 미래를 제시했다.

◆AI가 위험성평가를 대신하는 시대
정부가 산업안전 분야에서 가장 먼저 AI를 접목하고 있는 영역은 ‘위험성평가‘다. 위험성평가는 사업장이 스스로 유해·위험요인을 찾아 개선하는 산업안전 정책의 핵심 제도로 꼽힌다. 사고가 발생한 뒤 원인을 조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사업장이 스스로 위험요인을 찾아 개선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특히 안전관리 인력이 부족한 중소사업장에서도 보다 쉽고 정확하게 위험성평가를 실시할 수 있도록 AI를 활용한 지원체계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위험성평가는 담당자가 작업 현장을 직접 확인하고 체크리스트를 작성하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중소사업장은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담당자의 경험에 따라 평가 수준이 달라질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안전보건공단은 AI를 활용한 위험성평가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다. 공단이 축적한 산업재해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작업설비 사진을 분석해 어떤 기계인지 인식하고 방호장치 설치 여부를 확인한 뒤, 실제 사고 사례와 위험요인, 개선대책까지 함께 제시하는 방식이다.
공단 관계자는 “사업장이 자기 현장을 촬영해 포털에 올리면 AI가 어떤 위험이 있는지 분석해 주는 시스템“이라며 “단순히 분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성평가와 개선방안까지 언어모델로 제공하는 방향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공단은 가장 많은 산업재해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AI 학습에서도 강점이 있다“며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현장을 점검하고 위험을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방사선 구역은 사람이 못 들어갑니다“…로봇이 대신 투입
산업안전의 또 다른 변화는 사람이 위험한 작업을 직접 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번 박람회에서 원전 방사선 구역에서 운용하는 사족보행 로봇 ‘햄스터‘를 선보였다. 한수원은 이 로봇을 고방사선·수중·밀폐구역 등 작업자 접근이 어려운 환경에 투입해 폐필터 수거와 수중 구조물 점검, 퇴적률 측정 등을 수행하는 지능형 로봇으로 소개했다. AI를 접목해 사람이 직접 들어가기 어려운 극한 환경에서도 정밀한 작업과 모니터링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는 설명이다.
현장에서 만난 한수원 관계자는 “방사선 구역은 농도가 높아 사람이 오래 머물기 어렵기 때문에 로봇을 활용해 먼저 모니터링한다“며 “지금 전시된 장비도 고리 1호기 해체 준비 과정에서 실제 방사선 구역에 투입됐던 로봇“이라고 말했다.
그는 “카메라와 방사선 측정장비로 문제가 있는 위치와 농도를 먼저 확인한 뒤 사람이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라며 “현재는 근거리 운용이 가능하지만 최종 목표는 발전소 통제실에서 원격으로 설비를 운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원전 내 무선통신 환경이 구축되면 사람이 위험지역에 들어가는 시간을 더욱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입는 에어백입니다“…AI가 추락을 감지한다
산업안전 기술이 가장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분야는 건설업이다. 건설현장 사망사고의 약 절반은 추락사고에서 발생한다. 난간과 안전망, 안전대 착용 의무가 강화됐지만, 모든 사고를 막기는 어렵다. 최근에는 사고 자체를 예방하는 기술뿐 아니라 사고가 발생했을 때 치명상을 줄이는 ‘스마트 개인보호구(PPE)‘ 개발도 활발해지는 이유다.
이번 박람회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몰린 곳도 세이프웨어 부스였다. 세이프웨어는 이 제품을 AI가 작업자의 움직임을 분석해 추락을 감지하는 순간 에어백을 팽창시켜 머리와 목, 척추 등 신체 주요 부위를 보호하는 기술이라고 소개했다. 사고 발생과 동시에 자동으로 관리자에게 알림을 전송해 골든타임 확보까지 지원하는 것이 특징이다.
시연에 나선 세이프웨어 관계자는 제품을 들어 보이며 “한마디로 표현하면 ‘입는 에어백‘“이라고 말했다. 그는 “작업자가 평소처럼 안전대와 함께 착용하면 센서가 계속 움직임을 분석하다가 위험한 속도로 70㎝ 이상 추락이 감지되는 순간 에어백이 즉시 팽창한다“며 “추락사고 때 사망률이 가장 높은 머리와 목, 척추, 갈비뼈 등을 보호하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에어백이 작동하기 전에는 센서와 가스 상태를 스스로 점검하고, 이상이 없을 때만 정상 작동하도록 설계돼 현장 활용성을 높였다.
관계자는 “지난 6월 보령 화력발전소 건설현장에서 작업자가 약 4m 높이에서 뒤로 추락했는데 머리와 척추는 보호됐고 팔 골절 정도의 부상으로 끝났다“며 “현재 전국 2300여 개 현장에서 2만6000벌 이상 사용되고 있으며 매년 30건 안팎의 작업자를 실제로 보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농림축산식품부가 축사 지붕 추락사고 예방을 위해 전국 128개 축협에 제품을 비치해 필요할 때 대여하는 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색도 안전장비가 된다
첨단기술만 산업안전을 바꾸는 것은 아니다. KCC는 색채 유니버설 디자인을 활용한 안전관리 사례를 소개했다. KCC는 색약자와 고령자, 외국인 노동자가 위험 신호를 즉각 인지할 수 있도록 시각적 직관성을 높여 현장의 안전 인식을 최대 75%까지 높이고, 축광 기능성 페인트를 활용해 작업환경의 위험요인을 줄이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KCC 관계자는 “산업현장에는 색약자와 고령자, 외국인 노동자가 많기 때문에 가장 빠르게 위험을 전달하는 것이 색“이라며 “일반 페인트보다 시인성이 1.5~2배 높은 네온 컬러와 평소 빛을 저장했다가 정전이나 화재가 발생하면 야광으로 빛나는 축광 페인트를 개발했다“고 말했다.
이 기술은 현대건설 지하주차장과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 등에 적용됐다. 특히 조선소에서는 15층 높이 크레인과 대형 구조물이 혼재한 작업공간을 색으로 구분해 충돌 위험을 줄이고 있으며, 터널 공사 현장에서는 정전 시 비상구를 쉽게 찾도록 돕고 있다.

◆폭염도 산업재해…작업복도 안전장비가 된다
폭염이 산업재해의 새로운 위험요인으로 떠오르면서 작업복도 개인보호구(PPE) 개념으로 진화하고 있다. 코오롱FnC는 냉감 소재와 팬(FAN)을 결합한 워크웨어를 공개했다. 코오롱FnC는 강력한 팬 성능과 냉감 소재를 통해 작업자의 체온 상승을 억제하고, 아이스팩을 활용한 체열 관리, 고가시성 소재와 배터리 폭발 방지, 베임 방지 기능까지 적용해 안전성을 높였다고 설명했다.
현장에서 만난 관계자는 “에어컨이라기보다는 선풍기 원리“라며 “팬이 지속적으로 공기를 순환시키고 열이 가장 많이 쌓이는 목 부위에는 아이스팩을 넣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이어 “용접 작업자는 불똥 때문에 일반 냉감 의류가 쉽게 손상된다는 의견이 많아 아라미드 소재와 방탄복 수준의 고내구성 원단을 적용했고, 하네스를 착용하는 작업자를 위해 상단형 팬 구조도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산업안전보건의 달 행사는 첨단 안전기술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산업안전 정책의 미래를 보여준 자리였다. AI와 로봇, 웨어러블 등 스마트 안전기술이 산업현장에 빠르게 적용되면서 산업안전 정책도 규제와 사후 대응 중심에서 데이터 기반의 자율 예방체계로 전환되고 있다.
안전보건공단 관계자는 “AI와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안전기술이 산업현장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며 “사업장이 위험요인을 스스로 발굴하고 개선하는 자율 예방체계가 현장에 안착할 수 있도록 지원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고양(킨텍스)=권기백 기자 baeking@viva100.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