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식동물’ 탁구 정영식이 복싱하는 이유 “기세, 깡다구, 자신감이 생깁니다”[이헌재의 인생홈런]

이헌재 기자 2026. 7. 12.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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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리우 올림픽에서 환호하는 정영식(오른쪽)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국의 마룽.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정영식 세아탁구단 감독(34)은 선수 시절 탁구밖에 모르는 선수라는 평가를 들었다. 실제로 그의 모든 생활은 오롯이 탁구에 맞춰져 있었다. 집과 숙소, 탁구장을 오가는 생활이 반복됐다. 훈련장에 가장 먼저 나오고, 가장 늦게 들어가는 선수가 바로 정영식이었다.

하지만 정영식은 자기 자신을 ‘초식동물’이라고 표현했다. 사자,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토끼같은 존재였다는 것이다.

정영식은 초식동물처럼 선한 얼굴을 가졌다. 눈망울이 커서 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정영식이 육식동물을 넘어설 뻔한 적이 있었다.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탁구 남자 단식 16강전에서였다.

정영식은 그 경기에서 당대의 일인자였던 중국의 마룽을 상대했다. 정영식은 1세트와 2세트를 내리 따내며 초반부터 밀어붙였다. 정영식의 기대 이상의 선전에 마룽은 진땀을 흘렸고, 중국 대표팀 감독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버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이후 9-4까지 이기던 세트에서 듀스를 허용한 뒤 12-14로 졌다. 결국 내리 네 세트를 내주며 16강에서 탈락하고 말았다.

정영식은 패배 직후 펑펑 눈물을 쏟았다. 메달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포기를 모르고 독사처럼 달려드는 정영식의 모습은 진한 감동을 안겼다. 팬들은 그에게 ‘우리 영식이’란 별명을 붙여줬고, 그는 일약 국민적인 스타가 됐다.

2016 리우 올림픽에서 선전하고 있는 ‘우리 영식이’. 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16강전에 마룽을 상대하게 됐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실패를 예상했다. 하지만 정영식의 생각은 달랐다. “금메달을 따기 위해선 어쨌든 마룽을 넘어야 한다. 오히려 마룽이 방심하고 나올 때 더 적극적으로 달려들자”는 것이었다.

정영식은 그때부터 오직 마룽을 대비한 전술을 준비했다. 마룽의 이전 경기를 철저히 분석하고 공격 플랜을 짰다. 초반 1,2세트를 따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하지만 마룽은 역시 마룽이었다. 3세트부터 이전과는 다른 패턴을 들고 나왔다. 미처 거기까지는 대비하지 못한 정영식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정영식이 생각하는 자신과 세계 1위 선수의 차이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한국 선수 중 탁구 단식에서 만리장성 중국을 넘어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는 유승민 현 대한체육회장이 유일하다. 유승민은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남자 단식 결승에서 왕하오(중국)를 꺾었다.

정영식은 “주변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는 꾸준하고 성실한 선수이긴 했다. 하지만 올림픽 금메달을 딸 정도로 독하지는 못했다”며 “숫자로 표현하자면 나는 선수 생활 내내 95%를 꾸준히 했다. 하지만 유승민 회장님 같은 경우엔 평소와 달리 올림픽 시즌에는 자신의 120%, 150%를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탁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한 정영식 세아탁구단 감독. 동아일보 DB

꿈에 그리던 올림픽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마룽과의 일전은 그에게 뜻밖의 기회를 열어줬다. 올림픽이 끝난 뒤 약 두 달 후 그에게 국제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수화기를 들었더니 발신인이 “나는 왕리친인데”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왕리친은 세 차례 세계선수권대회 우승과 총 56개월 남자 단식 세계랭킹 1위 자리를 지킨 중국의 전설적인 탁구 선수다. 2016년 당시 중국리그 상하이 팀의 감독을 맡고 있던 그가 정영식에게 스카우트 전화를 한 것이었다.

정영식은 “처음엔 장난 전화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얘기를 듣다 보니 정말 왕리친이 맞았다. 바로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며 웃었다. 정영식은 그해 중국리그에서 뛰면서 중국의 탁구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이듬해인 2017년에는 일본리그에 진출했고, 2020년에는 폴란드리그에서도 뛰었다.

정영식은 복싱을 시작한 뒤 기세와 깡다구를 배워나가고 있다. 정영식 제공
누가 봐도 화려한 선수 생활이었지만 정작 정영식 본인은 그리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정영식은 유망주 시절부터 불안 증세에 시달렸다. 고교에 진학한 뒤에는 눈에 보이는 숫자를 모두 세거나 글자를 모두 읽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증세가 심해졌다. 이 때문에 그는 탁구채를 내려놓을 생각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함께 땀 흘리는 동료들을 보며 참고 또 참았다. 2021년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한 그는 2023년 31세의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당시 그의 세계 랭킹은 13위였다. 정영식은 “사실 나는 탁구가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열심히 하려고 했던 것 같다”라며 “언제든 탁구채를 내려놓을 수 있고, 전성기가 끝날 시기가 있을 테니 그때까지는 모든 걸 바쳐 열심히 하자는 생각이었다”고 했다.

은퇴 후 미래에셋증권 탁구단 코치로 일하던 정영식은 2024년 9월 창단한 세아탁구단의 초대 감독으로 부임했다. 32세의 나이에 실업팀 감독이 될 수 있었던 건 많은 이들이 그의 탁구에 대한 열정과 사람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감독’ 정영식은 요즘 행복하게 지낸다. 불안 증세도 사라졌다. 그는 “가르친 선수들의 실력이 느는 걸 볼 때마다 너무 재미있다”며 “휴가를 받아도 어서 빨리 체육관 가서 선수들을 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

정영식의 ‘복싱’ 경기 후 모습. 정영식 제공

달라진 환경 덕분이겠지만 또 하나의 계기가 있다. 바로 복싱이다. 정영식은 약 2년 전부터 복싱을 시작했다. 퇴근 후 저녁 늦게 체육관에 가 한 시간 반가량 땀을 흘린다. 정영식은 “기존의 내 성격이나 성향과는 전혀 다른 운동을 해보고 싶었다”며 “샌드백을 치고, 스파링을 하면서 마음속 두려움을 많이 극복했다”고 했다.

정영식은 내친김에 생활체육대회에도 두 번이나 출전했다. 현재 전적은 2전 2패다. 그는 경기 때 가르치는 제자들도 모두 불러 경기를 보게 했다. 정영식은 “탁구가 기술과 체력의 종목이라면 복싱은 기세와 깡다구의 스포츠다. 기세에 밀리면 주먹도 제대로 내지 못한다”며 “복싱을 통해 그동안 몰랐던 인생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됐다. (생활체육대회) 챔피언에 오르는 날까지 더 노력하겠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제자들도 배우는 게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식이 2023년 은퇴식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동아일보 DB

선수를 그만두고 지도자가 됐을 때부터 그는 세 가지 목표를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 번째는 “선수들이 탁구들 재밌게 치도록 해보자”는 것이다. 정영식은 “나도 분명히 열심히 하는 선수였지만 재미있게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유럽 등 해외 선수들을 보면 정말 재밌게 한다”고 했다. 둘째는 “인성이 좋은 선수를 만들고 나도 인성 좋은 지도자가 되자”는 것이다. 그는 “나도 어릴 때 많은 체벌을 받았다. 불안증세에 시달리게 된 데에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며 “선수가 못한다고 욕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좋은 인성으로 대하고 싶다”고 했다. 세 번째는 “제자들이 내가 못 이룬 올림픽 메달을 따게 도움을 주자”는 것이다. 정영식은 “열심히 했지만 2%가 부족했던 나와는 달리 우리 제자들은 올림픽 메달도 따고 이루고 싶은 걸 다 이뤘으면 좋겠다. 메달을 딴 뒤 장난이더라도 내 목에 메달을 걸어주는 순간을 기대하고 있다”며 웃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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