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성폭력 피해자의 '골든타임' 지키는 곳…서울해바라기센터 가보니

황예림 기자 2026. 7. 12.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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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서울해바라기센터 별관./사진제공=성평등가족부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나와 골목 안으로 들어서자 음식점 옆 낮은 벽돌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해바라기센터 별관이었다. 별관의 작은 출입문은 주차된 차량에 가려 무심코 지나치기 쉬워 보였다. 정명신 서울해바라기센터 행정소장은 "해바라기센터가 이렇게 안 보여도 되나 싶겠지만 성폭력 피해자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드나들 수 있도록 의도한 위치"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기자가 찾은 서울해바라기센터 곳곳에는 피해자를 배려하기 위한 흔적이 묻어났다. 아동 피해자 진술실은 긴장을 덜어주기 위해 인형과 동물·곤충 모형, 보드게임, 미니언즈 캐릭터 등 친숙한 장난감으로 꾸며져 있었다. 말로 자신이 겪은 일을 표현하기 어려운 아이를 위한 미술치료 도구도 별도로 마련돼 있었다.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가정폭력·성매매 피해자에게 상담과 의료, 수사, 법률, 심리 지원을 무료로 제공하는 기관이다. 전국에서 처음 문을 연 해바라기센터인 서울해바라기센터가 올해로 운영 22년째를 맞았다. 41개소가 운영 중인 해바라기센터는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18조를 근거로 한다. 추진 주체는 성평등가족부와 지방자치단체·경찰·의료기관이다.

서울 해바라기센터 아동 피해자 진술실. 인형과 동물·곤충 모형, 보드게임, 미니언즈 캐릭터 등 친숙한 장난감으로 꾸며져 있다./사진=황예림 기자

해바라기센터의 가장 큰 특징은 의료·수사·법률 지원이 동시에 이뤄지는 원스톱 시스템이다. 해바라기센터에는 심리상담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경찰·진술조력인·국선전담변호인이 상주한다. 해바라기센터가 병원 안에 설립돼 있기 때문에 필요할 경우 의사도 필요시 동원된다. 서울해바라기센터는 본관이 서울대병원 동창회관에 위치해 있어 현재 서울대병원 의사 4~5명이 교대로 업무를 보고 있다. 이 외 직원은 경찰 4명과 진술조력인·국선전담변호인을 포함해 총 30명이다.

해바라기센터는 해외에서도 벤치마킹 사례로 주목하고 있다. 영국, 호주 등 선진국도 우리나라처럼 병원 안에 성폭력 피해자 지원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경찰 인력이 상주하지는 않는다.

김재원 서울해바라기센터 소장(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은 "성폭력 피해자를 위한 원스톱 통합 지원은 전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시스템"이라며 "알바니아의 릴리움센터도 해바라기센터를 벤치마킹한 기관이고 인도네시아 등에도 해바라기센터 모델을 수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폭력 피해 입증의 핵심 절차인 '성폭력 피해자 응급키트'/사진제공=성평등가족부

이날 서울해바라기센터에서는 성폭력 피해 입증의 핵심 절차인 '성폭력 피해자 응급키트' 과정을 시연했다. 응급키트는 피해 발생 후 72시간 이내 채취가 필요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절차다. 피해자의 신체와 의복 등에서 가해자의 DNA를 채취하는 과정을 포함해 모두 12단계로 진행된다. 채취된 모든 검체는 봉인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으로 보내지며, 이후 수사와 재판에서 피해 사실을 입증하는 핵심 증거로 활용된다.

응급키트 채취에는 통상 3~4시간이 걸린다. 대부분 센터 간호사가 진행하지만 필요할 경우 의사도 동원된다. 서울 해바라기센터에서는 매달 평균 25건, 연간 약 300건의 응급키트 채취가 이뤄진다. 피해자는 새벽이나 휴일에 방문하더라도 응급키트를 통해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성폭력 피해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만큼 센터도 365일 24시간 운영돼서다.

해바라기센터를 찾는 피해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서울해바라기센터 새로 찾은 피해자는 1905명이었다. 이 가운데 13세 미만 아동은 251명(13.2%)이었다. 여성 피해자가 1665명(87.4%)으로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남성 피해자도 230명(12.1%)에 달했다. 서울 해바라기센터 관계자는 "군대 내 동성 간 성폭력 등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높아지고 조직 차원의 대응도 강화되면서 남성 피해자도 예전보다 적극적으로 센터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황예림 기자 yellowyerim@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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