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몰리고 진열대는 비었다…청산 앞둔 홈플러스 성서점, 웃지 못하는 사람들

황인무 기자 2026. 7. 12.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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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대구 달서구 홈플러스 성서점 계산대가 몰려든 고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황인무기자

“뚝 끊겼던 손님들이 갑자기 밀려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반가운 손님은 아닙니다.”

서울회생법원의 기업회생절차 폐지 결정으로 홈플러스 청산 가능성이 현실화되면서 대구 홈플러스 성서점이 소비자와 입점 상인들의 극명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대규모 할인 행사에 소비자들은 몰려들고 있지만, 입점 상인들은 수천만 원의 판매대금을 정산받지 못한 데다 보증금까지 돌려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생존을 걱정하고 있다. 여기에 전기 공급 중단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150여 개 점포와 300여 명의 종사자들은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11일 오후 찾은 대구 달서구 홈플러스 성서점은 주말 행사장을 방불케 했다. 매장 입구부터 시민들이 몰렸고 계산대마다 긴 줄이 이어졌다. 결제를 마치기까지 30분 이상 기다리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홈플러스가 최근 전 품목 최대 50% 할인과 1+1 행사, 균일가 판매 등 사실상 재고 소진을 위한 대규모 할인 행사에 나서면서 소비자들이 한꺼번에 몰린 것이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문 열기 전부터 줄을 서서 입장했다”, “와인과 밀키트를 저렴하게 샀다”, “카트를 가득 채웠다”, “계산 줄이 너무 길어 결국 포기했다”는 후기들이 잇따랐다.

매장 측은 “계산대 대기 고객 증가로 오후 9시 매장 입장을 마감한다”는 안내문을 내걸고 쇼핑카트로 출입을 통제했다. 일부 시민들은 입장조차 하지 못한 채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지만 어렵게 들어간 매장 안 분위기는 예상과 달랐다. 인기 상품 대부분이 이미 팔려나가 진열대 곳곳은 텅 비어 있었고 신선식품 코너는 상품보다 빈 공간이 더 눈에 띄었다. 일부 수산 코너는 운영이 중단됐고 일부 매장은 이미 철수 준비에 들어간 상태였다.

손님들로 북적이는 매장과 달리 임대매장에서는 할인 판매와 함께 상품을 박스에 담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됐다. 손님을 맞기보다 떠날 준비를 하는 모습이 더 익숙해 보였다.

12일 대구 달서구 홈플러스 성서점에서 고객들이 얼마 남지 않은 상품들을 둘러보고 있다. /황인무 기자

입점 상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판매대금 정산 지연과 보증금 회수 여부다. 

홈플러스 회생절차가 중단되면서 자금난이 심화되자 입점업체들은 수천만 원의 판매대금을 제때 지급받지 못하고 있다.

성서점에서 의류매장을 운영하는 A씨는 지난 5월 판매대금 약 3000만 원을 아직 정산받지 못했다. 이달 지급 예정이던 6월 판매대금까지 합하면 미정산 금액은 약 6000만 원에 달한다. 홈플러스에서 받은 정산금으로 브랜드 본사에 상품대금을 지급하는 구조인 A씨는 정산이 밀리면서 본사 대금도 지급하지 못해 상품 공급이 중단됐고, 계약에 따른 지연이자까지 부담하게 됐다.

정산 지연에 더해 보증금까지 회수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성서점에서 15년째 패션의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는 한 점주는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던 곳인데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될 처지”라고 했다. 카페 운영자는 “전기료와 수도료까지 모두 납부했는데 홈플러스의 전기요금 미납으로 단전이 이뤄지면 정상적인 영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하소연했다.

입점 상인들은 “판매대금 미정산과 보증금 손실, 영업 중단이 한꺼번에 현실화될 경우 생계를 잃는 것은 물론 수년간 쌓아온 삶의 기반까지 무너질 수 있다”며 대구시와 관계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성서점 입점 상인들은 지난 8일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데 이어 10일 대구시청 산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구시에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들은 ‘시장님 살려주세요’, ‘강제폐업 반대’, ‘운영사는 바뀌어도 점주는 계속 영업해야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피켓을 들고 “수많은 상인과 근로자들이 하루아침에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고 호소했다.

비대위는 △새로운 운영 주체가 선정될 경우 기존 입점 상인 계약 승계 △영업 연속성 보장 △긴급 행정·금융 지원 창구 마련 △대구시장과의 면담 등을 요구했다.

탄원서에는 “이곳에 입점하기 위해 전 재산에 가까운 시설 투자비와 권리금, 보증금을 쏟아부었다”며 “홈플러스 폐점은 단순한 영업 종료가 아니라 생계의 사형선고”라는 절박한 호소가 담겼다.

지난 10일 성서 홈플러스 입점 점주 비상대책위가 대구시청 앞에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비대위 제공

상인들은 특히 성서점이 대구시 소유 공유재산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성서점은 2002년 개점 당시 건물을 대구시에 기부채납한 뒤 사용 협약을 맺었으며, 현재는 2035년까지 연간 51억 원의 사용료를 내는 조건으로 운영되고 있다.

상인들은 “대기업을 믿은 것이 아니라 대구시 자산 위에서 안정적으로 영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대기업 경영 실패의 책임을 왜 영세 상인과 시민들이 떠안아야 하느냐”고 주장했다.

상인들의 불안감을 키우는 또 다른 변수는 전기 공급 중단 가능성이다.

비대위에 따르면 홈플러스는 성서점 전기요금 약 3억8000만 원을 3개월째 납부하지 않았고, 한국전력은 오는 20일까지 완납하지 않으면 전기 공급을 중단할 수 있다고 통보했다.

매장 운영 환경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법원의 회생절차 폐지 결정 이후 안성과 함안 물류센터 운영이 중단되면서 신선식품 공급은 사실상 끊겼고, 일부 매장에서는 청소와 시설관리 외주업체가 철수하면서 운영 차질도 나타나고 있다.

협력업체들의 불안도 커지고 있다. 홈플러스 회생계획안에 따르면 지난해 3월 회생절차 개시 이후 지급되지 않은 납품대금은 약 4102억 원이다. 회생절차가 최종 폐지되면 공익채권 지위도 사라질 수 있어 납품업체 피해 역시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

12일 대구 달서구 홈플러스 성서점 상품 매대가 텅 비어 있다. /황인무 기자

이에 대해 대구시는 법인 청산 절차와 법원 판단을 지켜보면서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대구시 관계자는 “성서점은 공유재산인 만큼 회사가 파산하면 원칙적으로는 원상복구 후 반환받아야 하지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며 “입점 상인들의 의견을 듣고 여러 가능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현재 성서점을 제외한 다른 홈플러스 지점에서는 별다른 민원이 접수되지 않았다”며 “상황을 지켜보면서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시는 법인 청산 절차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건물 활용 방안과 상인 보호 대책을 함께 검토할 계획이다.

/황인무기자 him7942@kb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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