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만원에 양형 자료 28종”…형사 피고인들, 돈 주고 ‘감형 패키지’ 산다

김우영 기자 2026. 7. 12. 06:0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형사 사건에서 감형 교육과 수료증 제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최근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은 돈을 내고 이런 온라인 강의를 들은 뒤 재판부에 반성문 외에 '재범 방지 교육을 받았다'며 수료증을 제출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이른바 '재범방지교육'을 수강하면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양형 자료로 제출할 수 있다며 각종 수료증과 평가서를 발급해 주는 업체들이다.

'강의 수료증과 전문가 의견서를 함께 제출하면 피고인이 반성하고 재범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재판부에 보여줄 수 있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재범 방지 강의 듣고 이수증 법원 제출
가격 비쌀수록 반성문·탄원서 등 발급 서류 늘어
현직 판사들 “피해 회복과 합의가 더 중요”
그래픽=손민균

“형사 사건에서 감형 교육과 수료증 제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일명 ‘재범 방지 강의’를 하는 사이트에서 사용하는 홍보 문구다. 최근 형사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은 돈을 내고 이런 온라인 강의를 들은 뒤 재판부에 반성문 외에 ‘재범 방지 교육을 받았다’며 수료증을 제출하고 있다.

각 사이트에서 ‘양형에 반영된다’고 홍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직 판사들은 “이런 문서를 제출한다고 양형에 유리한 것도 아니고, 없어서 불리한 것도 아니다”라며 “피해자와의 합의와 피해 회복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심리 상담사 소견서, 변호사 의견서까지 발급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최근 법률사무소나 심리상담센터와 연계해 운영되는 재범방지교육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온라인으로 이른바 ‘재범방지교육’을 수강하면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양형 자료로 제출할 수 있다며 각종 수료증과 평가서를 발급해 주는 업체들이다. 업체들은 이런 서류가 “재판부의 양형 판단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 업체는 음주운전·폭력·마약·성범죄·재산범죄·공무집행방해 등 범죄 유형별 교육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상품 가격은 6만5000원, 12만원, 19만9000원, 35만원 등 네 단계로 나뉜다. 가격이 올라갈수록 제공되는 수료증과 서류 종류가 늘어난다.

가장 저렴한 기본 교육은 재범 방지 교육, 인지 행동 개선 훈련 등 2가지 강의로만 구성돼 있다. 35만원 상당의 이른바 ‘올인원 세트’는 업체 직인이 찍힌 탄원서와 맞춤형 반성문 대필 자료, 재범방지 행동계획서 등 28종의 자료가 제공된다.

로펌 대표변호사가 직접 운영한다고 홍보하는 업체도 있다. 이 업체는 교육 수료증뿐 아니라 변호사와 전문 심리 상담사가 작성한 의견서까지 제공한다고 홍보한다. ‘강의 수료증과 전문가 의견서를 함께 제출하면 피고인이 반성하고 재범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재판부에 보여줄 수 있어 양형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직접 강의 들어보니... 빨리감기로 5분 만에 수료증 9개 발급

재범 방지 교육 업체에서 제공하는 강의 장면. /챗GPT 재구성

기자가 지난 9일 한 업체에서 10만원 상당의 이른바 ‘성범죄 예방 기본세트’를 구매해 수강해 봤다.

핵심 과정인 성범죄 재범방지교육은 16분55초 분량이었다. 변호사나 관련 분야 전문가가 직접 출연해 설명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일러스트 화면에 자막과 내레이션을 덧붙인 영상이었다. 강의 내용 중에는 의미가 불분명한 표현도 있었다. 가령 “그들은 거절의 표현을 숨기고 미소로 감싸며 고통을 견딜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습니다”라는 식이다.

핵심 교육을 마친 뒤에는 인지행동개선훈련(7분44초)과 준법의식교육(9분16초)을 수강할 수 있었다. 강의 3개를 합치면 전체 강의 시간은 33분55초였다. 그러나 재생 구간을 빠르게 넘기는 방식으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모든 강의를 수강 처리했다.

강의를 모두 수강한 뒤에는 곧바로 각종 수료·평가 자료를 내려받을 수 있었다. 기자가 발급받은 문서는 성범죄 재범방지교육 수료증과 인지행동개선훈련 수료증, 준법의식교육 증명서, 재범위험관리평가서 등 모두 9종이었다. 불과 몇 분간 영상을 넘겨 본 것만으로 법원에 제출이 가능하다는 문서들이 한꺼번에 발급됐다.

강의를 여러 차례 수강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수료증 발급 후 강의는 모두 사라졌다. ‘복습’은 불가능한 셈이다.

이 업체에 따르면 비용을 추가하면 전문 심리 상담사가 작성한 소견서도 받아 법원에 제출할 수 있다고 한다. 기자가 직접 업체에 ‘심리상담서 종합 소견서가 나쁘게 나올 수도 있느냐’고 묻자, 상담 직원은 ‘좋은 점만 가능하게 소견서가 만들어진다’고 답했다.

기자가 재범 방지 교육 수강 후 발급받은 수료증 9개 중 일부. /김우영 기자

◇“피해자 합의가 더 중요...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진지한 반성’이 양형 인자 중 하나인 것은 사실이다. ‘2026년도 양형기준’에 따르면, 진지한 반성은 유리한 사유로 고려하게 돼 있고, 집행유예를 고려함에 있어 아무런 후회나 죄책감을 표시하지 않는 ‘반성 없음’은 부정적 사유로 고려하게 돼 있다.

재범방지교육 이수 사실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 중 하나로 참작된 사례는 있다.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2023년 1월 아동 강제추행 혐의를 받는 피고인에게 “초범이고 범행을 반성하고 있으며, 자진해 성폭력 예방교육을 이수하는 등 재범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 등을 유리한 사정으로 참작해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업체에서도 이런 점을 홍보하고 있다. 업체 관계자는 “실제 업체를 이용한 뒤 집행유예를 받았다며 감사하다고 후기를 작성한 이용자도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직 판사들은 판결문에 교육 이수 사실이 언급됐다는 이유만으로 실제 감형 효과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형사사건 경험이 많은 한 판사는 “법원은 범행의 경위와 피해 정도, 전과 유무, 반성 여부 등 여러 사정을 종합해 형을 정한다”며 “교육 이수는 그중 하나의 유리한 정상으로 언급된 것일 뿐, 그것만으로 형량이 낮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도 “양형에는 피해자와의 합의가 훨씬 중요하다”며 “피해 회복에 대한 노력 없이 이런 자료만 제출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판사는 “재범 방지 강의 이수증을 제출한다고 양형에 유리한 것도 아니고, 없다고 불리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