껴안을 줄 아는 존재조차 내쫓는 오늘의 문제 [황정은·허태임 교환일기]

2026년 4월20일
저의 출근길 살구나무는 이제 꽃잎을 거의 떨구었습니다. 이 나무에는 지의류가 붙어삽니다. 수목원에 오셨을 때 보니 작가님께서는 지의류와 이끼를 구분하시더군요. 지의(地衣), 풀어 쓰면 ‘땅의 옷’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사람은 누구일까요. 언뜻 지의류는 이끼처럼 보이기도 하고 실제로 이끼와 뒤엉켜 살기도 합니다.
흙과 돌과 식물, 건물 외벽과 심지어 인간이 버린 쓰레기까지 덮으며 사는 그 생명체를 저는 식물을 공부하면서 자연스럽게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그 종류를 일일이 구분하고 동정(同定: 생물의 정확한 이름을 찾는 과정)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요. 사실 제 실력은 형편없습니다. 그럼에도 주변의 지의류 정도는 정확하게 알고자 노력합니다. 덕분에 그 살구나무 수피(樹皮)에 퍼져 사는 친구들만큼은 저마다의 이름을 불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초무늬지의’와 ‘분말노란속매화나무지의’와 ‘분말테매화나무지의’를요. 당초무늬지의는 몸 표면의 흰 반점이 마치 덩굴식물이 꼬이며 벋어 나가는 모양이라 그걸 뜻하는 ‘당초(唐草)’에서 온 이름이라고 배웠습니다. 나머지 두 지의류는 오래된 매화나무나 살구나무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어요. 그 분말의 표면을 날카롭고 미세한 도구로 살짝 긁어보면 속살에 노란 빛이 돈다고 ‘분말노란속’, 다른 하나는 분말이 테두리를 그리며 이어져 있다고 ‘분말테’를 접두어로 달고 있지요.
이름을 알고 만나면 그전과는 분명 다른 기분이 듭니다. 막연히 습득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저와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 같아요. 반점이 더 번졌네. 분말이 좀 줄었어. 테두리 일부가 뜯겼구나. 눈길이 더 가고 계속해서 살피게 되지요. 말을 걸고 싶어질 때도 있습니다. 저의 관심을 그들이 불편해하진 않을지 한편으로는 눈치도 보면서요. 황정은이라는 이름을 가진 좋은 작가님께 편지를 쓸 때마다 겨우 식물을 공부하는 제가 조금 눈치를 보는 것처럼요.
인간이 약재로 쓰는 ‘석이버섯’이라고 있지요? 이름만 버섯이지 사실 그 정체는 지의류입니다. 아주 먼 옛날부터 몸에 좋다고 인간이 자연에서 많이 뜯어 갔어요. 아주 높고 깊은 산 아니면 지금은 야생에서 석이버섯 만나기 참 어렵습니다.
지의류를 보면서 생명을, 어쩌면 그 너머의 존재에 대해 곰곰이 저는 생각하게 됩니다. 버섯 같기도 하고 이끼 같기도 하고 식물의 몸에 붙어살기도 하지만 버섯도 아니고 이끼도 아니고 식물은 더더욱 아닌 지의류.
균류와 녹조류의 집합체가 지의류라는 걸 작가님은 알고 계실 테지요. 곰팡이로도 대변되는 균류는 식물처럼 스스로 양분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균사(菌絲)’라고 하는 가늘고 끈적끈적한 접착제로 양분을 만들 줄 아는 무언가를 붙잡고서야 그 무언가로부터 얻어먹고 사는 거지요. 낙엽과 썩은 나무, 동물의 사체 등을 분해해서 영양이 되는 성분을 얻는 숲속의 버섯이 대표적입니다. 인간의 몸에 찰싹 달라붙어 그러한 성분을 강제로 빼앗는 무좀균도 있어요. 기주(寄主)에 해를 입히면서요.
이름을 알고 보면 눈길이 간다
반대로 서로 도우며 살아보자고 제안하는 균류도 있습니다. 이러한 균류가 아주 작은 생물인 ‘미세 조류’나 ‘남세균’과 한몸을 이룰 경우, 이 결속체는 지의류가 됩니다. 균류는 뼈대가 되는 거처를 마련하고, 그러한 장소를 얻게 된 조류와 남세균은 물속이 아니라 육지에서도 살 수 있게 되는 거죠. 균류가 절대 못하는 광합성을 해서 양분을 만들고 균류에게 나눠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단독으로 존재할 때는 생존을 꿈꿀 수 없었던 곳에서조차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죠. 지의류로 거듭났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나 혼자 완벽해야만 살아남는 건 아닐 것이다.” “서로의 약점을 메워주면 더 나은 생명체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협동을 결정할 때 균류와 녹조류는 이런 대화를 나누었을까요.
우리도 그럴 수 있을까요.
오후 반차를 내고 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일 년에 한 번씩 꼭 받는 검사가 있어서요. 유방암 가족력이 있습니다. 엄마의 유방암 투병을 옆에서 지켜보던 20대 말에 제 왼쪽 가슴에도 작은 선종이 생긴 걸 알았습니다. 조직검사로 악성은 아니라는 걸 확인했고 지금도 품고 삽니다. 당장 수술을 할 필요는 없지만 갑자기 커지거나 다른 종양이 생길 수도 있으니 해마다 검사하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병원에서 그랬어요. 가족력이 있으니 조심하라면서요.
초음파 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고 의사는 서서 제 가슴을 기기로 문지르며 자신 눈높이의 모니터를 응시했습니다. 그가 보고 있는 영상이 똑같이 송출되는 다른 화면이 천장에 달려 있어서 저도 함께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 보이시죠? 기존 것 말고 오른쪽 가슴에도 혹이 하나 더 생겼네요. 그렇게 나쁜 모양은 아니지만, 일단 좀 지켜봅시다.”
그 영상의 눈금은 새로 생긴 선종의 크기가 1㎝가 조금 안 된다는 걸 알려주었어요.

지의류를 구성하는 녹조류 세포의 크기는 0.01㎜ 내외입니다. 균사는 그보다 더 가늘어요. 그들을 보기 위해 저는 보통 400배 안팎의 고배율 광학현미경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 미세한 세포와 가느다란 실이 겹겹이 쌓이고 증식하면 육안으로도 분간이 되는 구조물이 됩니다. 인간이 구태여 알아보는 석이버섯처럼요. 실제 자연에서 지의류의 크기는 작게는 1㎜부터 크게는 수 미터에 이릅니다. 그중 ‘사슴지의(Cladonia rangiferina)’가 있습니다.
작고 작은 세포들이 얽히고설켜 만든 모양이 마치 여러 갈래로 갈라진 사슴의 뿔을 닮아서 사슴지의라고 부른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이름이 순록을 포함한 사슴들이 좋아해서 붙은 걸 수도 있겠다 싶어요. 겨울이 되면 툰드라 지대는 식물들이 얼어 죽습니다. 동토 어디에도 순록이 먹을 풀이나 나뭇잎은 없습니다. 이때 지의류만은 그대로 존재해서 순록을 살리는 양식이 되지요. 순록은 두꺼운 눈을 파헤쳐 그 아래에 깔린 사슴지의를 용케도 찾아내 뜯어먹는다고 합니다. 균류가 가두어 기른 녹조류에서 고열량의 탄수화물을 얻는 거죠. 미생물들의 공생과 협동이 없었다면 사슴지의도, 북극의 순록도, 그 순록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에스키모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극한 환경이 닥치면 인류도 지의류를 비상식량으로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그랬다고 합니다. 기근이 들면 주변에 사는 지의류를 구해와서 찌고 설탕을 발라 과자처럼 만들어 먹었다는 기록이 여러 대륙의 선주민들 사이에서 전통처럼 내려오거든요. “성경에서 말하는 ‘만나(manna)’는 지의류일 수 있다. 구약성서의 탈출기에서 “고수풀 씨앗처럼 하얗고, 그 맛은 꿀 섞은 과자”라고 만나를 설명하는 대목의 그 “과자”는 다름 아닌 ‘접시지의’의 한 종류일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논문을 흥미롭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 저는 ‘지의류가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만나일 것이다’를 따져 묻는 그 연구보다 지의류의 삶 자체를 높이 평가해요. 지구라는 공동의 집에서 지의류처럼 살기. 잊지 않으려고 마음속에 깊이 기억합니다. 그런 낭만이 우리에게도 존재할 수 있을까요? 인간이 선을 그어 만든 팔레스타인 땅에서도 가능할까요? 서로 껴안고 살아가는 생존 방식이 서로를 밀어내는 것보다 더 이로울 수 있다는 계산이 어서 빨리 도입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000년 전 구약성경 속 아브라함이 유랑하며 정착했던 바로 그 땅으로요.
2026년 4월22일
진달래에 잎이 많이 나왔습니다. 열흘 전에 작가님을 만났을 때만 해도 꽃만 가득했는데 그 통꽃이 떨어지는 동시에 잎이 올라왔어요. 낙화가 개엽을 데려오는 것이 철쭉과 구분되는 진달래의 삶이겠지요. 반대로 철쭉과 산철쭉과 영산홍은 잎을 먼저 내고 꽃을 기다리는 식입니다. 도시에서는 이미 다 진 왕벚나무 꽃이 수목원에서는 지금 이 순간 절정입니다. 도열한 그 나무 아래로 수선화가 군락을 이루며 맑고 노랗게 피었습니다.
화려하게 핀 꽃들 틈에서 제 눈에는 겨울눈에서 갓 튼 계수나무 잎이 돋보입니다. 처음 나올 때만 해도 어두운 자주색인데 하루가 다르게 연두로 푸르러지기 때문입니다. 갓 태어난 핏덩이가 제 살색을 찾아가는 꼭 그 모습 같아요. 버드나무와 비술나무, 물푸레나무에서도 새순이 분주하게 터지고 있습니다. 마가목 겨울눈은 세상에서 가장 연할 것만 같은 새잎을 틔우더니 꽃자루를 내고 며칠 사이에 밥공기만 한 꽃차례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이 이룩한 초록이 이토록 다양하다는 걸 새삼 확인하는 봄날입니다.
이 봄날도 금세 과거가 되어 우리는 다음 봄을 기다리겠지요.
꽃들의 향기가 어쩜 이렇게 다 다르게 특별할까요. 수목원 바깥보다 늦게 피어 지금까지 남아 있는 매화와 백목련과 살구나무, 이제 피기 시작하는 분꽃나무와 수수꽃다리, 열매가 기다려지는 복사나무와 앵두나무와 자두나무의 꽃향기를 구분해가며 맡느라 집에 들어와서 씻으려고 거울을 보면 제 콧등이 노랗습니다. 꽃밥을 탈출한 꽃가루가 당도하려던 곳이 제 꽃망울은 아닌 걸 너무 잘 알기에 송구할 따름입니다.
식물 대하는 일은 시 쓰기와 같다
지금 핀 돌배나무와 야광나무를 어떻게 쉽게 구분하냐고 누가 묻습니다. 외형의 차이가 여러 가지이기도 한데 꽃이 폈을 때 가장 쉽게 구분하는 건 냄새, 냄새라고 저는 답을 합니다. 그 둘은 냄새가 전혀 다르다고요. 돌배나무는 비리고 야광나무는 달콤합니다. 어쩌면 돌배나무 꽃 냄새를 맡고 인상을 쓸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는 그 정도로 불쾌할 수 있습니다. 부둣가에서 생선이 썩어가는 갯비린내가 나거든요. 인간을 유혹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런 향을 선호하는 파리나 등에 종류를 우선으로 모시려는 돌배나무의 깊은 속내인 거죠.
매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 행사를 수목원에서 엽니다. 오늘은 손택수 시인과 안도현 시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시를 어떻게 작성하는가”라는 독자의 질문에, 시는 “작성하”지 않고 그리는 거라고, 일종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내는 게 시와 같을 거라고 두 시인이 입을 모아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수목원의 일이, 식물을 대하는 자세가 시를 쓰는 행위와도 같을 수 있겠네, 생각했습니다. 겨울눈을 보며 잎과 꽃을 그려보는 일, 잎과 꽃을 좇아 숲을 그려내는 일, 훼손된 숲이 회복되기를 희망하는 일 등을요.
2026년 5월4일
비가 왔고 지금은 그쳤습니다. 비구름이 승천하며 개고 있는 지금 풍경이 무척 감명적입니다. 때마침 작가님의 일기가 도착했습니다. ‘서부해당’이 모처럼 개화했다고요. 그런데 이전과 달리 분홍이 아니고 하얀 꽃을 피웠다고요. 그 연유를 저는 알 것도 같고 그렇지 않은 것도 같습니다. 폭염을 겪은 이듬해에 개화를 않더니 올해는 용케 꽃을 피웠다는 말씀이지요.
평소보다 환경이 꽤 달라졌다면 식물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호르몬을 조절할 줄 압니다. 견디기 힘들었던 그 더위에 서부해당은 아직 기력을 다 회복하지 못했을 것도 같습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호르몬 균형이 와르르 무너졌을 테니까요. 꽃잎을 붉게 물들이는 색소인 안토시아닌을 만들라고 명령하는 호르몬 체계가 구실을 다하지 못했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작용한 건 아닌지 짐작해봅니다. 어쩌면 그게 전혀 아닐 수 있어요. 그의 속사정을 제가 다 알 수는 없으니까요. 다만 작가님이 그 꽃을 보며 얼마간 행복하다면, 웃음을 짓는다면, 그냥 저는 그러한 사실이 좋습니다.
2026년 5월6일
여러 사람이 보게 될지도 모를 교환일기에 붙이자니 다소 사적이라 따로 보낸다는 문자를 노을이 지기 전에 받았습니다. 오늘 하늘은 올해 들어 손에 꼽을 정도로 맑아요. 낙조가 아름다울 것 같아 서쪽 하늘을 자꾸 보게 됩니다. 그제 밤에 달리다가 찍었다는 작가님이 보내온 이팝나무 꽃 사진에서 돌연 향기가 번지는 것만 같습니다. 이팝나무 꽃이 내뿜는 그 좋은 냄새를 작가님도 맡으셨겠지요. 뛰다가 깜짝 놀라서 멈추셨을 것도 같습니다.

2026년 5월17일
너무 빨리 더워지고 있습니다. 파주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 양묘장 당직을 섰습니다. 수목원에는 양묘장을 전문으로 담당하는 직원이 있기는 하지만 주말마저 근무할 수 없으니 주말의 업무는 직원들이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합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제 차례가 돌아와요. 제 개인적으로는 만족도가 가장 높은 업무입니다. 제한된 구역, 다양한 종(種)의 식물들 틈에서 유일한 호모사피엔스로 존재하는 쾌감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사람의 언어로 말을 거는 동물이 없는 것도 흡족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한낮의 더위라는 불청객이 있었습니다. 2월부터 파종한 식물들이 무럭무럭 자라도록 물을 듬뿍 줘야 하는데, 그 한 포기와 한 포기를 챙기는 동안 볕을 가장 먼저 받는 정수리가 모자를 쓰고서 뜨겁다고 느껴졌습니다. 문득 바다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다의 열대우림으로도 불리는 산호초가 사라지는 원인 중 하나는 바닷물 온도가 올라가서라고 하지요. 지구온난화로 해수가 평소보다 1~2도 오르면 산호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산호의 품에 살던 녹조류는 가출을 선택한다고 합니다. 그 미세한 조류가 사라지면 산호는 혼자 못 살고 하얗게 변해 이내 죽는 거죠. 이름하여 ‘백화현상’. 우리의 소중한 바다가 백화현상으로 위험에 처했다고 해양과학자들은 초조하게 말합니다. 해수온 상승으로 산호초가 붕괴하면 해양 시스템 전체가 피해를 본다고요. 껴안을 줄 아는 존재조차 내쫓는 오늘의 기후 문제를 저는 굴참나무와 분비나무 싹에 물을 주다가 준엄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런 걱정 내려놓으라는 듯 양묘장 밖으로 오동나무와 아까시나무가 때맞춰 만개했습니다. 그 두 나무가 무리를 이룬 모습이 어지러울 정도로 찬란합니다. 내일은 5·18 민주화운동 46주기입니다.
춘양에서, 태임
허태임 (식물분류학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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