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폐인가 문화인가.. 러닝크루, 규제 필요할까?
공공공간 함께 쓰는 런티켓 문화 정착이 관건
건강과 공동체 가치 살릴 균형 있는 해법 모색
규제보다 배려와 시민의식이 지속 성장의 열쇠
[지데일리] 최근 몇 년 사이 거리와 공원, 하천 산책로를 중심으로 러닝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혼자 달리던 운동은 이제 수십 명이 함께 뛰는 ‘러닝 크루’ 문화로 진화하며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었다.

최근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3~5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확인됐다. 조사 결과 러닝 크루에 대해 호감을 느낀다는 응답은 33.9%였지만, 비호감이라는 응답은 44.9%로 더 높게 나타났다. 건강한 취미 활동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보다 공공장소 이용 방식에 대한 불편이 더 크게 인식되고 있는 셈이다.
비호감을 느끼는 이유는 공공공간 이용과 밀접하게 연결됐다. 응답자의 68.2%는 여러 명이 함께 달리면서 보행자의 이동을 방해하거나 위협을 준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 이어 공공장소 이용 질서를 해친다는 의견이 59.9%, 운동보다 친목이나 이성 교제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것처럼 보인다는 응답도 53.2%에 달했다.
최근 서울의 주요 공원과 한강변, 도심 산책로에서는 수십 명에서 많게는 수백 명 규모의 러닝 크루가 정기적으로 모이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SNS를 통해 참가자를 모집하고 전문 코치나 브랜드가 운영하는 프로그램도 크게 늘어나면서 러닝은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자리 잡았다.
국내 러닝 시장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스포츠 브랜드들은 러닝 전용 제품과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도 시민 건강 증진을 위해 다양한 러닝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생활체육 활성화를 주요 정책 가운데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러닝 열풍은 건강 증진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 규칙적인 달리기는 심폐기능 향상과 체중 관리, 스트레스 감소에 도움을 주며 우울감 완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꾸준히 발표되고 있다. 혼자 운동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러닝 크루는 동기부여와 사회적 유대감을 제공하는 역할도 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야외 운동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러닝은 가장 접근하기 쉬운 생활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별도의 시설 이용료가 거의 들지 않고 시간과 장소의 제약도 적어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인기 요인으로 꼽힌다.
하지만 참가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갈등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폭이 좁은 산책로를 여러 줄로 달리거나 음악을 크게 틀고 이동하는 모습, 빠른 속도로 보행자 사이를 통과하는 행동 등이 반복되면서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어린이나 노약자, 반려동물을 동반한 시민들은 충돌 위험을 우려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 같은 인식은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났다. 응답자의 70.6%는 공공공간을 이용하는 러닝 크루 활동에 일정 수준의 제한이 필요하다고 답했고, 65.2%는 안전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책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인식했다.
다만 규제 일변도의 접근이 해결책이라고 보는 시각은 아니었다. 응답자의 66.6%는 참여자들의 자발적인 에티켓과 문화 형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답했다. 시민의식이 뒷받침되지 않는 상황에서 규제만 강화할 경우 갈등은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최근 러닝 커뮤니티에서는 '런티켓(Runtiquette)'이라는 개념도 확산되고 있다. 보행자를 우선 배려하고 횡대로 달리지 않기, 신호 준수, 이어폰 음량 조절, 야간에는 반사 장비 착용, 쓰레기 되가져가기 등이 대표적인 실천 수칙이다. 일부 러닝 크루는 신규 회원 교육 과정에서 이러한 에티켓을 의무적으로 안내하며 성숙한 문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해외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일부 도시에서는 대규모 러닝 모임이 공원이나 도심에서 활동할 경우 사전 신고나 시간 조정이 권고되며, 시민 통행량이 많은 구간에서는 안전수칙을 안내하는 사례도 있다. 강제 규제보다 시민 참여와 자율적인 문화 조성을 우선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전문가들은 러닝 문화가 장기적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참여자와 일반 시민 모두가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운동의 자유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공공공간은 특정 집단만을 위한 장소가 아니라는 인식도 함께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이용 환경 개선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 러닝 이용이 많은 시간대에는 안내 표지판을 설치하거나 러닝 동선을 분산하고, 폭이 넓은 구간을 중심으로 러닝 친화 공간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생활체육 활성화 정책과 보행 안전 정책이 함께 추진될 때 갈등은 줄어들 수 있다.
러닝 크루를 둘러싼 논란은 운동 문화 자체를 부정하는 문제가 아니다. 건강을 위한 활동이 다른 시민의 안전과 편의를 침해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가깝다. 자유로운 참여와 공공성은 서로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지켜야 할 원칙이다.
러닝 문화는 앞으로도 성장할 전망이다.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께 뛰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시민이 불편 없이 공존할 수 있느냐라는 것이다. 공공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구성원이라는 인식과 배려가 자리 잡을 때 '런티켓'은 일시적인 캠페인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생활문화의 기준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