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플랫폼들이 이토록 나빠지는 이유

2026. 7. 11. 00: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엔시티피케이션
코리 닥터로 지음
박희원 옮김
흐름출판

제목부터 화끈하다. 『엔시티피케이션(Enshittification)』. 철자가 ‘shit’이다. 한마디로 ‘X됐다’다. 책은 이 단어를 이렇게 설명한다. ‘플랫폼 부패, 쓰레기화, 개똥화’라는 명사. ‘디지털 플랫폼이 수익을 추구하며 사용자에게 점점 나쁘게 변하는 현상’.

2023년 미국 방언학회가 ‘올해의 단어’로 뽑기도 했던 ‘엔시티피케이션’은 캐나다 저널리스트·디지털 권리 활동가 코리 닥터로가 만든 말이다. 거대 플랫폼·테크 기업들이 초창기 사업의 혁신성을 잃고 사용자와 사업자 고객을 모두 배신하며 쓰레기가 돼가고 있다는 충격적 선언이다. 페이스북, 아마존, 구글, 트위터, 애플 등 예외가 없다. 닥터로는 이 신박한 조어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단순한 유행어를 넘어 2020년대 디지털 문화와 플랫폼 자본주의의 핵심을 꿰뚫는 키워드로 파급력이 컸다.

저널리스트이자 디지털 권리 활동가인 저자 코리 닥터로. 저작자표시(BY)-비영리(NC)-동일조건변경허락(SA) 조건을 지키면 저작물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도록 미리 허락한다는 뜻의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CC 라이선스) 표지를 들고 있다. [사진 조너선 워스]
사실 플랫폼이 ‘X’같다는 얘기는, 일상 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쾌한 감각과 무관치 않다. 검색을 하면 광고가 먼저 뜨고, 광고를 피하려면 구독을 해야 한다. 제품 검색이 어떤 순서로 뜨는지, 신뢰할 만한지, 후기는 진실인지 반신반의한다. 애플은 클라우드 서비스와 기기를 묶어 팔아 아이폰 이용자들은 저장된 데이터 때문에라도 애플을 떠나지 못한다. 카카오택시 고객들 중에서는 최근 특정 조건대 일반 요금보다 2000~3000원 비싼 ‘블루파트너스’ 배차를 유도한다고 의심하는 이들도 생겼다.

엔시티피케이션은 4단계로 이뤄진다. ① 일단 플랫폼들은 사용자들에게 잘한다. ② 그러다가 사업가 고객의 편의를 위해 사용자를 괴롭힌다. ③ 이번에는 사업자 고객을 괴롭혀 가치를 몽땅 자기들 몫으로 챙긴다. ④ 결국 플랫폼은 거대한 똥더미가 된다.

우선 우버는 초저가 정책, 페이스북은 친구 네트워크로 사용자가 플랫폼을 떠나지 못하게 묶는다(1단계). 사용자가 충분히 묶였다 싶으면 플랫폼은 입점업체, 광고주, 제휴사 같은 사업자 고객을 쥐어짠다(2단계). 우버는 수요가 몰리는 시간대에 요금을 올리고(서지 프라이싱·surge pricing), 페이스북은 사생활을 빼내어 맞춤광고용 개인정보를 수집한다. 알고리즘 조작, 검색결과 광고 도배도 한다. 이렇게 사용자와 사업자 고객에게 착취한 모든 가치를 주주에게 몰아주는 게 3단계다. 그러고 나면 플랫폼은 엉망이 됐는데도 죽지 않고, 사용자는 빠져나오지 못하는 딜레마 상태에 이른다(4단계). “우리는 플랫폼 안에 갇히고, 플랫폼은 갇힌 우리를 빨아먹는다!” 시종 신랄한 어조로 실리콘밸리에서 풍기는 각종 악취들을 끝까지 추격해가는 에너지와 집요함이 돋보이는 저작이다.

엔시티피케이션을 촉진하는 요소는 뭘까. 경쟁의 소멸, 규제의 미비, 노동자 권력의 약화, 대체 플랫폼으로의 이탈 불가 등이다. 가령 아마존 소유 오더블의 오디오북은 아마존의 DRM(디지털 권리 관리) 기술에 따라 아마존이 승인한 플레이어로만 재생할 수 있다. 아마존을 떠나면 휴지조각인 셈이니, DRM은 일종의 감금장치가 된다. 지식재산권도 창작자 보호 취지지만, 계약을 통해 이를 넘겨받은 플랫폼이 사람들을 잡아가두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테크업계가 이윤 아닌 지대 추구 산업으로 변모했다는 ‘테크노 봉건주의’에도 주목한다. ‘테크노 봉건주의’란 가치의 대부분이 무언가를 소유한 사람들의 몫이고, 일을 하는 사람은 희생당하는 경제체제다. 아마존은 검색 결과 자리를 임대해 1년에 380억 달러를 벌어들인다. 애플과 구글은 앱에서 1달러가 결제될 때마다 30센트를 챙겨, 아마존보다 높은 지대 수익을 올린다. 요리도, 배송도 안 하는 플랫폼은 앉아서 수수료를 챙긴다. 이 과정에서 아마존 배송기사들은 패트병에 소변을 봐야할 정도로 혹사당한다.

제목의 강한 휘발력만큼 “우리의 디지털 공유지가 어떻게 착취와 감시의 황무지로 변했는지 탁월하게 진단했다”(대만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는 호평이 많은 책이다. 인터넷은 망했다. 기술 산업은 다만 엔시티피케이션 기술 혁신 중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물론 저자는 좋은 인터넷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다. 세계 각국의 반독점 규제 움직임, 건강한 생태계를 향한 테크 노동자들의 연대, 기술자결권 운동의 확산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날카롭게 후벼파는 문제의식과 현실진단에 비해 정부의 선의를 믿고, 기술 대기업들을 노동자 연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낙관론적 결론이 지나치게 허약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양성희 문화칼럼니스트

Copyright © 중앙SUN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