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중남미에 부는 우파 바람

중남미에 우파 세력이 잇따라 집권하는 이른바 ‘블루 타이드(Blue Tide)’가 출렁이고 있다. 좌파 득세를 뜻하는 ‘핑크 타이드’와 대비되는 개념이다. 평등과 분배를 앞세운 좌파 이념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자유와 성장을 내세운 우파 가치가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치러진 페루와 콜롬비아 대선에서 우파로의 정권 교체가 확정됐다. 이미 아르헨티나를 비롯해 칠레·에콰도르·볼리비아·파라과이에도 우파 정부가 들어섰다. 이제 중남미 주요국 가운데 좌파가 집권 중인 나라는 브라질과 멕시코 정도만 남았다.
중남미 민심이 갑자기 우경화하거나 보수화한 것은 아니다. 그렇게 설명하기엔 현실은 복합적이다. 핵심은 경제와 치안이다. 블루 타이드는 국민 삶과 직결된 물가와 일자리, 범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좌파 정부에 대한 실망이 누적된 결과다. ‘국민 주권’ ‘격차 해소’ ‘평화’ 같은 매혹적인 구호를 내세워 권좌에 올랐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흘러 국민의 삶은 더욱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였던 아르헨티나는 1940년대 후안 페론 전 대통령이 주창한 페론주의가 국가 운영의 중심축이 되면서 운명이 뒤집혔다. 국유화와 과도한 시장 개입, 빚을 내 재정을 풀고 복지와 보조금을 확대하는 포퓰리즘이 반복됐다.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정부 조직과 공무원 수도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 결과 아르헨티나는 ‘상습 부도 국가’이자, 다른 나라들이 반면교사로 삼는 나라로 전락했다.
2023년 집권한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는 전임 정부들의 페론주의를 청산하겠다며 ‘전기톱 개혁’을 내걸었다. 중앙 부처를 18개에서 9개로 줄였고, 한때 20~30%대를 웃돌던 월간 물가 상승률을 최근 2~3% 수준까지 낮췄다.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재정 흑자도 달성했다. 돈다발을 흔드는 대신 허리띠를 졸라매겠다고 선언한 ‘괴짜’ 밀레이를 반신반의하던 국민들도 조금씩 그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불법 이민과 마약 카르텔, 무장 반군의 확산으로 몸살을 앓아온 칠레와 콜롬비아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인도주의와 ‘총체적 평화’를 앞세운 좌파 정부는 단속과 처벌보다 포용과 협상을 택했다. 하지만 그 틈을 범죄 조직이 파고들었고, 강력 범죄와 치안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정부가 뒤늦게 기조를 바꿨지만, 민심은 이미 등을 돌린 뒤였다.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중남미의 정치 변화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사여구와 허장성세는 민생고를 덮을 수 없다. 자신들만의 이념·권력 투쟁에 몰두한 채 국민이 체감하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치 세력은 결국 유권자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민심은 언제나 이념이 아니라 성과를 기준으로 움직인다. 이념만으론 식탁에 음식을 올리지 못한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럼프 “이란에 휴전 종료 단호히 통보… 대화는 계속”
- 경주 감포시장 경유해 포항 죽도시장까지... 배 터지는 ‘포항 미식회’
- “미감에 대한 테러”...위스키 경고문, 이렇게 촌스러워야 하나
- ‘발칸의 마라도나’를 배출한 흑해의 요람, 콘스탄차
- 뜨거운 월드컵 마케팅 非스폰서 기업들이 승리하고 있는 이유는?
- 최태원 “반도체 사이클 벗어나 구조적 변화...美 팹 건설 검토”
- “보완수사권 없애면 피해자가 방치된다” 변호사 단체들 비판
- 경찰 “장윤기 사건, 국민께 송구… 경찰 가족사건 전수조사”
- “安장관 탈영 의혹 허위”라면서, 복무 기간 기록은 퇴임 후 고치겠다는 軍
- 친명·친청, 전대룰 공개 충돌… 심야 최고위도 40분 전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