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갈망했지만 ‘여자라서 갈 수 없다’던 그곳, 82세에 마침내 닿고서···하늘의 별로 떠나다[시스루피플]
향년 87세로 별세···70여년 항공 분야 헌신
“저는 죽을 때까지 비행할 거예요”
평생의 꿈이었던 우주 비행을 앞둔 지난 2019년, ‘비행을 그만둬야 할 때가 올 것 같냐’는 취재진 질문에 월리 펑크는 이같이 답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이루지 못한 우주 비행사의 꿈을 2021년 82세 나이에 민간 우주여행으로 이뤄낸 ‘최고령 여성 우주 여행자’ 펑크가 별세했다. 향년 87세.
펑크는 8일(현지시간) 저녁 미국 텍사스주 그레이프바인의 한 노인 지원 주거시설 내 자택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그의 친구이자 그레이프바인 시의원인 더프 오델이 9일 밝혔다. 펑크는 최근 낙상 사고 이후 감염 증세를 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오델 의원은 성명에서 “펑크의 흔들림 없는 의지는 꿈에는 유효기간이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그의 용기와 회복력, 획기적인 업적은 청년, 특히 소녀들이 과학·항공·우주 탐사 분야에서 진로를 가질 수 있도록 영감을 주고 있다”고 밝혔다.
펑크는 “70년 넘게 항공 분야에 헌신한 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여성 조종사 중 한 명이자 평생의 꿈이었던 우주여행을 이룬 인물”로 평가된다. 그는 2021년 미 민간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의 우주 관광 로켓 ‘뉴 셰퍼드’에 탑승하며 당시 ‘최고령 우주 여행자’가 됐다.

사실 젊은 시절의 펑크가 꿈꾼 것은 ‘최고령’이 아닌 ‘미국 최초의 우주 비행사’였다. 1939년 2월생인 그는 16세에 미주리주에 있는 스티븐스 칼리지에 입학해 이듬해 조종사 면허를 취득했다. 이후 항공팀 ‘플라잉 애기스’로 유명한 오클라호마주립대로 진학해 교육학을 전공했다.
펑크는 2019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플라잉 애기스 일원으로서 나는 남자들만큼, 아니 어쩌면 그들보다 더 잘 모든 비행 기동을 해낼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대학 졸업 이후 펑크는 당시 미군 기지에서 유일한 여성 교관이 됐다. 그러던 1961년 펑크는 여성 우주 비행사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민간 자금으로 운영된 나사의 ‘우주 속 여성’(Women in Space) 프로그램에 자원했다. 훗날 ‘머큐리 13’으로 불리게 된 미 최고 여성 조종사 13인은 남성 훈련생들과 같은 수준의 신체·심리 검사 과정을 거쳤다.
펑크는 당시 이 프로그램을 최연소로 통과했을뿐더러 감각차단 탱크 훈련에서 10시간35분을 버텨내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미국 최초로 지구 궤도를 돈 우주 비행사인 존 글렌의 기록을 뛰어넘은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당시 나는 그 어떤 남성보다도 과제를 더 잘, 더 빠르게 해냈다”고 말했다.
탁월한 실력에도 펑크의 꿈은 이뤄질 수 없었다. 나사는 머큐리 13 대신 개별적으로 시험을 거친 7명의 남성(머큐리 7)을 미국 최초의 우주 비행사로 선발했다. 펑크는 훗날 당시 미국 사회에는 여성이 우주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존재했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펑크는 나사의 우주 비행사 모집에 여러 차례 지원했지만 낙방했다. 그는 “나사에 네 번이나 연락해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다’고 했지만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펑크는 “넌 여자니까 할 수 없어”라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굴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하고 싶으면 뭐든 할 수 있어”라고 생각했다고 훗날 밝혔다.
반세기가 지난 2021년 여름에서야 펑크는 꿈을 이뤘다. 아마존 창립자 제프 베이조스가 운영하는 민간 우주 기업 블루 오리진은 자사의 첫 유인 우주 비행선에 펑크를 ‘명예 승객’으로 초청했다. 82세의 펑크는 평생을 꿈꾼 끝에 11분간 우주를 비행했다. 비행 후 기자회견에서 펑크는 “드디어 우주에 갈 수 있어 정말 기쁘다. 빨리 다시 가고 싶다.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고 밝혔다.
블루 오리진은 엑스 성명을 통해 “펑크는 모든 면에서 선구자였다”면서 “그의 여정에 함께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 펑크여, 마음껏 날아오르길”이라고 추모했다.

최경윤 기자 ck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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