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지배하는가’ 넘어 ‘어떻게 결정하는가’가 핵심

이명우 ㈜솔루티드 대표 2026. 7. 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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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 아는 체하기] ESG의 진정성은 ‘G(거버넌스)’에 있다

● 지배구조라는 번역이 가린 거버넌스 본질
● 숫자보다 의사결정 과정, 책임 구조 봐야
● 기업 진정성은 거버넌스 통해 파악 가능
●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피하려면 ‘투명 공시’ 필요

거버넌스는 ‘조직에서 의사를 어떻게 결정하는지’를 의미한다. Gettyimage
E(환경), S(사회), G(거버넌스) 중 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분야를 꼽으라면 필자는 주저 없이 G를 택한다. 거버넌스를 통해 기업의 '진정성'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버넌스는 기업이 '어떻게 의사를 결정하는지'로 기업의 진정성을 가늠할 수 있게 해준다. 환경이나 사회 분야가 '무엇(what)'을 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때, 거버넌스는 어떻게(how) 결정할지에 대한 답을 찾는 영역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우리 생활에 좀 더 밀접한 환경이 가장 부각되고 거버넌스는 뒷전인 경우가 많다. 대다수가 거버넌스란 용어는 많이 들어봤어도 거버넌스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모르기 때문이다.

한때 '거버넌스(governance)'라는 용어가 유행처럼 사용된 시기가 있었다. 환경 거버넌스, IT 거버넌스, 로컬 거버넌스 등 모든 분야에 거버넌스가 뒤따랐다. 당시의 거버넌스는 대체로 '정부 혼자 결정하지 말고 다양한 주체가 함께 참여하자'는 의미에 가까웠다. 학술적으로 거버넌스란 용어가 정부를 의미하는 거번먼트(government)의 대안처럼 등장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관료제 중심의 권위주의적이고 딱딱한 의사결정 구조를 갖는 데 반해 거버넌스는 한결 협력적이고 숙의 중심으로 의사를 결정한다는 뉘앙스가 강했다. 거번먼트보다는 거버넌스로 가야 한다는 규범적 색채가 뚜렷했다. 그러나 학술적 의미가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았고, 새롭고 세련돼 보이는 용어라는 점이 거버넌스의 유행을 주도했다.

거버넌스란 단어는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다. 그 유래를 살펴보면 고대 그리스어 단어인 '키베르나오(κυβερνάω, kybernao)'가 어원이다. '배의 키를 잡고 조타하다(to steer a ship)'는 의미로 배가 거친 바다에서 방향을 잃지 않고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갈 수 있도록 지휘한다는 뜻이다. 사전적 의미의 거버넌스는 '조직이나 국가가 최고 수준에서 운영되는 방식과 이를 위한 체계'다. 배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조향하는 것과 조직이나 국가를 안전하고 살기 좋은 방향으로 운영하는 것은 일맥상통한다. 

좀 더 쉽게 풀어쓰면 '조직에서 어떻게 의사결정이 이뤄지는지'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조직에서는 의사를 다수결로 정할 수도 있고, 최고지도자 마음대로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로 치면 전자는 민주주의 체제, 후자는 전제군주제에 해당한다. 그러나 민주주의 역시 실제 운영 방식은 국가마다 천차만별이기에 현실에는 다양한 거버넌스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지배구조라는 번역이 가린 거버넌스의 본질

한국에서 ESG의 거버넌스는 '지배구조'로 번역된다. 지배구조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누가 회사를 지배하는가"라는 궁금증을 갖게 한다. 대주주가 누구인지, 이사회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오너 일가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인지, 경영권 승계는 어떠한지와 같은 문제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문제는 의사결정의 주요 변수란 측면에서 거버넌스의 핵심 요소다. 

그러나 거버넌스를 지배구조로만 이해하면 중요한 질문이 빠진다. 바로 "조직이 의사를 어떻게 결정하는가"다. 거버넌스는 단순히 지분 구조가 어떻게 돼 있는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의사결정이 어떤 정보에 근거해 내려지는지, 의사결정 과정에는 누가 참여하는지, 그 과정에서 충분한 토론과 검토가 이루어지는지, 반대의견은 허용되는지,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는 반영되는지, 결정 이후의 책임은 어떻게 배분되는지가 핵심이다. 그래야 기업에서 이뤄지는 의사결정의 진정성을 파악할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의사결정의 진면목을 쉽게 파악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기업 내부자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비록 내부자일지라도 최고위층의 의사결정 이면을 알 수는 없다. 결국 대리 지표(proxy)를 통해 추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겉으로 보이는 제도나 구조를 통해 미뤄 짐작하는 방식이 가장 많이 활용된다. 

워런 버핏은 회사가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경영진과 주주의 이해관계 일치가 중요하다고 했다. 주인-대리인 문제에서 지적하듯 경영진은 회사의 장기적 성장보다 자신의 임기 내 성과만 중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의지가 있는 회사라면 CEO에게 현금 대신 스톡옵션을 주고, 일정 기간 지난 후 권리행사가 가능하게 하는 장치를 마련한다. 이렇듯 경영진의 보상이 장기적 성과와 연결되고 있는지, 경영진이 자사 주식을 의미 있는 수준 이상으로 보유하고 있는지 등을 보면 회사가 이해관계 일치를 통해 장기적 성장 의지가 있는지를 대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사외이사가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하는지 여부도 거버넌스 평가의 한 지표다. Gettyimage

거버넌스 평가지표의 한계

기업의 거버넌스를 평가하기 위해 어떤 대리 지표들이 사용될까. 거버넌스 평가지표를 보면 먼저 이사회 내 사외이사의 비율, 사외이사의 반대 또는 수정 의견 제시 유무가 있다. 이사회 내 사외이사는 경영진과 관계없이 독립성을 가지고 경영진을 견제하기 위한 자리다. 나아가 법률, 회계, 안전, 산업 등 기업에 필요한 전문성을 가지고 더 나은 이사회 의사결정을 돕기 위함도 있다. 따라서 사외이사 비율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한다는 것은 회사가 경영진이나 대주주 중심의 의사결정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전문성 있는 최고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한 의도라 볼 수 있다. 

사외이사가 적극적으로 반대의견을 제시하는지 여부도 사외이사가 경영진에 포섭된 거수기 역할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대리 지표다. 비슷한 맥락에서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 여부 역시 이사회의 독립성을 보기 위한 지표다. 대표이사가 의장을 겸직할 경우 대표이사 본인에게 유리한 안건 중심으로 이사회를 운영할 우려가 있다. 굳이 대표이사가 의장을 겸직하도록 이사회 규정을 만들었다면 의심의 여지가 다분하다. 이사회에 대한 평가 여부에 대한 지표도 있는데, 이는 평가를 시행하면 이사회 의사결정을 더욱 투명하고 신중하게 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한다. ESG 관련 활동의 이사회 검토 여부의 경우 ESG경영 활동이 기업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승인이나 보고가 이뤄진다면 그만큼 진정성 있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방증이 될 수 있다. 대개 조직의 최고의사결정권자가 관심을 갖는 사안은 조직 전체의 자원과 노력이 투입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현실은 그렇게 이상적으로 흘러가지 않다는 것을. 사외이사는 회사 외부의 인물이지만 실제로는 보통 경영진이나 대주주와 학연이나 지연이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런 사외이사는 현실적으로 경영진에 불편한 질문을 하기 어렵다. 사외이사의 반대의견 제시 근거를 남기기 위해 일부러 중요 쟁점이 아닌 사안을 이사회 안건으로 올리고, 사외이사의 반대나 수정 의견을 받는 행태도 발생한다. 외부에 잘 보이기 위한 일종의 워싱(washing)인 것이다.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라는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하나로 이사회가 대표이사에게 유리하게 운영되지 않을 것이라 보증할 수 없다. 이사회 의장이 대표이사 최측근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이런 지표는 독립적 이사회 운영의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다. 이사회 평가나 ESG경영 활동의 이사회 검토 역시 형식 수준에 그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독재정권에서도 선거는 치러진다.

정보의 불균형이나 현실적 제약을 넘어 의사결정의 본질적 문제도 평가하기 어려울 수 있다. 때로는 최고의사결정자의 다소 독단적인 결정이 더 나은 결과를 낳는 경우도 적지 않다. 최근 한국 경제를 견인하는 삼성전자 반도체의 경우 1980년대 이병철 삼성전자 회장의 장기적 안목과 과감한 결정의 결과다. 당시 의사결정을 다수의 합의에 맡겼다면 삼성의 반도체 진출은 성사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때로는 미래를 보는 한 사람의 확신이 조직의 방향을 바꾼다. 박정희 정부의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건설 등도 반대의견을 전부 들었다면 실행되지 못했을 것이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속담이 있지만, 반대로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럼에도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의견을 반영할 때 합리적인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멀리서 숲도 보고, 가까이서 나무도 봐야

그렇다면 기업의 거버넌스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기업의 진정성을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정답은 없다. 최대한 진실을 알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회과학에서는 사회현상을 분석할 때 양적 분석과 질적 분석 모두 활용한다. 양적 분석은 수치화가 되어 비교하기 쉽고, 구조와 패턴 파악에 적합하다. 그러나 수치 이면의 드러나지 않는 맥락을 놓치기 쉽다. 반면 질적 분석은 숫자보다 내용, 맥락, 과정, 의미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맥락을 파악하기 용이하다. 

거버넌스 평가도 마찬가지다. 멀리서 숲도 보고 가까이서 나무도 봐야한다. 사외이사 비율이나 반대의견 제시 횟수 등 양적 지표도 필요하다. 현재 ESG 평가는 양적 지표 중심으로 이뤄진다. 현실적으로 질적 정성 평가를 하기에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능한 범위에서 정성 평가를 추가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이사회 회의록을 검토해 토론의 양상을 분석하거나, 실제 중요한 의사결정에서 반대의견이 나왔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의사결정의 과정뿐만 아니라 결과까지 모두 살펴보는 세심함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의 안전에 관한 의사결정에 진정성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실제 자원을 충분히 투입하는지, 책임을 지는 자가 누구인지 등 의사결정의 결과를 보면 대략적인 파악이 가능하다. 인터뷰를 통해 기업의 소통 문화, 즉 의견 개진이 자유로운지, 틀린 결정의 수정은 신속하게 이뤄지는지, 책임 소재가 명확한지 등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피하려면 투명한 정보 공개 필수

"장님 코끼리 만지기"란 속담이 있다. 사물의 일부분만을 보고 전체를 아는 것처럼 착각하거나, 자신의 좁은 소견으로 사물을 잘못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보는 세상의 많은 부분은 장님 코끼리 만지듯이 파악할 수밖에 없다. 코끼리 다리에 대한 정보, 귀에 대한 정보 등 파편화된 정보를 잘 종합해야 실체에 가까워진다. 

종합은 과학이라기보다는 경험과 지혜에 기초한 아트(art)의 영역에 가깝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에서 의사결정에 관한 정보를 좀 더 상세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최근 들어 정부의 ESG 공시 로드맵의 윤곽이 서서히 잡히고 있다. 공시 기준으로 예정된 한국지속가능기준위원회(KSSB) 기준안은 거버넌스를 의사결정 방식으로 여기며, 어떤 분야든 꼭 제시해야 할 공통 요건으로 삼고 있다. 기업들이 얼마나 투명하고 상세히 거버넌스를 공개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행보다는 더 많은 정보가 공개될 것이라 기대한다. 그래야 코끼리 코를 다리로, 귀를 코로 오인하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우
● 1983년 출생
● 포항제철고등학교 졸업
● 성균관대 중어중문/경영 졸업
●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 現 솔루티드(주) 대표(중소기업 ESG 컨설팅 전문) 

이명우 ㈜솔루티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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